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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엽기적인 그녀' '과속스캔들'…베트남 한국영화 리메이크 열풍

한국영화 '써니'를 리메이크한 베트남 영화 '고고 시스터즈'. [사진 CJ E&M]

한국영화 '써니'를 리메이크한 베트남 영화 '고고 시스터즈'. [사진 CJ E&M]

 베트남에 한국영화 리메이크 바람이 분다. 현재 극장가에 상영중인 작품만 세 편. 한국영화 ‘써니’의 베트남 리메이크 영화 ‘고고 시스터즈’는 3월초 현지에서 개봉, 한 달만에 베트남 로컬 영화 역대 흥행 5위에 올랐다. '과속스캔들'과 '엽기적인 그녀'의 베트남판도 각각 지난달 30일, 이번 달 6일 개봉했다.   
 최근에는 송지나 작가의 '모래시계'를 한국·베트남 합작영화로 제작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국내에서 1995년 방영 당시 시청률 60%에 육박했던 드라마다. ‘조폭마누라 2’ ‘네버엔딩 스토리’등의 한국 영화도 베트남판 영화가 나온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베트남 영화 '내가 니 할매다'.

베트남 영화 '내가 니 할매다'.

 이런 붐은 3년 전 ‘수상한 그녀’를 리메이크한 베트남 영화 ‘내가 니 할매다’의 흥행 성공이 도화선이 됐다. 영화진흥위원회 윤하 팀장은 “베트남은 ‘부산행’ 같은 한국 블록버스터가 개봉해 흥행 1위를 하는 등 한국 콘텐트에 관심이 큰 시장”이라며 “리메이크에 대한 수요는 ‘수상한 그녀’ 베트남판이 잘 된 이후 커졌다. 특히 가족‧휴먼 드라마와 코미디가 주목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미녀는 괴로워'의 베트남판도 현지에 개봉했다. 
 눈에 띄는 건 리메이크 방식이다. 해외에 판권을 판매하되 한국 측에서 제작에 적극 참여하는 분위기다. ‘고고 시스터즈’는 '써니'의 국내 투자배급사 CJ E&M이 베트남 제작사 HK 필름과 설립한 합작회사 CJ HK 엔터테인먼트가 만든 한‧베 합작영화다. 원작의 노하우를 살리되, 철저히 현지화하는 것이 초점. '써니'가 주인공들이 여고생이던 80년대와 중년이 된 현재를 배경으로 삼았다면, '고고 시스터즈'는 베트남전이 끝나고 남‧북 베트남이 통일되기 직전이던 74년과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한 2000년이 배경이다. 음악은 70년대 베트남 히트곡을 현대적으로 편곡했다. 지난달 베트남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고고 시스터즈’의 박스오피스 1위를 두고 “베트남과 한국의 협력이 성공 요인”이라고 강조한 발언은 현지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앞서 CJ E&M은 '수상한 그녀' 베트남·일본‧태국‧인도네시아 등지에서현지 영화사와 손잡고 각국 정서에 맞춰 리메이크하는 방식으로 약 780억원의 박스오피스 매출을 올렸다.   
한국영화 '과속스캔들'과 베트남 리메이크판 '할아버지는 서른 살'.

한국영화 '과속스캔들'과 베트남 리메이크판 '할아버지는 서른 살'.

 ‘과속스캔들’은 국내 공동제작사 디씨지플러스가 리메이크 판권을 베트남 영화사 르다우에 판매했는데, 현지에 진출한 한국 영상 회사 푸르모디티가 리메이크할 한국 콘텐트를 선정하는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제작비 일부를 투자했다. 푸르모디티 김신석 본부장은 “베트남에 사무실을 차리고 5년 전부터 어떤 스토리가 통할지 시장조사를 해왔다”면서 “현재 베트남 제작사 세 곳과 손잡고 현지에서 인기 있었던 한국 드라마의 베트남판 리메이크, 요리 관련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등을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모래시계’는 송지나 작가와 드라마 제작사 현무엔터프라이즈 등이 손잡고 베트남 엔터테인먼트 기업 VIE 그룹과 공동 투자 방식으로 리메이크한다. 배우 정준호도 출연할 예정. 제작사 측은 “추후 한‧베 합작법인을 만들어 영화·드라마·예능 등 문화콘텐트 제작사업으로 확장할 계획”이라 밝혔다.
'엽기적인 그녀'의 베트남 리메이크 영화 '마이 쌔시 걸' 포스터.

