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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의 심스틸러]자꾸 눈에 밟히는 '밥 사주고 싶은 동생'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손예진과 5살 차 커플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정해인. [사진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손예진과 5살 차 커플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정해인. [사진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지난달 30일 시작한 JTBC 금토드라마 제목이 처음 공개됐을 땐 다들 의아해했다. 지금이 예쁜 누나 타령할 땐가. 거기다 밥까지 잘 사준다니. 누나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 하나 더 추가된다는 것은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도 한국 사회에서 결혼적령기를 살아가는 미혼 여성은 ‘버텨낸다’는 말이 더 적합할 만큼 세상의 고정관념과 지나친 관심을 향해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냥 아는 사이’로 지내던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서 그려갈 ‘진짜 연애’라는 스토리 라인 역시 진부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하얀거탑’ ‘아내의 자격’ ‘밀회’ ‘풍문으로 들었소’ 등 굵직굵직한 작품을 선보인 안판석 PD의 신작치고 너무도 한가해 보인 탓이다. 자타공인 ‘멜로퀸’ 반열에 오른 손예진(36)에 비해 남자주인공 서준희 역을 맡은 정해인(30)이 너무 약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다.
정해인은 손예진이 무심코 한 말들을 기억하며 실천에 옮기는 세심함을 보인다. [사진 JTBC]

정해인은 손예진이 무심코 한 말들을 기억하며 실천에 옮기는 세심함을 보인다. [사진 JTBC]

한데 뚜껑을 열어보니 모든 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송혜교가 과거 인터뷰 중 “‘태양의 후예’를 같이 한 (송)중기씨와 친하지만 난 그냥 밥 잘 사주는 좋은 누나 아닐까 싶다”고 말한 후 나중에 결혼한 것을 보고 그 말이 참 위트 있다 여겨 제목으로 붙이게 됐다는 안판석 PD의 설명처럼 정해인의 인기가 치솟았다. “나도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될 수 있는데”라는 30대 여성들의 시청 후기가 잇따르면서 드라마와 정해인은 나란히 화제성 조사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 웨이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차세대 멜로 남주의 탄생을 알린 것이다.  
 
그가 운이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상대역 손예진은 ‘클래식’처럼 동화 속 청순함부터 ‘연애시대’ ‘아내가 결혼했다’ 등 현실밀착형 사랑스러움까지 멜로의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고, 안판석은 현실 속 부조리를 보여주는 데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몫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님에도 그는 꿋꿋하게 그 이상을 해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이별 후에도 데이트 폭력을 일삼는 누나의 전 남친에게는 거칠게 맞서며 남자다움을 뽐냈고,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폭력적인 언행을 일삼는 누나의 회사 상사들에게는 영민하게 대처했다. “내가 먼저 손을 잡아야 했는데”라고 안타까워하며 아직은 설익은 연애 솜씨가 누나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음은 물론이다. 
정해인은 '도깨비'에서 김고은의 첫사랑으로 특별출연했지만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사진 tvN]

정해인은 '도깨비'에서 김고은의 첫사랑으로 특별출연했지만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사진 tvN]

자연히 두 사람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순간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놀이공원처럼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공간이 아닌 사무실ㆍ주차장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이지만 세상의 편견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둘만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팍팍한 현실과 구분되기 때문이다. 하여 이곳의 시간은 더 느리게 흘러가고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조건 좋은 남자를 놓치지 말라고 하는 부모님이나 착하다고 궂은일을 죄다 떠넘기는 동료들도 없는 소박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공간이니 말이다.
 
여기서 2014년 데뷔 이후 15편에 출연한 정해인의 필모그래피도 빛을 발한다. 스물여섯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데뷔했지만 4년 동안 다양한 장르를 압축적으로 경험함으로써 되려 남들보다 빨리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게 된 것이다. 지난해 출연한 작품만 해도 모두 결이 다르다. ‘불야성’의 보디가드 탁이나 ‘임금님의 사건 수첩’의 흑운처럼 몸을 주로 쓰는 역할이 있었던가 하면,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유대위나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한우탁처럼 코미디나 판타지 요소가 있는 역할도 곧잘 소화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는 유대위 역을 맡아 해롱이 이규형과 코믹한 케미를 선보였다. [사진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는 유대위 역을 맡아 해롱이 이규형과 코믹한 케미를 선보였다. [사진 tvN]

특히 ‘감빵생활’의 경우 살인을 저지른 악마 유대위로 시작해 훈훈한 유대위로 끝났으니 그 진폭이 얼마나 큰가. 소속사 FNC 관계자는 “평소 굉장히 바르고 반듯한 느낌이 있는데 ‘예쁜 누나’에서는 실제 본인의 모습이 잘 녹아든 것 같다”며 “다들 한방에 빵 뜬 줄 아는데 AOA 뮤직비디오부터 시작해 주말ㆍ연속극ㆍ사극 등 철저하게 단계를 밟아 올라온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정해인은 고3 때 길거리 캐스팅 제안을 받은 것을 계기로 방송연예과에 진학했으나 군 제대 후 배우로 데뷔했다.
 
16부작 중 이제 막 1/4 지점을 통과했으니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극 중 커피전문점 슈퍼바이저로 일하는 윤진아의 애환은 어느 정도 드러났지만, 게임회사 디자이너로서 서준희는 아직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 파견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가장 친한 친구의 동생이자 남동생의 친구인 가족 같은 사이란 점을 제외하면 그에 대한 정보도 많지 않다. 커피전문점에는 서정연ㆍ박혁권ㆍ이화룡 등 안판석 사단이 포진해 있는 반면 정해인에게는 누나 장소연을 제외하면 다른 인물과 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지점도 전무한 상태다.  
2014년 FNC 1호 배우로 데뷔한 정해인. 6개월간 연기 교육을 받았다. [사진 FNC엔터테인먼트]

2014년 FNC 1호 배우로 데뷔한 정해인. 6개월간 연기 교육을 받았다. [사진 FNC엔터테인먼트]

안판석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진짜 연애는 서로에 대한 평전을 쓰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상대방에 대해 끝없이 지겹도록 관찰해야 비로소 남들이 보지 못한 오묘한 매력과 장점을 완전히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부디 배우 자체가 지닌 매력뿐 아니라 캐릭터가 가진 다채로운 면모까지 탈탈 털어 보여줄 수 있길 기대한다. 그는 “서른이 되기 전 교복을 한번 입어보고 싶다”는 바람을 여러 차례 피력했지만, 지금이야말로 어느 때보다 더 풋풋한 청춘을 보여주기 좋을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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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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