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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한 증거될라 … 의료사고 사과 고민하는 의료계

지난해 12월 중순 이대목동병원 간부가 신생아 사망사고를 언론에 브리핑할 때 한 유족이 “언론이 유가족보다 먼저냐”고 항의했다. 이는 의료 사고와 관련한 의료인들의 미숙한 대응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병원 측은 그날 유족 항의 직전 “이번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4명의 아기들과 유가족분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머리를 숙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병원은 지난 9일 이화의료원 교직원 명의 ‘유족 및 국민께 드리는 사과문’에서 잘못된 관행, 통렬한 반성, 유족 아픔에 최대한 공감, 사고 수습에 만전 등의 표현을 쓰면서 사과했다. 사고 발생 약 넉 달만이다. 그 새 병원과 유가족 사이에는 깊은 골이 팼다. 지난 1월 유족 측은 “지난 한 달 간 (이대병원 측이)유가족의 인권은 무시한 채 여론 동향만 관심을 가졌다”고 비판했다.
 
병원의 소통 노력 부족이 사태를 훨씬 악화시킨 면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의료계와 국회에서 의료 사고의 원활한 소통을 지원하는 ‘사과 법(apology law)’ 제정 움직임이 시작됐다. 한국의료질향상학회(회장 이상일 울산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10일 사과 법 도입 주장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0일 자유한국당 김상훈 의원은 이런 내용을 담은 환자안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과 법은 의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료진이 환자와 유족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연민·유감·사과 등을 표현할 경우, 이 표현에 대해 배상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상일 의료질향상학회장은 “환자안전 사건이 발생하면 의료진과 환자(보호자) 사이의 원활한 소통이 매우 중요한데,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며 “의료기관들은 사과 표시를 하면 이게 의료분쟁에서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것을 우려해 회피하고, 환자(보호자) 접촉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실수로 전립샘을 뗀 아주대병원은 위로금 협의에 무성의한 자세를 보이다 빈축을 샀다. 지난해 2월 제왕절개 중 태아 손가락을 절단한 서울대병원은 10개월 피해 보상을 미뤘다가 비판을 받았다. 이런 일을 겪으면 환자나 가족은 의료진에게 배신감·분노 등을 느끼며 2차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게 된다. 이상일 회장은 “이대목동병원 사건도 초기에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 사이에 의사소통이 적절했다면 이렇게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외국은 사과 법을 갖추고 있다. 연세대 의료법윤리학연구원 이원 박사가 올 초 대한환자안전학회 포럼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호주·캐나다·홍콩 등지에서 사과 법을 시행한다. 미국은 1986년 메사추세츠주를 시작으로 37개 주(1월 현재)가 사과 법을 만들었다. 대부분은 사과 표현에 대해서만 민사 배상과 행정처분의 증거로 활용하지 못하게 제한한다. 그렇다고 형사 책임까지 면제하지 않는다.
 
연세대 이 박사는 “의료인은 사과를 두려워하는데 환자를 위로하고 소통하는 게 의료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며 “의료인 양성과정·보수교육에서 사과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정부가 관련 자료를 제공하는 등 여건이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료 사고가 나면 환자 입장에서 사과나 유감 표시를 듣고 싶어하지만 의사는 대화 녹음 등을 우려해 만나지도 않으려 한다. 의료 소송으로 가면 상당수 환자가 이기지 못하고 소송비만 든다”며 “사과 법을 만들면 환자 이득이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이 2010년 백혈병 약을 잘못 주사해 종현(9)군이 숨졌다. 어머니 김영희(42)씨는 4년 여에 걸쳐 소송 등으로 맞섰다. 병원 측이 유감을 표하자 싸움을 중단하고 제도 개선에 나섰고, 환자안전법이 탄생했다. 배상금은 기부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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