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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헌법의 일체성

복거일 소설가

복거일 소설가

행정부의 헌법개정안에선 현 정권의 이념적 성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념적 성향은 경제 분야에서 두드러지니,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 경제 이론이라는 사실이 그 점을 보여준다. 자연히, 이 개정안이 큰 수정 없이 의결되면, 경제적 자유는 위축될 것이다.
 
‘동일가치 노동·동일수준 임금’ 조항에서 이런 사정이 특히 뚜렷하다. 이 조항은 들여다볼수록 얄궂다. 헌법에 들어가기엔 너무 사소하다. 헌법은 우리 사회의 근본 원리들을 밝힌 법인데, 법률에나 들어갈 법한 조항이 들어갔으니, 자연스럽지 않다.
 
그렇다고 법률에 어울리는 것도 아니다. ‘동일가치 노동’은 형이상학적 개념이다. 노동의 가치는 측정할 길이 없다. 특정 노동이 받는 임금으로 그것의 가치를 추산할 수밖에 없다. 즉 ‘동일가치 노동·동일수준 임금’은 선후가 뒤바뀐 구호다. 그처럼 측정하기 어려운 개념은 현실에 적용될 법률을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이처럼 문제적인 조항을 행정부가 굳이 헌법에 넣겠다고 나선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미스터리를 풀 단서는 ‘노조의 요구사항’이라는 보도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고대부터 서양 철학자들은 재화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그것이 지닌 가치라고 보았다. 근대에 이르러, 애덤 스미스는 가치를 만드는 것은 재화의 생산에 들어간 노동이라고 보았다. 이른바 ‘노동가치설’이다. 혼란스럽게도,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세 가지 노동가치설을 제시했다. 노동이 힘들다는 점에 주목한 ‘노동비효용설’, 노동의 원가에 주목한 ‘생산원가설’, 그리고 노동량에 주목한 ‘노동량가치설’이다.
 
리카도는 이 셋 가운데 ‘노동량가치설’을 채택해서 발전시켰다. 그러나 재화의 가치가 노동량으로 결정된다는 이론은 생산에 기여한 자본가의 몫을 설명하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리카도의 경제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자본가의 몫인 ‘잉여 가치’를 자본가의 ‘착취’로 규정함으로써, 노동량가치설에서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에선 잉여 가치가 자본가들에게 귀속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았지만, 노동량만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이론에 따라 그것을 착취로 규정한 것이다.
 
20세기 전반 러시아에서 마르크스의 이론을 따른 명령경제가 들어섰다. 러시아는 막대한 투자를 통해서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고 선전했다. 그러자 투자에 들어간 잉여 가치는 결국 노동자의 몫을 착취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자본가는 이기적이지만 중앙 당국자는 사회를 위하니, 서로 다르다’고 러시아 경제학자들은 해명했다. 요즈음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경제학의 역사에서 ‘내로남불’의 원조는 스탈린의 무자비한 명령경제를 옹호한 이 멋진 해명이다.
 
마르크스의 잉여 가치 이론을 영국 경제학자 조안 로빈슨은 “말장난”이라고 평했다. 그녀는 케인스의 조력자였고 뒷날 영국 사회주의 경제학자들을 이끌었다. 중국의 ‘문화 혁명’을 지지하고 김일성 체제의 성취를 “조선의 기적”이라 칭송했을 만큼 공산주의의 우월성을 끝까지 믿었다. 그런 그녀도 마르크스의 이론에 내재한 문제점을 외면할 할 수는 없었다.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을 폐기시킨 것은 효용이라는 개념이다. 가치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바뀌지 않는다. 효용은 특정 재화가 특정 개인에게 지니는 쓸모이므로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개인들의 효용을 기본 개념으로 삼으면,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어 가격이 결정되는 과정이 이내 설명된다. 그렇게 가치 이론(value theory)이 효용 이론(utility theory)으로 대치되면서, 현대 경제학이 나타났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가치에 바탕을 둔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은 학문적 가치를 잃었다. 그러나 그것이 지닌 이념적 힘은 러시아 혁명 이후 오히려 커졌다. 로빈슨의 설명을 빌리면, “자본주의 체제는 그 자신의 규칙 안에선 정의롭지 않은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이유로 해서 개혁이 불가능하다; 자본주의 체제에 관한 한, 그것을 전복시키는 길밖엔 없다.”
 
이제 ‘동일가치 노동· 동일수준 임금’ 조항이 헌법 개정안에 들어간 사연이 드러난다.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노동량가치설’을 따라 노동량이 재화의 가치를 창출한다고 본다. 그런 견해에 따르면, 임금 조항은 헌법에 들어갈 만큼 중요하다.
 
대부분의 노동운동가들은 그 조항에서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이나 이념적 함의들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그 조항이 당장 큰 문제를 일으킬 것도 아니다. 그래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리에 적대적인 이념에서 나온 조항이 헌법에 들어간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헌법은 사회의 ‘궁극적 결정규칙’이다. 그래서 모든 사회적 판단들이 그것으로부터 도출된다. 당연히, 헌법은 이념적으로 동질적이어서 조항들이 상충하지 않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동일가치 노동·동일수준 임금’ 조항은 우리 헌법에 너무 맞지 않아서, 헌법의 일체성을 근본적 수준에서 훼손할 수밖에 없다. 국회는 이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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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