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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슬픔

an die Musik: 말러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무심한 세월이 벌써 4년이다. 2014년 4월 16일의 참사는 서서히 역사 속으로 물러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가슴의 멍은 아직도 시퍼렇다.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건의 충격과 공포가 조금씩 가라앉자 슬픔이 몰려왔다. 그해 봄 나는 출근하는 전철에서도, 길을 걷다가도 주르르 눈물을 흘리곤 했다.  
 
슬픔 속에서도 일을 해야 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떤 부처님을 신문 독자들에게 보여줄 것인가. 비탄에 잠긴 국민을 위로하고 싶었다. 퍼뜩 떠오르는 부처가 있었다. 경주 남산의 ‘감실(龕室)부처’였다. 전국의 문화유산을 두루 살피고 다닐 때 만났던 부처님으로 인자한 옆집 할머니를 닮은 분이다. 공식 명칭은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보물 198호)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냥 ‘할매부처’라고 부른다.  
 
경주 남산의 감실부처. 나비가 날아들어 부처의 품안에서 쉬고 있다.

경주 남산의 감실부처. 나비가 날아들어 부처의 품안에서 쉬고 있다.

남산은 연둣빛 신록으로 덮여 있었다. 간밤에 비가 내리고 맑게 갠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렀다. 이마에 땀이 배어날 무렵 부처가 있는 언덕에 도착했다. 등산로 곁이지만 아는 사람만 오는 곳이라 조용했다. 굴 속에 편안히 앉은 부처님은 산 아래를 굽어보고 있었다. 볼 때마다 신비한 표정은 여전했다. 보일 듯 말듯 미소를 머금은 것 같다가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에 빠진 것 같기도 했다.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참상을 알기라도 하는 듯. 그 앞에서 깊은 상념에 빠져 있는 동안 늙은 소나무들은 계곡 아래서 불어오는 바람에 누런 송화(松花)가루를 쉴 새 없이 날렸다.  
 
멀찍이서 망원렌즈로 감실부처를 바라봤다. 7세기 신라인은 화강석을 파고들어가 방을 만들고 부처를 새겼다. 덕분에 비바람을 피한 불상은 1300년 전 신라인의 얼굴 그대로 불국토 남산에 앉아 있다. 그때 렌즈 앞에 무엇이 팔랑거리며 스쳤다. 나뭇잎인가. 그것은 날개 짓을 하더니 부처의 가슴에 내려앉았다. 나비다. 거친 계곡 바람에 나부끼던 나비가 굴속으로 피신해 들어온 것이다. 연약한 생명은 부처의 품 안에서 마지막 숨을 쉬듯 몇 번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더니 다시 바람을 타고 하늘로 사라졌다. 오래도록 쉬어도 될 텐데 왜 저리 서두를까. 아이들의 넋인가. 눈물이 카메라를 적셨다.  
 
구스타프 말러의 연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는 자식을 잃은 아버지가 애달프게 부르는 노래다. 실제로 아이들을 먼저 보낸 시인 뤼케르트가 노랫말을 지었다. 말러는 곡을 붙일 때는 자식이 없었으나 나중에 역시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비극을 겪는다. 나는 명연주로 유명한 캐서린 페리어, 크리스타 루트비히, 피셔 디스카우 등의 음반을 모았지만 좀처럼 듣지는 않았다. 페리어의 노래가 아무리 절창이라 해도 ‘죽은 아이’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해 부처님 오신 날도 지나고 초여름의 더위가 서서히 달아오를 무렵 크리스타 루트비히의 LP를 턴테이블에 올렸다. 그리곤 가사집을 펼쳤다. 내 방식의 영결식이었다.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너의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설 때 / 나는 너의 엄마를 보고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 너의 귀여운 얼굴이 있어야만 하는데 /…/ 너의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설 때에 / 너도 같이 따라 들어오는 것만 같다 / 아, 내 귀여운 딸아.”  
 
고통스럽지 않은 사별(死別)이 없지만 살아남은 이가 부모일 때는 일상조차 모진 형벌이다. 세월호 참사의 슬픔과 분노는 무능한 정권의 숨통을 끊어놓기에 이르렀다. 희생자의 생환을 염원한 노란 리본은 이념과 진영을 가르는 깃발로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참사를 떠올릴 때 가장 아픈 부분은 아이들을 떠나보낸 부모의 고통이다. 그것은 경주 남산의 할매부처처럼 천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슬픔일 테니까. ●
 
글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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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