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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니진 입고 칼질하는 열아홉 육부장

절단된 소 가슴 부위 덩어리를 도마에 ‘툭’하고 올려놓는다. 그러곤 길이 15㎝짜리 칼로 고기 살을 능숙하게 발라낸다. 톱이 달린 절단 장치를 이용해 소뼈를 자른다. 고기 살을 발라내며 묻은 소 혈흔이 손에도, 옷에도 묻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다. “오늘 고기가 장난 아니네예. 억수로 좋심더”라며 너스레까지 떤다.
 
한우 식당이나 정육점에서 고기 발골을 담당하는 이른바 ‘육(肉)부장’의 모습이다. 고깃집 육부장은 과거 ‘백정’으로 불린 직업이다. 매일같이 피를 보고, 살을 발라내야 하는 일로 예전엔 천한 직업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이선아씨는 돈을 벌어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금을 수여하는 꿈을 갖고 있다. [사진 이선아]

이선아씨는 돈을 벌어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금을 수여하는 꿈을 갖고 있다. [사진 이선아]

그런데 이 고깃집 육부장이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1999년생. 그것도 인문계 고교를 졸업하고, 4년제 대학 무역학과에 입학했던 여성이라면 어떨까.
 
대한민국 최연소 여성 육부장으로 알려진 대구에 사는 이선아(19)씨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10일 오후 대구 달서구 진천동행정복지센터. 요즘 청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동그란 금색 안경테와 검은색 스키니 청바지를 차려입은 이씨가 검은색 비닐봉지에 소 뱃살 1㎏을 담아 들고 나타났다.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이 쇠고깃국을 끓여 먹으면 좋겠다”며 수줍은 듯 고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이제 매월 초 빠트리지 않고 고기를 가져와 이웃들과 나누겠다”며 지정기탁신청서를 작성했다.
 
이런 그가 ‘육부장’이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고, 고기 기부까지 하게 된 사연은 2016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4년제 대학 무역학과에 합격한 이씨는 대구 달서구에 있는 한 한우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후 쇠고기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직업으로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씨는 한 학기 대학 생활을 한 뒤 자퇴했다. 그러곤 육부장이라는 생소한 직업을 선택한다고 가족들에게 알렸다. “처음엔 ‘백정’이라며 가족들이 심하게 반대했어요. 전 백정이라는 말도 들어본 적도 없는 99년 태어났거든요.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어요. 육부장은 한식·중식·일식 요리사와 같은 거라며 가족들을 설득했어요.”
 
한우 식당에서 일하며 꾸준히 고기를 배웠고, 경북대 평생교육원 한우전문가 과정에 들어가 칼 쓰는 법 등도 체계적으로 익혔다. 이렇게 고기 살을 바른지 2년 차. 칼에 손을 베어 치료까지 받아가며 기술을 익힌 이씨는 이제 소 살과 뼈를 발라내는 데 능숙하다. 안창살·등심·부챗살 같은 소 부위에 대해서도 전문가 수준이다. 시간이 다소 걸릴 뿐 소의 갈비뼈와 근육을 칼 하나로 정교하게 해체할 정도로 발골 기술을 익힌 상태다. 월급만 200만원 이상 받는 직업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씨는 작은 꿈이 있다고 했다. 돈을 더 벌어 가정 형편때문에 공부를 못한 청소년들에게 ‘여성 10대 육부장 1호 이선아’ 라는 이름으로 장학금을 주는 것이다.
 
그는 “백정이라는 잘못된 직업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서라도 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겁니다. 버는 돈의 일정 부분을 떼어 꾸준히 어려운 이웃도 챙길 겁니다. 여성 10대 육부장 1호 이선아 장학금의 시작이 바로 고기 기부 아니겠습니까”라며 환하게 웃었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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