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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집밥 시대…국·탕·찌개도 요리 않고 사먹는다

빠르게 느는 간편가정식 소비 
서울 동대문구의 대형마트에서 한 여성이 간편가정식(HMR)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최근 자녀를 둔 가정의 HMR 소비가 크게 늘고 있다. 올해 HMR 시장 규모는 4조원 대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수기 기자]

서울 동대문구의 대형마트에서 한 여성이 간편가정식(HMR)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최근 자녀를 둔 가정의 HMR 소비가 크게 늘고 있다. 올해 HMR 시장 규모는 4조원 대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수기 기자]

서울 금호동에 사는 주부 김성미(42)씨는 주말이면 종종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한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아이의 엄마인 그는 직장맘이라 평일엔 요리를 하기 힘들다. 평일 저녁 아이들의 식사는 보모 아주머니가 챙긴다. 김씨나 그의 남편 모두 저녁식사를 밖에서 하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주말엔 꼭 아이들에게 자신이 만든 ‘집밥’을 먹이고 싶다는 마음이다.
 
주말에도 거창하게 요리를 하진 않는다. 집 근처 대형마트에서 구입한 간편가정식(Home Meal Replacement·HMR)을 메인으로 하고, 여기에 친정에서 보내온 밑반찬들로 상을 꾸민다. 대신 HMR에는 대파와 양파·감자 등 각종 채소를 더하는 식으로 자신만의 맛을 낸다. 김씨는 “닭볶음탕의 경우 600g짜리 한 봉투를 사면 4500~6000원으로 충분한데 직접 요리하면 생닭 한 마리에 5000원가량 든다”며 “요리에 드는 시간도 아낄 수 있고 과거와 달리 조미료 같은 인공적인 맛도 덜해 자주 즐기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음식 맛도 일정 수준 이상 낼 수 있으니 요리하다 실패할 우려도 없어 남편이나 아이들 모두 좋아한다”며 웃었다.
 
초등생 자녀 둔 가구 절반, 간편식 이용
집에서 요리를 하는 ‘집밥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직접 요리를 만들기보다는 배달음식이나 HMR을 활용하는 가정이 늘면서다. 당초 HMR은 1~2인 가구가 주로 즐기는 제품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엔 HMR의 이용 주체가 자녀가 있는 3~4인 가구로 옮겨가는 추세가 뚜렷하다. 이는 맛과 품질이 나아지면서 HMR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는 데다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도 상대적으로 우수하다는 평가가 확산된 덕분이다. 실제 요즘 HMR의 경우 국과 탕류도 한 끼에 5000~1만원(2인분 기준)이면 충분히 구입할 수 있다. 선택의 폭도 크게 넓어졌다. 이마트의 자체 HMR 브랜드인 피코크의 경우 1000여 가지의 음식 라인업을 자랑한다.
 
