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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여'비서는 죄가 없다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올 초 방영된 KBS 드라마 ‘저글러스’는 기업체 여비서들의 분투기다. 여비서들이 꽃 아닌 프로페셔널로 그려졌다. 보스의 사내정치에까지 관여한다. 국회 배경의 정치 드라마 ‘어셈블리’(2015·KBS)의 여성 선임 보좌관 송윤아의 역할도 크다. 뛰어난 정무감각의 능력자로 나온다. 부패한 기성 정치에 실망한 송윤아는, 가진 것은 울분뿐인 노조 간부 출신 초선 의원(정재영)과 손잡고 새 정치에 대한 꿈을 펼쳐나간다. 참모를 뛰어넘은 정치적 동반자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 피해자 김지은 전 정무비서는 그러나 여성 보좌진의 현실이 녹록지 않음을 드러냈다.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고, 방송 폭로 후에는 ‘꽃뱀설’ 등 2차 피해에 시달렸다. 안 전 지사에 대한 구속영장은 두 번이나 기각됐다. 위계에 의한 간음을 입증하기에 법리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여성계는, 법원이 피해자가 느끼는 불안감과 위협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법을 좁게 해석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법원은 영장을 기각하며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으나, 안 전 지사가 김씨와 통화한 차명폰을 폐기한 사실이 드러났다.
 
최근에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과거 외유성 해외출장이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서 동행한 여성 인턴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인턴의 신상이 털리고 인권침해가 잇따르고 있다. 사진과 연락처가 돌아다니는가 하면 ‘ㅍㅅㅌㅊ(평상타취·평균 이상이라는 뜻의 인터넷 은어)’ 등 외모를 평가하는 게시물, ‘몸 팔고 승진’, ‘세상 쉽게 사는 X’ 등의 댓글이 수백개 달렸다.
 
이 해외출장이 이례적이고 의구심을 자아내는 것은 맞다. 그러나 사태의 본질은 확인되지 않은 ‘여비서와 의원 나리의 수상한 출장’이 아니라, 피감기관의 돈으로 떠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내로남불식’ 출장 자체의 부적절성에 있다. 여성 보좌진에 ‘꽃뱀’ 아니면 ‘소파 승진’ 프레임을 들이대는 우리 사회의 낡은 성인식이 또 한 번 드러났다.
 
“나는 이제 앞으로 남자의원 모시고서는 절대 해외출장을 못 가겠구나. 승진이라도 조금 빠르게 됐다 하면 구설에 오르겠구나. 알고 있나. 니들이 하는 더러운 추궁들이 여자 비서들을 더 괴롭힌다는 사실을?” 국회 관계자들의 페이스북 익명 게시판인 ‘여의도옆대나무숲’에 올라온 글이다.
 
이번 일을 기화로 미투 열풍이 한창일 때 일각에서 들고나온 ‘펜스 룰’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아예 남녀가 함께 일할 기회를 차단해 불미스러운 일을 막자는 것이다. 그러나 펜스 룰은 여성들을 노동현장에서 고립시키며 남성 스스로를 잠재적 가해자로 만드는 꼴일 뿐, 양성이 더불어 살아가는 ‘포스트 미투’ 시대의 해법은 아니다.
 
‘여’비서는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여성 비서 직군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성적 대상으로 보는 비뚤어진 인식이다. 이보라 국회 여성정책연구회 대표는 12일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집담회에서 “국회는 피감기관과 기업을 상대로 성희롱 실태, 여성 임원 비율 확대 등의 시정요구는 잘하지만 정작 그들 자체는 내부를 정화할 시스템이 전혀 없는 치외법권지대”라며 “일부 남성 의원과 보좌관이 여성 보좌진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압도적인 ‘남초’ 공간인 국회에서 여성 보좌진들은 ‘여비서’라는 야릇한 성적 프레임과 성차별, 성폭력의 굴레와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썩은 기성 정치판을 흔드는 참정치인을 만들어낸 여성 보좌관 송윤아는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인가.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다. 대한민국 여성 보좌진들 힘내시라!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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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