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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①'징역 15년→무죄' 피묻은 휴지의 반전…카페 여주인 누가 죽였나

 
 
2007년 4월 24일 오전 수원 매탄동의 한 카페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카페 여주인 이모(당시 41세)씨가 흉기에 수차례 찔려 사망한 겁니다.
 
주택가에서 벌어진 잔혹한 수법의 살인사건.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에 나섭니다. 현장에서 용의자의 것으로 의심되는 담배꽁초가 발견되면서 사건의 실타래가 쉽게 풀릴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하지만 수사는 난관에 봉착합니다. 경찰은 전과자 400여명의 DNA를 일일이 대조했지만 한명도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범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 돼 버렸고, 어느덧 사건에는 ‘미제사건’이란 딱지가 붙습니다. 하지만 이후 경찰 수사 및 검찰 기소, 재판 과정에서 이 사건에는 수차례 ‘반전’이 일어납니다.
 
6년 만에 ‘담배꽁초 DNA 일치’ 용의자 등장
사건이 세인의 뇌리에서 잊혀져갈 무렵인 6년 뒤, 의외의 상황에서 실마리가 포착됩니다. 2013년 수원에서 일용직 노동자 박모(36)씨가 30대 여성을 뒤따라가 가방을 빼앗고 넘어뜨린 혐의(강도 상해)로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그런데 박씨의 DNA가 6년 전 살인 현장의 담배꽁초 DNA와 일치한 겁니다. 경찰은 수원구치소에 수감된 박씨를 추궁한 뒤 “무시해서 죽였다”는 자백을 받아냈습니다. 드디어 해결되나 싶었지만 박씨가 “카페에 갔지만 살인은 안 했다”고 번복하면서 다시 꼬여버립니다.
 
‘카페에 갔다’는 사실과 ‘살인을 했다’는 사실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검찰은 결국 박씨를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피 묻은 휴지’ 등장에 박씨 1심 징역 15년
그렇게 3년이 흐른 2016년, 수원지검 형사3부 검사실에서 사건은 새 국면을 맞습니다. 한 검사가 사건 기록을 검토하다가 의심스러운 기록을 발견한 겁니다. 바로 이 사건에서 가장 논란이 된 ‘피 묻은 휴지’입니다.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위 이미지는 당시 사건 현장의 구조도입니다. 카페엔 화장실이 하나 있는 데 변기 위에 두루마리 휴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수원지검에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유전자 검사를 요청했고, 두루마리에선 박씨와 여주인의 희미한 혈흔이 동시에 검출됩니다. 이는 담배꽁초와는 확실히 무게감이 다른 증거였습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박씨와 사망한 여주인의 혈흔이 동시에 묻어 있었으니 박씨를 범인이라고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혈흔을 채취하는 모습. 이 이미지는 사건과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혈흔을 채취하는 모습. 이 이미지는 사건과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자신감에 찬 검찰은 박씨를 기소했습니다. 그리고 2017년 6월 29일 1심 재판부(수원지법 형사12부)는 박씨를 범인으로 판단, 징역 15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유족들이 고통에서 살아가는 동안 박씨는 범행을 함구하고 태연히 일상생활을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피 묻은 휴지와 박씨의 ‘구치소 자백’ 등 각종 증거능력이 1심에서 인정됐습니다.
 
10년간 미궁에 빠진 사건의 ‘진범’이 나왔으니 ‘과학수사의 힘’이라는 찬사가 나올 만했습니다. 사건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6개월 뒤인 2018년 1월 25일, 박씨는 항소심(서울고법 형사9부)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납니다. ‘징역 15년’이 ‘무죄’로 뒤집혀버린 사건,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피 묻은 휴지, 살인 증거 아니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을 한마디 요약하면 “박씨의 범행을 확증할 증거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먼저 ‘핵심 증거’였던 피 묻은 휴지가 살인의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상세하게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카페 화장실은 남녀 공용이었고, 휴지 걸이가 없었습니다. 양변기 위에 올려진 두루마리 휴지를 손에 들고 사용해야 했습니다. 두 사람의 혈흔이 동시에 검출된 곳은 두루마리 휴지 중간의 ‘휴지심’ 부분이었습니다.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재판부는 “코를 풀거나 용변을 보는 과정에서 박씨와 여주인의 DNA가 묻었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 또 “범인이 맥주병을 깨 놓는 등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볼 때 박씨가 범인이라면 두루마리를 화장실에 남겨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량의 혈흔이 발견되지 않은 이상, 공용화장실의 휴지를 들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소량의 혈흔이 묻을 수 있다는 겁니다. 또 피해자의 혈흔이 묻은 범인의 족적이 현장에서 다수 발견됐는데도 화장실을 드나든 족적은 없다(구조도 참조)는 점도 이유로 들었습니다.
 
