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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리비아식? 이란식? 북핵 해법의 오해와 진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북핵 협상의 계절이 돌아오면 예외 없이 북한에 적용할 비핵화 해법을 놓고 논쟁이 벌어진다. 최근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리비아식’ 해법을 북한에 적용하자고 주장하면서 논쟁에 불을 지폈다.
 
사실 1993년 1차 북핵 위기 이후 우리는 다양한 비핵화 해법을 북한에 적용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안보와 정치 환경이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해법을 한반도에 억지로 적용했거나, 성공요소의 본질을 오해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비핵화 성공의 본질은 안보 불안과 체제 불안의 해소에 있다.
 
최초의 북핵 해법은 ‘아르헨티나·브라질식’이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냉전기에 서로 치열한 핵 개발 경쟁을 벌였다. 그런데 양국은 1991년 핵 경쟁을 중단하고 ‘핵통제위원회’(ABACC)를 설치해 상호사찰을 실시하고 상호 핵 투명성을 확보했다. 이를 모방해 남북 간 최초 핵 합의인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1년)을 만들고, 상호사찰을 시도했다.
 
그런데 이 모델은 왜 한반도에서 실패했나. 이 모델의 성공 요인은 상호사찰이 아니라,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서 새로 등장한 민간정부가 안보경쟁을 중단하면서 안보위협이 해소됐기 때문이다. 당시 한반도에서는 냉전 해체로 북한의 국가 위기가 발생하면서 핵무장 동기가 더욱 커졌다. 결국 비핵화 공동선언은 휴짓조각이 됐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에 적용된 해법은 소위 ‘우크라이나식’이다. 우크라이나는 옛 소련 해체로 의도하지 않게 2000여기의 핵탄두를 넘겨받았다. 1994년 초 미·영·러와 4자 협정을 통해 핵무기를 포기했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심각한 안보위협이 없었고, 핵무기는 경제적 부담만 됐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는 더욱 긴요한 경제지원과 안전보장을 약속받고 핵을 포기했다. 그런데 당시 안보위기·체제위기·경제위기에 빠진 김정일은 생존을 위해 핵무기가 절실했다. 새로 들어선 부시 행정부가 정권교체를 추구하고 농축 핵 의혹을 이유로 제네바합의를 파기하자, 북한의 안보와 체제 불안은 더 커지고 핵무장 동기도 커졌다. 러시아에 크림반도를 빼앗긴 우크라이나는 핵 포기를 후회한다고 한다. 아마 북한은 우크라이나식에서 우리와 정반대의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시론 4/12

시론 4/12

2003년 리비아가 핵을 포기하자 이번에는 ‘리비아식’이 유행했다. 리비아식을 놓고는 다양한 해석이 있다. 볼턴의 리비아식이란 어떤 보상과 보장도 없이 핵을 일거에 포기하고 모든 핵시설과 물질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전문가들이 보는 리비아식은 다르다. 리비아식은 단계적으로 집행됐고 정치·경제적 보상도 있었다. 더욱이 성공 요인으로 영국의 신뢰를 준 중재 역할, 리비아·영국·미국 정보 당국 간 장기간에 걸친 비밀 핵 협상, 리비아의 임박한 안보와 체제 불안 부재 등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요소들이 북한에는 없기 때문에 리비아식의 적용이 어렵다. 볼턴의 리비아식은 더욱 그렇다. 실제 리비아식과 무관하지만, 후일 카다피의 운명도 북한이 리비아식을 배척하는 이유가 된다.
 
2015년 이란 핵 합의 이후엔 ‘이란식’이 유행했다. 사람들은 강한 제재를 성공 요인으로 보고 북한에 대해 강한 제재를 주문했다. 그런데 실제 이란식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성공요소가 있다. 이란의 온건파 하산 로하니 대통령 정부의 등장, 미국·이란 간 최고위 대화 채널 가동, 석유 의존 수출국으로서 제재 해제 동기가 강한 이란 경제, 협상파트너로서 유럽의 이란 신뢰 획득, 평화적 핵 이용 허용이다. 이런 요소가 북한에 있다면 이란식이 가능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한반도식’ 해법은 무엇인가. 위 사례들에서 보듯이 비핵화의 관건은 안보와 체제 불안의 해소에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되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정의용 특사에게 말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누구보다도 핵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이 근본 문제를 피한다면 기만이나 시간벌기에 지나지 않는다.
 
필자는 한반도식 해법으로 ‘상호 위협 감축’과 ‘비핵·평화 공존체제’ 개념을 제안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기반 조치로서 남북 간 상호인정과 평화공존을 위한 ‘남북기본협정’ 체결, 북·미 수교와 불가침 선언, 남북과 미·중 4자의 평화포럼에 의한 ‘한반도 비핵 평화선언’, 6자회담 당사자들의 9·19 공동성명 확인을 제안한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런 구상과 조치가 합의되고 실행되기를 기대한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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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