'엽기적인 그녀'의 베트남 리메이크 영화 '마이 쌔시 걸' 포스터.

 왜 베트남일까. 김신석 본부장은 “베트남은 한국영화·드라마가 한국과 거의 동시에 출시될 만큼 한국문화에 익숙한 데다, 아직 자국 작가나 오리지널 스토리가 부족해 한국 콘텐트 리메이크가 활발하다”며 “제작비가 한국의 절반 이하로 낮고, VOD 등 2차 판권 수익도 회수가 잘되는 편이어서 시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게다가 베트남 영화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는 중이다. 2012년 300개 안팎이던 영화관이 2~3년 사이 500개 이상으로 늘었다. CGV·롯데시네마 등 한국 극장사업자의 진출도 두드러진다. 영진위 윤하 팀장은 “베트남은 노인을 공경하고 가족을 중시하는 정서 등이 한국과 잘 맞아 현지에서도 다른 나라보다 한국 콘텐트를 선호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윤 팀장은 다만 “최근엔 기획·개발을 시간을 충분히 갖지 않고 급하게 만들어지는 작품도 있는 것 같다”면서 급부상한 한국영화 리메이크 바람이 졸속 제작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우려를 표했다.   
베트남·일본판 ‘써니’, 한국 원작과 뭐가 다를까
한국영화 '써니'와 베트남 리메이크판 '고고 시스터즈' 포스터. [사진 CJ E&M]

한국영화 '써니'와 베트남 리메이크판 '고고 시스터즈' 포스터. [사진 CJ E&M]

‘써니’ 베트남판인 ‘고고 시스터즈’를 직접 관람해봤다. 중년 여성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친구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고교시절 친구를 찾아 나서는 현재와 과거 고교시절이 교차되는 얼개는 여전했다. 음악과 청춘이 어우러진 영화인 만큼, 음악 프로듀서로도 유명한 응웬 꽝 즁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그는 ‘내가 니 할매다’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이자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다.  
영화는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패배하고 남‧북 베트남이 통일되기 직전이던 74년과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던 2000년 격동기를 바탕 했다. 80년대와 현재 서울을 무대로 한 ‘써니’와 시대 묘사가 신기할 정도로 겹쳤다. 주연 캐릭터는 7명에서 6명으로 줄었다. 훗날 시집살이에 시달리는 문학소녀 서금옥 캐릭터가 빠졌다. 형형색색 복고 패션과 ‘깻잎머리’ 같은 헤어스타일은 원작과 판박이. 웃음 포인트였던 귀신 들린 연기, ‘욕 배틀’ 등도 고스란히 살려냈다.  
익숙한 줄거리를 좇아가며 베트남 가정의 살림살이, 장례풍습 등을 우리와 비교해볼 수도 있었다. 비에 젖은 베트남의 서정적인 풍광 덕일까. 가슴시린 첫사랑을 담아낸 장면들은 한국판보다 더 로맨틱하게 다가왔다. 원작에선 심은경이 맡은 주인공의 10대 시절을 연기한 가수 겸 신인 배우 황 옌 찌비는 이 영화로 흥행 스타로 거듭났다. 관객 사이에선 “울리고 웃기며 여러 추억에 잠기게 만드는”(베트남 매체 ‘KenH 14’) 스토리뿐 아니라, 70년대 베트남 히트송 5곡을 현대적으로 편곡한 배경음악도 화제가 됐다.  
일본판 ‘써니:강한 마음, 강한 사랑’도 오는 8월 일본에서 개봉한다. 아무로 나미에, 우타다 히카루 등 J팝이 전성기를 구가한 90년대를 배경으로 여고생들의 청춘과 음악 이야기를 그릴 예정. 당시 국내에도 유행한 미니스커트와 루즈삭스 패션, 갸루 화장 등도 등장한다. 시노하라 료코와 히로세 스즈가 원작에서 유호정‧심은경이 맡은 주인공 나미 역에 나섰다. 
CJ E&M은 ‘써니’를 통해 제2의 ‘수상한 그녀’ 신드롬을 일으킨다는 목표다. 할리우드 제작사가 참여한 ‘써니’ 미국판은 곧 캐스팅에 돌입, 인도네시아판은 현지 제작사와 합작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원정 기자 na.wonjeog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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