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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부드러운 힘, 강화도에 있었네

책 속으로
강화도의 나무와 풀

강화도의 나무와 풀

강화도의 나무와 풀
박찬숙·강복희 지음
작가정신
 
강화도 지오그래피
함민복 외 16인 지음
작가정신
 
최근 한꺼번에 출간된 두 권의 책 강화도의 나무와 풀강화도 지오그래피를 읽으면서 단순히 강화도뿐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근본 심성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강화도의 나무와 풀이 우리 민족의 인내와 지혜를 상징하는 강화도에 대한 생태학적 접근을 보여준다면, 강화도 지오그래피는 그곳이 고향인 사람들과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친근한 이야기, 섬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소개한다.
 
강화도 지오그래피

강화도 지오그래피

강화도는 상고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역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강화도의 나무와 풀에는 갯벌과 산, 들로 이어지는 강화 나들길을 박찬숙·강복희 두 저자가 10여년간 누비며 관찰하고 촬영한 563종의 나무와 풀에 관한 세세한 기록이 담겨져 있다. 천연기념물 제304호로 지정된 볼음도의 은행나무, 관청리의 600년 된 느티나무, 팔만대장경 경판 제작에 사용된 돌배나무 등에서 소중한 자연 생태의 보고(寶庫)일 뿐 아니라 사적(史蹟)으로도 보호받고 관리되어야 할 강화도의 가치를 알게 된다. 바다를 통해 유입된 생태계 교란 식물이 강화도에 처음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과 도로공사 등 난개발 와중에 방치되고 있는 산닥나무 자생지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는, 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강화도의 지난했던 역사만큼이나 나무와 풀들도 인내와 지혜를 발휘하여 영원토록 자손을 퍼뜨릴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강화도 지오그래피는 강화도를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의 삶과 역사, 문화에 대한 이야기다. 시인 함민복, 소설가 성석제, 구효서, 고(故) 신영복 등 대중에게 친근한 작가뿐만 아니라 천문학 저술가, 역사학자, 국문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쓴 17편의 강화도 이야기가 제각각의 스토리텔링을 펼쳐 보인다. 강화에서 나고 자란 소설가 구효서는 폐가가 된 옛집을 찾아갔을 때 분합문(대청 전면의 긴 창살문) 잠금목에 쓴 유년 시절 ‘구효서’ 이름 세 글자가 남아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이 자신이 태어나 자란 집이라는 유일한 증표임에 감격해 한다. 그에게 고향이란 흔적만 있는 곳이지만 그 흔적은 자신의 모든 추억을 되살아나게 하는 그런 곳이다. 천문학 저술가 이광식이 안톤 체호프의 희곡 ‘세 자매’의 한 대목을 빌어 “두루미가 왜 나는지, 아이들이 왜 태어나는지, 하늘에 왜 별이 있는지 모르는 삶은 거부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을 모르고 살아간다면 모든 게 무의미하여 바람 속의 먼지 같을 것이다”라며 강화도를 제2의 고향, ‘별지기의 성지(聖地)’로 삼은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강화도 선두리의 석양 풍경. 강화도는 한반도 역사의 축소판일 뿐 아니라 500종이 넘는 나무와 풀이 자라는 생태 보고다. [사진 작가정신]

강화도 선두리의 석양 풍경. 강화도는 한반도 역사의 축소판일 뿐 아니라 500종이 넘는 나무와 풀이 자라는 생태 보고다. [사진 작가정신]

이런 에피소드들에서 나는 세상에서 늘 강하고 센 힘만이 찬양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과 만난다. 시인 함민복은 전등사 길을 걷다가 “길은 최대한 직선을 지향한다. 그러나 굽을 수밖에 없는 것이 길의 운명이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그가 강화도의 뻘에 대해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준다//말랑말랑한 힘/말랑말랑한 힘”(‘뻘’ 전문)이라고 노래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뻘은 진득진득해서 발이 빠지면 꼼짝을 못할 것 같아도 그 속은 말랑말랑해 우리가 다음 걸음을 옮길 수 있도록 발을 잡아주고, 직선으로 뻗어 있는 길 역시 막다른 곳에 이르러서는 곡선으로 구부러짐으로 해서 또 다른 풍경으로 이어진다. 시인 함민복이 빼어난 서정시만을 줄기차게 써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뻘과 길이 내포하고 있는 강한 것을 부드럽게 품에 안아주는 ‘강화도의 힘’을 체득한 데에서 나왔을 것이다. 강화도는 뻘에 번지는 낙조(落照)가 아름다운 섬이다. 신영복은 강화도의 서쪽 끝 하일리의 저녁노을을 두고 “하늘과 땅이 적(赤)과 흑(黑)으로 확연히 나누어지는 산마루의 일몰과는 달리 노을로 물든 바다의 일몰에서는 내일 아침 다시 동해로 솟아오르리라는 일출의 예언”이 있다고 했다.
 
나는 함민복·신영복 두 사람의 글을 통해 강화도로 대변되는 우리 민족의 저력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숱한 역사의 질곡을 경험한 우리 민족의 삶에는 뻘과도 같이 발을 잡아줘 길을 가게 하는 ‘말랑말랑한 힘’이 내재되어 있음과, 저무는 일몰 속에서 하루의 끝이 아닌 일출의 약속을 읽어내는 ‘열린 정신’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박형준 시인·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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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