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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나무에 숨결을 불어넣다

내한 전시하는 독일 목공예 작가 에른스트 갬펄 
 
생명을 노래하는 계절이요, 파릇한 꽃과 나무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봄이다. 그런데 이 사람, 오히려 죽은 나무에 천착한다. 독일 공예작가 에른스트 갬펄(Ernst Gamperl·52)이다.  
그는 자연 재해로 쓰러지거나 도로·주택 공사로 어쩔 수 없이 베어낸 나무만 사용해 작품을 완성한다. “버려진 고목에 온기와 숨결을 되찾아준다”는 게 작가의 변이다. 그의 손에서 ‘환생’한 나무는 어떤 의미이고, 어떤 형상일까. 한국에서 두 번째 개인전(더그라운드, 3월 29일~4월 28일)을 위해 서울에 온 그가 이 질문에 답했다.  
 
로에베 공예상 우승자로 주목
에른스트 갬펄이라는 이름은 최근 국내외 언론에 여러 번 등장했다. 스페인 패션 하우스 로에베가 지난해 처음 제정한 로에베 공예상(Loewe Craft Prize)에서 우승을 거머쥔 게 계기였다. 세계 각국 4000여 명의 쟁쟁한 작가들이 겨룬 공모전이었던데다, 로에베의 모기업이 미술계의 큰 손이자 세계 최고 럭셔리 기업인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라는 점에서 갬펄이 주목받은 건 당연했다.  
 
당시 우승작은 ‘생명의 나무2’. 폭풍우에 쓰러진 300년 된 참나무를 깎아 만든 대형 오브제로, 뒤틀리고 갈라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재단 측은 “미적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쓰러진 나무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 최고점을 받았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갬펄의 작품 제목은 일종의 코드다. 1_2018_230이라면 230년 된 나무를 2018년 첫 번째로 제작했다는 의미다.] 왼쪽부터 4_2018_230(oak 65 x 35㎝) 2_2018_230(oak 51 x 34㎝) 3_2018_230(oak 72 x 31㎝)

[갬펄의 작품 제목은 일종의 코드다. 1_2018_230이라면 230년 된 나무를 2018년 첫 번째로 제작했다는 의미다.] 왼쪽부터 4_2018_230(oak 65 x 35㎝) 2_2018_230(oak 51 x 34㎝) 3_2018_230(oak 72 x 31㎝)

이번 전시 역시 갬펄의 작품 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연장선상에 있다. 갤러리 지하부터 3층까지, 올해의 신작 13점을 포함해 39점이 들어차 있다. 역시나 모두 고목이 소재다. 특히 오크나무(상수리·떡갈·굴참나무 등 참나무과)가 유독 많은 것은 유럽에서 가장 흔해 그만큼 많은 양이 버려지기 때문이란다.  
 
5_2018_230(oak 37x 76㎝)

5_2018_230(oak 37x 76㎝)

버려진 나무라서일까. 한 눈에 쨍하는, 대번에 눈길을 끌지는 않는다. 형태 역시 낯익다. 둥글고 길쭉한 작품 하나하나마다 좌우·앞뒤가 대칭되는 매끈함과는 거리가 있다. 외려 한 쪽이 찌그러진 형태가 수두룩하다. 벌레가 파먹고 벼락을 맞아 틈이 벌어진 세월의 흔적도 그대로다. 마치 숲에서 베다 놓은 그루터기 같다고나 할까.  
 
왼쪽부터 6_2018_120(oak 10 x 69㎝) 8_2018_120(oak10 x 63㎝) 7_2018_120(oak10 x 54㎝)

왼쪽부터 6_2018_120(oak 10 x 69㎝) 8_2018_120(oak10 x 63㎝) 7_2018_120(oak10 x 54㎝)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갬펄이 의도한 본질이다. “나무도 동물처럼 살아있는 생물이라 여긴다. 아름답고 우아한 생명의 그릇이다. 나는 그저 나무의 본성을 따라 유기적인 모양으로 바뀌게 하려는 것뿐, ‘제작’하기 위해 나무를 고문하고 싶지 않다.”  
 
9_2018_230(oak 73 x32㎝)

9_2018_230(oak 73 x32㎝)

손으로 깎고 천연 재료로 마감
이른바 나무의 ‘윤회’를 구현하는 그만의 방식은 어쩌면 남다른 이력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어릴 적 정식으로 예술을 배운 적이 없었다. 대신 열다섯부터 스물다섯까지 오토바이 레이서로 활약했다. 그러다 부상으로 레이싱을 멈추고 가구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나무를 알게 됐다.  
 
70_2017_230(oak 31 x 65㎝)

70_2017_230(oak 31 x 65㎝)

그 무렵 읽은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꿔 놨다. 1970년대 공예 대중화에 기여한 영국 작가 리처드 라판의 책이었다. “그의 작업을 본 순간 나는 독학으로 목공예를 파고들었고, 그것은 내 삶에 전환점이 됐다”고 회상했다. 이후 그는 나무가 기후와 조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스스로 연구했다.  
 
72_2017_150(oak 31 x 68㎝)

72_2017_150(oak 31 x 68㎝)

작업은 오롯이 그 노력의 산물이다. 나무와의 교감으로 시작해 나무를 향한 치유로 마무리된다. 일단 마치 의사처럼, 나무의 생김새에 최대한 어울릴 수 있는 작품의 형태를 진단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나무와의 대화’가 모든 작업의 시작이다. 그리고 마음이 정해지면 자신이 직접 만든 기계를 이용해 내부를 비워내고, 일정한 두께에 맞춰 겉을 깎는다.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과정은 ‘천연’을 고집한다. 완전히 건조된 나무가 아니라 축축한 상태로 작업하는데, 중간에 썩지 않도록 석회 물에 담가놓는다. 단단한 형태를 완성하기 위해 건조 전 마지막 과정에서 식초와 철분을 발라놓기도 한다. 한 마디로 화학적 처리가 전혀 없다. 때문에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땐 언제든 다시 물에 담가 불리는 게 용이하단다.  
 
지난해 ‘로에베 공예상’의 우승작인 ‘생명의 나무2’ 옆에서 포즈를 취한 에른스트 갬펄

지난해 ‘로에베 공예상’의 우승작인 ‘생명의 나무2’ 옆에서 포즈를 취한 에른스트 갬펄

그는 작품의 완성이 곧 나무의 완성이 아님을 강조했다. “10년 전에 작업한 작품이라도 새 기술이 나오면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내 작업은 항상 현재 진행 중이다.” ●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갤러리 LVS·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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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