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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앤락 6000억에 판 김준일 회장, 베트남서 지갑 푼다

김준일 락앤락 창업자는 사업 얘기가 나오자 서글서글하던 눈빛이 달라졌다. 10여 년 전 백두산에서 산 액자 속 호랑이 눈과 닮은 듯 했다. [김경빈 기자]

김준일 락앤락 창업자는 사업 얘기가 나오자 서글서글하던 눈빛이 달라졌다. 10여 년 전 백두산에서 산 액자 속 호랑이 눈과 닮은 듯 했다. [김경빈 기자]

26살 청년이 1978년 사업을 시작했다. 주로 플라스틱 주방용품을 유통하던 그는 85년 아예 주방용품 제조업체까지 설립했다. 무난하게 이어가던 사업은 외환위기의 암초를 만났다. 빚 없이 경영한 덕에 암초는 피했지만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자신만의 제품이 필요했다. 98년 내놓은 두 번 잠그는 방식의 투명 밀폐용기 ‘락앤락’을 선보였다. 미국과 한국의 홈쇼핑에서 대박을 내고 2004년 중국에 진출하면서 급성장을 시작했다. 창업자 김준일(66) 락앤락 회장은 2013년 포브스코리아가 선정한 ‘한국의 50대 부자’ 29위(재산 8049억원)에 이름을 올렸다.
 

창업 40년 밀폐용기 회사 매각
승계하면 자녀·회사 모두에게 독

베트남, 35년 전 한국과 비슷해
진출 땐 패 보며 도박하듯 승산

유명 대학 다니며 장학사업 벌여
빌딩 건립 등 부동산 사업도 시작

지난해 8월 김 회장은 맨손으로 일군 락앤락을 홍콩계 사모펀드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이하 어피너티)에 매각한다고 깜짝 발표했다. 김 회장 지분 전량(3496만1267주)를 6293억원에 판 것이다. 이후 7개월 가까이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던 그가 이달 초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꺼내놓은 첫 얘기는 ‘돈 잘 쓰는 법’이었다. “돈은 물 같아서 끌어안을수록 새나가고, 놔두면 썩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재산 100억원까지는 효용성이 늘지만 그 이상이 되면 사람들의 욕심이 얽혀 사고가 날 수 있다, 그러니 좋은 곳에 쓰자는 식이다.
 
“값싼 임금만 보다간 10년 못 버틸 것”
그가 두둑해진 지갑을 연 곳은 베트남이다. 올 초부터 하노이국립대, 호찌민국립대 등 유명 대학에서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성적이 우수한 120명을 뽑아 생활비를 포함한 장학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베트남 어머니를 둔 한국 다문화가정 자녀를 베트남으로 유학보내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이런 나눔 활동은 2년 전 김 회장이 사재 20억원을 출연해 세운 아시아발전재단이 맡는다. 그는 “락앤락이 2008년 베트남에 진출해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에 사회 환원의 의미도 크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베트남에 진출할 수많은 한국 중소기업에게 도움을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김 회장은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가 10년 연속 6%이상 성장하는데다 외국인 투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그는 “현재 베트남은 35년 전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라며 “과거 한국 경제가 성장한 방식을 떠올려 돈이 들어올 길목을 지키면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마치 상대방의 패를 다 들여다보며 하는 도박이나, 답을 알고 치는 시험과 같다는 것이다.
 
특히 부동산 사업에 관심이 많다. 올 초부터 베트남 호찌민시 신흥 부촌인 푸미흥에 20층 빌딩을 짓기 위한 설계 작업에 들어갔다. 최근 베트남은 도심 곳곳의 열대 숲이 사라지고 아파트나 빌딩이 올라간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소득 수준이 높아진 소비자들의 고급 주택 수요가 눈에 띄게 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부 경제 전문가는 베트남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랐다고 하는데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라고 말했다.
 
그가 베트남을 사랑하는 이유 중 사람들의 낙천적인 성격도 빼놓을 수 없다. 2016년 영국의 싱크탱크 뉴이코노미 재단이 140개 국가를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아시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가 베트남이었다. 김 회장은 “옆집에서 노래방 기계를 켜면 한국에선 바로 신고하겠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저 집 즐거워 보인다’며 노래방 기계를 주문한다는 말이 있다”며 “직원들이 항상 웃고 다니니 경영자인 나도 행복해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값싼 임금만 보고 베트남에 공장을 짓는다면 10년을 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상당수 기업이 중국에 진출했다가 인건비가 급등하자 철새처럼 베트남·미얀마 등지로 공장을 옮긴다. 반면 김 회장은 해외 진출할 때마다 현지 영업망을 공들여 짰다. 인건비 매력이 사라지면 내수기지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현재 락앤락은 6년째 베트남에서 소비자가 신뢰하는 100대 상품 중 하나로 꼽힌다.
 
“링에 서면 아무리 맞아도 아픈지 몰라”
김 회장은 베트남에서 신사업을 구상하며 국내에서는 락앤락과의 인연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다. 지난 2월엔 공동대표이사직에서도 물러났다. 락앤락은 전문경영인인 김성훈 대표 단독 경영체제로 바뀌었다. 김 회장의 락앤락 매각을 두고 일각에서는 기업을 운영하기도 어렵고, 자식에게 물려주기도 어려운 우리나라의 환경을 탓하기도 한다. 실제로 현재 상속세 규정상 대주주는 최고세율 50%에 최대주주 주식에 대한 할증까지 더해 최고 65%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락앤락처럼 매출이 3000억원을 넘으면 최대 500억원까지 상속제를 공제해주는 가업상속공제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차라리 지분을 팔아 마련한 현금으로 다른 회사를 차리는 편이 나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가업상속공제요건이 완화되지 않는다면 가업승계를 포기하는 기업이 늘 수 밖에 없다(오현진 중기중앙회 가업승계지원센터장)”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이런 부분에 대해 “전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물론 회사에 대한 애정은 여느 기업인들만큼이나 각별하다. 그는 “올 11월이면 창업한지 꼭 40년이 된다”며 “락앤락은 내 삶의 전부”라고 말했다. 더욱이 매각 당시 김 회장의 세 아들 중 첫째와 둘째가 락앤락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가 락앤락 경영권을 내놓게 된 계기는 중국이었다. 2010년 이후 연평균 50%씩 성장하던 중국 시장이 2014년부터 휘청이기 시작했다. 당시 시진핑 정부의 부정부패 척결 정책에 따른 선물용 특판 매출 감소가 영향이 컸다. 중국 시장을 수습하느라 고군분투하던 그는 결국 2년 후 심혈관 질환으로 큰 수술을 받았다.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매각을 결심한 거예요. 회사가 작을 때는 혼자 달려도 상관없었지만, 회사가 커지고 나니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조직적인 시스템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러다 어피너티에서 먼저 인수 의지를 보여왔죠. 41개 회사를 인수해서 3년 반 후 매각할 때까지 3배 이상 키워낸 기록을 보니 락앤락의 제2의 도약을 맡길만 하겠다는 믿음이 생긴 겁니다.”
 
매각 사실은 아내를 제외한 가족에게도 숨겼다. 혹시라도 밖으로 새나가면 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아무리 좋은 학교를 다니고 경영수업을 착실히 받았다해도 실제 경영 경험이 없는 2세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것은 자녀나 회사 모두에게 독이 될 수 있다”고 승계는 고려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혹시나해서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 있는지 묻자 그는 “떠오르지 않는다”고 답했다.
 
“권투선수가 링에서 상대편과 싸울 때 아무리 맞아도 공격할 기회를 노리느라 아픈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최고경영자(CEO)는 사업에 몰입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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