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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 만이 살길'...승리를 거부하는 '이상한 나라의 스포츠'

지난 7일 클리블랜드전에서 득점한 뒤 기뻐하는 필라델피아 선수들. 오른쪽이 벤 시몬스, 왼쪽이 마르코 벨리넬리.[AP=연합뉴스]

지난 7일 클리블랜드전에서 득점한 뒤 기뻐하는 필라델피아 선수들. 오른쪽이 벤 시몬스, 왼쪽이 마르코 벨리넬리.[AP=연합뉴스]

 
미국프로농구(NBA)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는 2017~18시즌 마지막 16경기에 모두 승리했다. 16연승은 1946년 구단 창단 이래 최다 연승 기록이다. 필라델피아는 이번 시즌 52승 30패로 르브론 제임스가 이끄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제치고 동부 콘퍼런스 3위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필라델피아는 최근 5시즌 동안 한 번도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한 약팀이다. 1년 전인 2016~17시즌엔 동부 콘퍼런스 15개 팀 가운데 14위에 그쳤다. 마지막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건 2011~12시즌. 이후 줄곧 14~15위를 오갔다. 2015~16시즌에는 10승(72패)이라는 치욕을 경험했다. 
 
5년 꼴찌 감수하고 10년 기둥 얻은 필라델피아 
 
 필라델피아 센터 조엘 엠비드. [AP=연합뉴스]

필라델피아 센터 조엘 엠비드. [AP=연합뉴스]

 
에이스 의존도가 높은 NBA에서 순위를 끌어올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구단이 돈을 쓰는 것이다. 샐러리캡(연봉 총액 상한)을 가득 채워 고액 연봉의 스타 플레이어를 라인업에 채우면, 성적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하지만 필라델피아는 자유계약선수(FA)나 트레이드를 통해 대형 스타를 영입하지 않았다. 
 
필라델피아는 5년간 하위권을 전전하며 신인 드래프트 상위 지명권을 얻었다. 손꼽히는 유망주를 긁어모았다. 이 선수들이 신인 때부터 경기에 출전하며 경험을 쌓았고, 잠재력이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극적인 순위 상승을 이끌었다. 
 
이번 시즌 필라델피아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벤 시먼스(가드), 조엘 엠비드(센터) 등은 필라델피아가 신인 드래프트에서 상위 지명한 선수들이다. 벤 시먼스는 2016년 드래프트 전체 1번, 조엘 엠비드는 2014년 전체 3번 지명자다. 
 
'거물 신인' 등장은 탱킹을 부른다 
 
슬로베니아 농구 천재 루카 돈치치. [EPA=연합뉴스]

슬로베니아 농구 천재 루카 돈치치. [EPA=연합뉴스]

 
필라델피아는 유망주를 모으기 위해 일부러 하위권을 전전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미국 프로스포츠에서는 이를 탱킹(tanking)이라 부른다. 탱킹은 '완전히 망하다'는 뜻으로 스포츠에서는 '시즌 포기'를 말한다.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일부러 진다면 탱킹이 아닌 승부조작에 가깝다. 탱킹은 좋게 말해 '1보 전진을 위한 2보 후퇴'다. 고액 연봉자를 내보내고 젊고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로 선수단을 구성한다. 최대한 꼴찌에 근접해 신인 드래프트 상위 지명권을 얻는다.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이 적은 팀들은 시즌 전, 또는 시즌 초중반 이런 작업에 돌입한다. 구단 스스로 당장의 성적을 포기한다. 탱킹은 '극단적 리빌딩'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탱킹 경쟁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특히 거물 신인이 등장하는 해에는 경쟁이 치열하다. 올해 NBA에서도 '꼴찌 경쟁'이 과열 양상을 띠었다. 올해 신인 드래프트에 참여하는 '대어' 쟁탈전이 펼쳐진 것이다. 올해는 디안드레 에이튼, 루카 돈치치, 마이클 포터 주니어, 마빈 베글리 3세 등 유망주가 넘친다는 평가다. 6~7개 팀이 탱킹 레이스를 벌였다. 
 
지난 9월 신인 드래프트 개정안이 통과된 것도 탱킹 레이스의 이유다. 올해까진 최하위 팀의 드래프트 1순위 당첨 확률은 25%다. 하지만 2019년부터는 최하위 3개 팀이 14%로 당첨 확률을 배정받는다. 또 기존 규정에서 최하위 팀은 최소 4순위 지명권이 보장됐지만 5순위로 변경됐다. 전반적으로 하위권 팀들의 이점이 줄어들었다.  
 
