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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잡아버리란 말이야

그 여자의 밑줄 긋기<새 연재>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누나가 더 예뻐.”
 
토닥거리던 둘의 대화를 멈추게 한 그 순간, 손예진은 할 말을 잃고 당황했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던 수백만의 누나들의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예쁜 거지, 누구보다 ‘더’ 예쁜 거지. 그게 시작인 거지. 다른 말이 필요 없지.  
수줍게 내민 감정, 그러나 여전히 둘의 확신은 좀체 자리를 잡지 못한다. 그건 수많은 여자를 섭렵한 바람둥이 동생일지라도, 동생보다 훨씬 더 많은 연애 경력과 ‘프로’ 인생을 살아온 누나에게도 쉽지 않다. 아니 지금 대한민국 누나들의 마음을 홀딱 뺏어간 정해인과 남자들의 ‘영원한 첫사랑’ 손예진이 현실에서 만난다 해도 쉽지 않을 게다. 우산을 같이 쓰고 어깨를 잡을까 말까 망설이는 손길, “남자들은 어떤 때 이런 말을 해?” 통설 속에서 찾아보려는 진심의 실마리, 이리저리 에둘러 찔러보는 속마음. 아무리 선남선녀라도 왠지 비루해지고 한없이 작아지는 단계다. 결정적 한방이 아쉬운 때다.  
 
“아직은 확실한 사이가 아니…” (손 꽉!) “딸꾹! 딸꾹!”
 
나도 밥 잘 사줄 수 있는데, 밥도 잘 사주는데 왜 “예쁜 누나”는 되지 못하는가 한탄하며 불금의 ‘혼맥’을 하릴없이 홀짝이던 그 순간, 잡았다 드디어 손, 손!  온몸에 긴장이 쫙 몰려와 의자 위에 무릎까지 꿇고 올라앉아 있다가 꺄오! 환호를 내지르고야 만다. 그렇지 손을 잡아야지. 깍지를 꽉 껴야지. ‘설마’와 망설임, 불안의 서스펜스를 마감하고 확신의 물꼬를 탁 터뜨리는 그때가 진정한 첫날인 거지. 이제야 벌컥벌컥 캔맥주를 들이키며 9회 말 투아웃 만루 홈런 같은 통쾌함의 정체를 확인한다. 중요한 건 남자 동생이 아니라 여자 누나가 먼저 손을 잡았다는 거다.  
 
“내가 먼저 잡을라고 했는데…”
“어느 세월에? 남녀 사이에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거지.”
 
비결은 밥 잘 사주는데도, 손예진처럼 예쁜데도, ‘도깨비’보다 더 강력한 정해인 같은 매력에도 있지 않았다. 먼저 손을 잡을 수 있는 용기, 확신을 던져주는 의지가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내가 먼저 잡으려고 했는데”라며 민망했을지도 모르는 누나를 감싸주는 기특한 동생이었기에 누나가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겠지만.  
누나의 타이밍 감각은 나이 때문에 거저 얻어진 게 아닐 터. 그러고 보니 잘난 남친에게는 뒤통수 맞고, 여자 동료들에게도 만만하고, 술자리에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은근슬쩍 남자들에게 손이라도 수없이 잡혔을 듯한 누나의 짠한 생활이 눈에 들어온다. 통념과 금기와 희롱의 풍랑을 헤쳐오며 알게 모르게 프로가 되어버린 누나의 경륜이 만든 결정적 타이밍 감각. 그러니  그 시간을 통과해본 누나들은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 비록 거대한 환상일지라도 그 정도는 품고 살아야지, 정해인 같은 동생이 나타나기만 해봐, 손예진처럼 변신해서 나도 매일 밥도 사주고 손을 먼저 꽉 잡아 주고 말 거야.  
 
글 이윤정 칼럼니스트 filmpool@gmail.com   사진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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