‘압박, 공포감 조성’ 정황, 자백도 인정 안 돼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 더 있습니다. 박씨의 자백을 두고서입니다.
 
자백 당시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강도 상해로 수원구치소에 구금돼 있던 박씨를 2013년 수원서부경찰서 소속 경찰관 3명이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당시 경찰은 박씨의 DNA가 살인사건 담배꽁초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박씨가 진범이라고 의심을 할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사건 이미지 [중앙포토]

사건 이미지 [중앙포토]

약 30분의 추궁이 이어진 뒤 박씨는 “나이가 몇인데 인력이나 다니고 사람 구실 못하냐는 여주인의 말을 듣고 격분해 살해했다”고 자백합니다. 하지만 이후 박씨는 “(경찰관의) 압박 수사나 공포감 조성으로 자포자기한 상황에서 허위 자백을 했다”고 번복했습니다.
 
결론적으로 2심 재판부는 자백의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먼저 진술거부권이 고지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재판부는 “갑자기 찾아온 경찰관 3명과 대면해 사방이 밀폐된 좁은 접견실에서 진술거부권이나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 피의 사실을 고지받지 못한 상태에서 30분간 추궁이 이뤄졌다”고 밝혔습니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보장한 권리가 침해당한 상태에서 나온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다는 겁니다.  
 
아래는 당시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 박씨와 박씨의 아버지, 삼촌과의 접견 내용의 일부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삼촌 “우리는 네가 누명을 썼다고 생각해”
 
박씨 “(경찰이) 네가 부정해도 우리는 DNA로 검찰에 기소할 거라고 반협박적으로 나오는데...(중략) 그냥 가라(가짜)로 내가...”
 
아버지 “이런 XX같은 새X. 너 성질나니까 ‘그래, 내가 그랬다’ 그런 식으로 대답한 거 아니야”
 
박씨 “제보할 사람이 없었어요. 홧김에 그런게 기정사실로 돼버리니까”
 
아버지 “유도신문 한다고 성질난다고 넘어가는 네가 잘못된 거지”

재판부는 또 “피의자 접견 시 녹음, 녹화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있는데도 경찰관은 이를 이용하지 않았다. 강도 높은 추궁과 회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했습니다. 압박하는 분위기에서 피의자가 ‘부인해봤자 소용없다’고 자포자기해 자백했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  
 
‘꺾어 신은 운동화’ 족적도 인정 안 돼
항소심 재판부는 다른 증거들 역시 ‘범인은 박씨’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봤습니다.
 
당시 살인 현장에는 270㎜ 발 크기의 족적이 발견됐는데, 경찰은 이후 강도 사건에서 박씨가 같은 사이즈의 신발을 신고 있었다는 증거를 내놓았습니다.
 
낡은 운동화 이미지. 이미지는 사건과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낡은 운동화 이미지. 이미지는 사건과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그런데 박씨는 “내 신발 사이즈는 280㎜이고 강도 범행 당시에는 신발을 세탁해 매형의 신발을 하루만 신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이 박씨의 발 크기를 재 보니 277㎜로 측정됐습니다. 재판부는 “박씨가 270㎜ 운동화를 꺾어 신어야 했던 것으로 볼 때, 살인 사건 당일 물류작업을 했던 박씨가 작은 운동화를 신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살해 추정 시간도 박씨의 범행을 입증할 증거가 되지 못했습니다. 여주인의 사망 추정 시간은 오전 11시 이전입니다. 옆 가게 주인은 오전 7시쯤 카페 여주인이 “아이 왜 그래”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때까진 박씨가 살아 있었으니 범행은 오전 7시~오전 11시에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재판부는 “박씨가 이 시각 카페에 머물렀다거나, 제3자가 카페에 들어가지 않았음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2심 재판부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하나의 증거들이 피고인이 범행을 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할 만큼 압도적으로 우월할 증명이 됐다고 보기 어렵다. 
또 박씨가 범인이 아닐 여지가 확실하게 배제됐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 사건은 ‘초기 수사 실패→DNA 및 자백 확보→자백 번복→새 증거 확보→검찰 기소→1심 유죄→2심 무죄’로 복잡하게 전개됐습니다. 박씨가 진범인지 아니면 단지 사건 당일 카페에 들렀던 무고한 시민인지는 대법원에서 최종 판가름나게 됩니다.
 
사건 발생 후 11년이 지난 오늘도 수원카페 여주인 살인사건은 미궁에 빠져 있습니다.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는 유족들을 위해서라도 진범이 꼭 밝혀지길 기대합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판다’는 ‘판결 다시보기’의 줄임말입니다. 중앙일보 법조팀에서 이슈가 된 판결을 깊이 있게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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