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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통일은 소원이 아니었다…20대와의 대화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이러다 정말 통일되면 어쩌지”라는 20대 청년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종전 선언’ ‘민족 통일’ ‘평화 번영’이라는 화려한 담론이 춤추는 감격의 시대이건만 그들은 떨떠름하다. 김정은 면전에서 남북이 손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열창하고, 김정은과의 악수가 “영광”이 되고, 그의 부인 이설주를 “여사님”이라고 부르고, 김정은의 ‘국빈 방문’이 몽상이 아닐 수 있는 극적인 상황에 그들은 흥분해야 한다. 젊기에 진보적이라면 총구에서 화약 대신 꽃가루가 흩날릴지 모르는 신(新)데탕트에 열광해야 한다. 착각이었다.
 
김정은과 통일, 민족에 대한 젊은이들의 생각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대학원 박사 과정의 전모(29), 직장 초년생 우모(27·여), 취업준비생 권모(26·여), 인턴을 하는 휴학생 황모(26), 대학 재학생 이모(23·여)·김모(23·여)씨 등 6명과의 대화였다. 서울에 있는 대학 출신인 이들 20대를 통해 엿본 젊은이들의 가치관은 기성세대와는 아주 달랐다.
 
그들에게 김정은은 누구인지 물었다. “우스꽝스러운 머리 스타일과 뚱뚱한 몸매, ‘Dim(멍청한) 정은’이란 별명, ‘고사포로 고모부를 쏴 죽인 어린 폭군’ 등의 뉴스를 접했을 땐 두려움보단 조롱의 웃음이 먼저였다.”(황) 그래서 “자중지란 속에 북한이 망할 수도 있겠다”(우)는 게 첫인상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평화 제스처를 기획하는 무서운 독재자”(이)이며 “구밀복검(口蜜腹劍)의 이미지”(권)로 바뀌었다.
 
이제는 세습 독재, 인권 탄압, 처형과 암살, 핵 위협의 로켓맨(Rocket Man)은 다 잊히고 광대도, 폭군도 아닌 정상 국가의 지도자로 둔갑했다. “뭔가 우스꽝스럽고 친근한 느낌을 주면서도 공포정치를 펴는 무서운 카리스마가 있다. 레드 벨벳 멤버의 ‘너무너무 영광’이라는 말은 김정은에 대한 우리 세대의 정서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우), “경외감을 갖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황)고 전한다.
 
그들에게 민족에 대한 환상은 없었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혈통 중심의 민족 이데올로기는 시대착오적인 개념이었다. “‘한민족이니 통일하자’ ‘같은 민족이니까 같이 살자’는 낡은 관념이고 동화처럼 들린다”고 하고, ‘동족=통일’ 프레임을 “전체주의적 강요이고, 동의하기 힘든 감성론”이라고 비판한다.
 
고대훈칼럼

고대훈칼럼

북한의 ‘우리 민족끼리’ 공세는 2000년대 남북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6·15 남북 공동선언’의 제1항에서 시작됐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자”고 했다. 북한은 이를 토대로 ‘민족 공조론’을 편다. “외세, 즉 미제(美帝)의 간섭을 배격하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조국 통일 위업을 성취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우리 청년들은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로 보는 학설에 더 솔깃하다. 민족은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이 되는 정치 공동체일 뿐이다. ‘우리끼리’라는 북의 제안에 ‘언제 봤는데’라고 되묻는 게 20대의 속내다. “통일은 소원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규정한다.
 
통일의 명분과 총론에는 동의하지만 조건부였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의 아픔은 통일 문제에도 배어 있었다. 4명 중 한 명꼴로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에게 통일은 설렘보다 불안으로 다가왔다.
 
“조부모 세대가 만든 분단인데 왜 젊은 우리가 통일비용을 떠안아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이), “이혼한 부부가 재결합할 때는 부부였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재결합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 아닌가.”(우), “통일이라는 대의를 위해 개인의 이익, 즉 ‘소의’가 희생돼선 안 된다.”(김) 따라서 서로 교류하고 공존하는 이웃 나라로서 ‘투 코리아(Two Korea)’를 선호한다.
 
차가운 현실을 토로하는 우리 젊은이에게 통일과 민족은 낭만이고 사치일 수 있다. 철없는 넋두리 같지만 이유 있는 항변이다. “모두가 꿈꿨지만 못 이뤘던 세계사의 대전환”(문재인 대통령)이라는 거대한 쇼가 펼쳐질 예정이지만 큰 울림을 못 내는 까닭이다. 설사 북핵 폐기와 평화의 과실이 열리더라도 천문학적인 청구서를 붙들고 아등바등할 당사자는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20대는 직시한다. 푸념이라고 외면하고 싶겠지만 그게 청년 민심이다.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대화 중 가슴에 와닿는 한 토막. “저희에겐 자기 손으로 밥벌이하는 당연한 삶의 방식이 꿈처럼 됐어요. 얼굴도 모르는 북녘 사람들과 함께 살자고 돈 내라는 건 우리 세대에겐 잘 먹히지 않을 소리네요.”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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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