메이저리그 성공 방정식 된 탱킹
 
창단 55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휴스턴 애스트로스. [AP=연합뉴스]

창단 55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휴스턴 애스트로스. [AP=연합뉴스]

 
과열된 탱킹 레이스의 가장 피해자는 무기력하고 의미 없는 경기를 지켜봐야 하는 팬들이다. NBA 사무국은 탱킹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드래프트 개정안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월 마크 큐반 댈러스 매버릭스 구단주가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남은 경기에서 패하는 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선택"라고 말하자, NBA 사무국은 큐반 구단주에게 6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후 애덤 실버 NBA 커미셔너는 탱킹 의혹을 받는 팀들에게 강한 경고의 메시지도 전했다. 실버 커미셔너는 "남은 기간 모든 팀의 플레이를 세심히 관찰할 것이다. 만약 선수들이나 코치진이 일부러 패하려고 시도하는 증거가 발견되면, 사무국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징계를 내릴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탱킹은 비단 NBA만의 문제는 아니다. 드래프트 방식으로 신인 선수를 선발하는 미국 프로스포츠 구단들이 팀을 재건하는 한 방법으로 탱킹을 빈번하게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휴스턴 애스트로스도 탱킹 의혹을 받았다. 
 
휴스턴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동안 416패(평균 104패)를 당했다. 2011~13년에는 모두 105패를 넘은 약체 중의 약체였다. 이 기간 드래프트를 통해 조지 스프링어(2011년), 카를로스 코레아(2012년), 랜스 매컬러스(2013년), 알렉스 브레그먼(2015년) 등 유망주를 발탁했다. 
 
이들이 주축이 된 2015년부터 성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2015년 휴스턴은 10년 만에 가을야구를 맛봤다. 그리고 지난해 창단 55년 만에 새 역사를 썼다. 2015년 캔자스시티 로열스, 2016년 시카고 컵스도 휴스턴 같은 방식으로 하위권에서 일약 정상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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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만큼 꼴찌도 싫은 한국 구단들 
 
2013.08.16.  2013 KB국민카드 프로-아마농구최강전 KCC-경희대 16강전 경기가 16일 오후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렸다. 경희대 김종규가 골밑슛하고있다. [중앙포토]

2013.08.16. 2013 KB국민카드 프로-아마농구최강전 KCC-경희대 16강전 경기가 16일 오후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렸다. 경희대 김종규가 골밑슛하고있다. [중앙포토]

 
메이저리그에서도 탱킹이 우승을 위한 성공 방정식이 되면서 이를 따라 하는 팀이 늘어났다. 메이저리그 선수노조는 3분의 1 가량의 팀이 올해 좋은 성적을 낼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마이애미 말린스, 탬파베이 레이스, 피츠버그 파이리츠 등은 시즌 전부터 조짐이 보인다. 특히 마이애미는 지난해 메이저리그 홈런왕(58개) 지안카를로 스탠턴을 지난겨울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하며 팀 재건 작업에 착수했다.  
 
한국에선 대기업이 프로스포츠 구단을 운영하고, 기업의 홍보 수단으로 스포츠 구단을 활용한다. 한국 구단 입장에선 우승만큼이나 꼴찌를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팬들은 당장의 성적에 민감하다. 팀 재건 작업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둬야 한다. '유망주 풀'이 작고, 트레이드도 빈번하지 않다. 탱킹에 적극적이지 않다. 
 
탱킹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프로농구 안양 KGC 인삼공사는 2009년 양희종, 김태술 등 주축 선수들을 한꺼번에 입대시켰다. 신인 드래프트를 노려서 오세근-이정현-박찬희 등을 잇달아 영입했다. 인삼공사는 2011-12시즌 정규시즌 2위에 올라 챔피언결정전에서 원주 동부(현 DB)를 물리치고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다른 구단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2012~13시즌 경희대 3인방 (LG 김종규, KCC 김민구, DB 두경민) 영입을 앞두고 탱킹 논란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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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심은 팬들과의 약속" 
 
NBA 커미셔너 애덤 실버. [AP=연합뉴스]

NBA 커미셔너 애덤 실버. [AP=연합뉴스]

 
이기고 싶어 하지 않는 팀을 응원할 팬은 많지 않다. 메이저리그 휴스턴이 하위권을 전전할 당시인 2012년 평균 관중이 2만 명 밑(1만9848명)으로 떨어졌다. 2014년 TV 시청률 0.01%라는 굴욕도 맛봤다. 물론 성적이 다시 좋아져 우승하면 팬이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탱킹이 늘어나면 리그 전체 흥행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실버 NBA 커미셔너의 발언은 곱씹어볼 만하다.   
 
"코트 위에서의 경쟁심은 우리 리그(NBA)가 유지되는 주춧돌과도 같다. 우리가 팬들과 한 약속이며, 우리가 매우 우수한 스포츠 리그로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팬들에게 돈을 받고 판매하는 상품이기도 하다. 우리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바뀌어도, 그것만큼은 변해서는 안 된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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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