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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돌린 워싱턴 지한파…대미 민간외교 교두보 잃었다

한미연구소 폐쇄가 남긴 것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이 11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설가온에서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산하 한미연구소(USKI)에 대한 예산 지원을 중단한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9일(현지시간) 발리 나스르 SAIS 학장은 5월 11일 자로 USKI를 폐쇄한다고 통보했다. [뉴스1]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이 11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설가온에서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산하 한미연구소(USKI)에 대한 예산 지원을 중단한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9일(현지시간) 발리 나스르 SAIS 학장은 5월 11일 자로 USKI를 폐쇄한다고 통보했다. [뉴스1]

미국 워싱턴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부설 한미연구소(USKI) 관련 사태는 결국 5월 11일 연구소를 폐쇄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6월부터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예산 지원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2006년 설립 이후 워싱턴 내 한국 연구의 한 교두보가 12년 만에 사라지는 셈이다.
 
구재회 소장은 12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USKI의 성과가 불만이었다면 자금(예산) 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KIEP의 권리이지만 이번 일이 진행된 방식은 끔찍했다”고 말했다. 구 소장은 “지속적인 인적 교체 요구와 운영규정 변경 시도는 USKI와 SAIS 모두에게 그야말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며 “워싱턴에 있는 어떠한 싱크탱크나 학문기관이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 미 대학연구소 강제로 문닫게 했다”
구재회 소장

구재회 소장

폐쇄 결정 이후 한·미 관계에 미칠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당장 워싱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지한파 학자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는 “미국의 많은 사람이 존스홉킨스대와 USKI에서 한반도에 관한 권위 있는 분석을 얻었다. USKI 폐쇄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한국학 선임연구원도 트위터에 “한국이 존스홉킨스대 연구소의 문을 강제로 닫게 했다”는 글을 올렸다. USKI가 운영해온 북한 전문 매체인 ‘38 노스(38 North)’의 공동 설립자인 조엘 위트 선임연구원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38 노스’의 독자 생존 입장을 밝히면서 “USKI의 역사를 감안할 때 KIEP가 자금 지원을 중단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부임한 조윤제 주미대사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공공외교 강화 노력도 출발부터 삐걱거리게 됐다. 한 외교 소식통은 “공공외교공사 신설과 공공외교팀 발족을 계기로 미국 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긍정적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애썼던 대사관 공공외교팀에는 큰 타격”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북핵 문제를 놓고 한·미 간 소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 정부가 굳이 대미 민간외교 창구 역할을 했던 USKI에 대한 예산 지원 중단과 소장 교체를 밀어붙일 필요가 있었느냐고 비판하고 있다. 일각에선 또 “외교안보 라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한·미 관계를 담당하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이나 외교부가 관여했다는 흔적은 없다. 안보실에서 관여했다는 이도 최종건 평화군비통제비서관으로 지난 1월 1·5트랙(반민반관) 대화차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USKI 문제를 거론했다는 정도가 다다. 워싱턴 사정도 썩 좋지 않다. 조윤제 대사는 경제통이다.
 
이 때문에 워싱턴 내 지한파 사이에선 2010년 이명박 정부 당시 있었던 유사 사례를 언급하면서 현 정부의 ‘서툰’ 일처리를 지적한다. 이들에 따르면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직후 존스홉킨스대 한국학연구소장이었던 서재정 교수는 정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이에 당시 정부는 물밑으로 서 소장 교체를 추진했고 이번과 마찬가지로 학교 측은 반대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한 지한파 인사는 “당시 한·미 관계에 미칠 부작용 등을 우려해 정부는 소장 교체를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않았고 서 소장은 임기만료 후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교체된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서 소장은 2013년 소장 임기가 끝난 후 우드로윌슨 연구센터를 거쳐 일본 국제기독교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이 인사는 “이번엔 뭔가 시한에 쫓긴 듯 거칠게 밀어붙여 결국 한·미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됐다”고 말했다.
 
USKI의 폐쇄로 결론 났더라도 야권에서 제기해온 USKI 인적 청산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국회의 문제 제기에 따른 KIEP의 결정이 아니라 청와대의 작품이 아니냐는 것이다. 열쇠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실에서 근무 중인 홍일표 선임행정관이 쥐고 있다. 홍 행정관은 2014년 USKI 문제를 본격 제기한 김기식 전 의원(현 금감원장)의 보좌관이었다. USKI 측이 언론에 공개한 김준동 KIEP 전 부원장의 e메일에는 “한미경제연구소(KEI)·USKI와 관련해 정책실장실 홍일표 행정관에게 보고할 예정이며 홍 행정관 측은 이 사안을 굉장히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돼 있다. 참여연대 출신인 홍 행정관은 2006년 포스코 NGO 펠로십 프로그램으로 조지워싱턴대 시거센터 방문연구원으로 1년6개월간 머물렀고 2009년엔 『미국 싱크탱크의 전략, 세계를 이끄는 생각』을 출간했다.
 
청와대 정책실장·민정수석 알았을 수도
지금까지 KIEP와 청와대의 설명을 종합하면 홍 행정관이 보좌관 시절 국회에서 다뤘던 사안을 청와대에 들어가서 윗선 보고 없이 개인적으로 계속 챙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 업무 시스템상 이 같은 주장은 석연치 않은 면이 있다. 청와대엔 개인 프로젝트란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직속 상관인 장 실장이나 사안의 성격상 민정수석실의 개입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와 관련, 이재오 전 의원은 13일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2014년 김기식·이학영 의원이 국회에서 문제를 제기할 당시 구재회 소장과 전임 소장인 주용식 교수(중앙대)가 ‘이재오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듣고 두 의원과 직접 통화를 했다”며 “정권과 상관없이 대미 민간외교 창구로서 USKI는 꼭 필요하니 오해를 풀고 예산을 줄이지 말라고 했는데 효과가 없었다”고 전했다. 이 전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 낙선 직후 USKI 방문연구원으로 도미했고, USKI 지원 예산 규모를 현 수준(연간 20억원 안팎)으로 늘리는 데 역할을 했다.
 
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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