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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도 아니고 뭐하는 사람?”…도로 속 ‘모범운전자’들

지난달 29일 서울 관악구 신림역사거리에서 모범운전자 하경부씨가 수신호를 하고 있다. 정용환 기자

지난달 29일 서울 관악구 신림역사거리에서 모범운전자 하경부씨가 수신호를 하고 있다. 정용환 기자

 
뿌연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은 지난달 29일 오전 8시 서울 관악구 신림역사거리. 도로 한복판에서 한 남성이 쉴 새 없이 수신호를 하며 호루라기를 불고 있었다. 교통경찰과 비슷한 복장에 ‘모범’이라고 적힌 형광 조끼를 입은 하경부(58)씨는 ‘모범운전자’다. 이들은 경찰처럼 도로교통법상 수신호 권한을 갖고 있다.  
 
이날 하씨의 정지 신호에도 이를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는 차들도 보였다. 하씨는 “사진을 찍어 고발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는 동안 도로 상황이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아 보통 그냥 놔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호루라기를 불어야 해서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도 마스크는 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주로 출근 시간대 차량 정체 구간이나 학교 근처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모범운전자의 역할과 자격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들은 2년 이상 사고를 내지 않고 택시 등 사업용 차량을 운전한 사람 중 경찰서장의 임명을 받은 사람들이다. 원래 ‘10년 이상’ 사고를 내지 않은 것이 기준이었다가 모범운전자 수가 줄어들 조짐을 보이자 최근 ‘2년 이상’으로 완화됐다. 버스나 화물차 운전자 등도 가능하지만, 택시 운전자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신호등보다 우선인 ‘수신호’ 권한 가져
도로교통법상 수신호를 할 수 있는 것은 경찰, 자치 경찰, 전·의경, 헌병, 모범운전자다. 권한이 없는 일반인은 수신호를 할 수 없다. 수신호는 신호등에 우선하기 때문에, 모범운전자가 호루라기와 경광봉을 이용해서 한 수신호를 무시하면 ‘신호 위반’이 된다.
 
서울 관악구 난곡사거리에서 경찰과 모범운전자가 신호 위반 단속을 하고 있다. 정용환 기자

서울 관악구 난곡사거리에서 경찰과 모범운전자가 신호 위반 단속을 하고 있다. 정용환 기자

 
경찰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모범운전자의 도로 위 역할은 크다. 서울 방배경찰서 관계자는 “현장에 나갈 교통경찰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에는 학교 근처에도 교통정리를 하러 나가야 하므로 모범운전자들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윤호 안전생활실천 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등굣길 어린이 교통사고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모범운전자들이 학교 앞에서 교통정리를 한 것의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전국의 모범운전자 수는 2017년 말 기준 2만5200여명이다. 한 사람이 보통 월 4~8회 교통정리를 한다. 방배중학교 앞에서 40년째 모범운전자로 수신호를 하고 있다는 송영환(68)씨는 “이곳은 신호 체계가 따로 없어서 우리가 수신호를 해야 학생들이 안전하다”며 “출근 시간대다 보니 수신호를 무시하고 서로 먼저 가려고 무리하게 진입하는 차들도 있다”고 말했다.  
 
모범운전자들 “기본적으로 봉사활동”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는 자신을 ‘선진교통 질서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하여 설립된 봉사단체’라고 규정한다. 서울시에만 31개, 전국에 256개의 지부가 있다. 이들이 매일 아침 교통정리에 나서는 서울시 내 정체 구간은 560여개다. 윤석범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회장은 “출근길 교통정리는 순수 봉사 정신으로 하는 활동이다. 돈은 전혀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이 받는 혜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봉사활동에 꾸준히 참여한 모범운전자는 1년에 7개의 교통 법규 위반 면제권을 받는다. 불법 주·정차 위반, 20㎞ 이하 구간 과속 등 벌점 15점 이내의 작은 사안에 대해서 면제받을 수 있는 권한이다. 3년 전부터는 경찰에서 비옷, 방한 점퍼, 방한 장갑 등을 일부 지원하고 있다. 모범운전자 중 일부는 도로 점용 허가를 내고 공사하는 건설업체들의 의뢰를 받고 공사장 근처에서 ‘교통정리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힘들게 그걸 왜 하냐’는 분위기에 회원 수 줄어들어”
윤 회장은 “고생은 하는데 혜택은 없다고 생각하는 탓인지 요즘 새로 등록하는 모범운전자 수가 줄어들고 있어 걱정이다. 지회장들은 자격을 갖춘 운전자들을 찾아다니며 들어오라고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통경찰 인력이 너무 적어 우리가 꼭 필요한 상황인데, 도로 위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경찰 인력이 늘어나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석범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회장. 정용환 기자

윤석범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회장. 정용환 기자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모범운전자들이 교통안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경찰도 알고 있다. 여러 의견을 반영해 모범운전자들에게 추가로 지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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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