이런 변화는 수치로도 입증된다. 12일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칸타월드패널(KWP)이 20세 이상 소비자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HMR의 주소비층이 1인 가구보다 자녀가 있는 다인(多人) 가구로 넓어지고 있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조사는 소비자를 1~2인 가구, 미취학 자녀 가구, 초등 자녀 가구, 중·고등 자녀 가구, 대학생 이상 자녀 가구, 시니어 가구 등으로 나눠 이뤄졌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 결과 중·고등 자녀가 있는 가구의 국·탕·찌개류 HMR의 연평균 구매 비용은 지난해 1만7306원으로 2년 전에 비해 약 70%가 늘었다. 1년 내 제품을 한 번 이상 구매한 비율(침투율)도 2015년 16.3%에서 지난해 43.6%로 크게 높아졌다. 반면 1~2인 가구의 국·탕·찌개류 HMR의 연평균 구매 비용은 2015년 7679원에서 지난해 1만2865원으로 늘었지만, 침투율은 2015년 16.3%에서 지난해 35.8%로 그 상승폭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주로 반찬이나 간식용 등으로 많이 쓰이는 ‘냉동 반찬·스낵류’도 1~2인 가구보다 초등 자녀 가구와 중고등 자녀 가구의 HMR 구매액과 구매 빈도가 월등히 높았다. 1~2인 가구의 냉동 반찬·스낵류 제품 구매 금액은 2015년 2만6144원에서 지난해 3만6666원으로 2년간 1만522원이 늘어난 데 비해 초등 자녀 가구는 5만2276원에서 지난해 8만636원(2만8360원 증가)으로, 중고등 자녀 가구는 4만6148원에서 지난해 6만5912원(1만9764원 증가)으로 각각 뛰어올랐다. 초등자녀 가구의 경우 구매 빈도 또한 연평균 5.87회에서 7.9회로 크게 늘었다. 1~2인 가구의 냉동 반찬·스낵류 구매 빈도는 2015년 연 3.19회에서 지난해 3.88회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런 추세와 관련해 남성호 CJ제일제당 트렌드전략팀장은 “맛과 품질이 향상되고 다양한 메뉴의 제품이 출시되면서 HMR에 대한 인식도 함께 바뀌고 있다”며 “여기에 자녀가 있는 가구일수록 부모가 직장 생활과 아이 뒷바라지에 시간을 쪼개야 하다 보니 집밥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선 HMR을 선택하는 경향이 커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1~2인 가구뿐 아니라 자녀를 둔 가정까지 HMR을 즐기면서 시장 규모도 꾸준히 커지고 있다. 한국농식품유통교육원에 따르면 2009년 7100억원 규모였던 국내 HMR 시장은 지난해 3조원 규모까지 커졌다. 올해는 4조원대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내 HMR 시장이 당분간 지속적으로 커질 것이란 데는 이견이 없다. 영국의 시장정보조사업체인 민텔에 따르면 국내 HMR 소비 규모(2016년 기준)는 소비자 1인당 연간 0.8㎏으로 미국(7㎏)이나 프랑스(6㎏)·독일(5㎏) 등 HMR 선진국은 물론 이웃 일본(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온라인으로 주문받아 가정까지 배달도
기업들도 HMR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기업은 식품업계 1위 업체인 CJ제일제당이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HMR 관련 제품으로만 1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재현 CJ그룹 회장까지 나서 HMR 관련 연구개발(R&D) 투자를 독려하고 있다. 단순히 ‘한 끼를 때우는’ 음식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주문이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까지 HMR 사업을 키우는 데만 총 1200억원을 투자했다.
 
동원홈푸드는 2016년 온라인 HMR 브랜드인 ‘더반찬’을 인수해 신선한 HMR 메뉴를 온라인을 통해 가정에 배송해주는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다. 다른 업체들이 레토르트형 HMR 상품에 힘을 쏟는 것과 달리 나름의 전략을 통해 찾은 틈새(niche)시장이다. 더반찬은 지난해 4월 서울 가산동에 6600㎡(약 2200평) 규모의 대형 조리센터를 구축하고 수도권 소비자를 공략 중이다. 이곳에선 동원홈푸드 소속 셰프 7명이 자체 메뉴를 개발하고 100여 명의 조리원들이 각종 국과 찌개 등을 실시간 조리한다. 하루 300여 종의 메뉴를 만들 수 있다.
 
이마트는 자체 HMR 브랜드인 피코크를 무기로 소비자들을 공략 중이다. 지난해 피코크 브랜드 매출은 2280억원에 달한다. 제품의 맛을 높이기 위해 피코크 상품개발팀에 특급호텔 출신 셰프를 5명이나 배치했다. 신세계푸드는 자체 HMR 브랜드인 ‘올반’을 내세워 지난해에만 4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신세계푸드는 성수동 사옥 1층에 소비자들도 이용할 수 있는 ‘테스트 키친’을 운영하는 동시에 신제품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있다. 또 자체 브랜드 식당 등에서 판매되는 요리와 반찬을 HMR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전략도 구사하고 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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