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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남·북·미 3국 핵 과학자 간 소통 채널 필요하다

과학으로 본 북한 비핵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아무도 못 가본 길이다. 1994년과 2005년 시도한 적이 있지만 실패했다. 비핵화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난관에 봉착할지 모른다. 목적지까지 무사히 가려면 성능이 뛰어난 내비게이션의 도움이 필요하다. 장애물의 위치와 감속이 필요한 위험 구간을 미리 알려주고, 필요하면 우회로를 안내하는 길도우미 말이다. 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핵 과학자들이다. 협상 준비 단계부터 합의의 마지막 이행 단계까지 그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비핵화는 운전자들의 정치적 의지만으로 실현되지 않는고난도 게임이다.
 
 
비핵화는 정치의 문제이면서 과학의 문제다. 국제정치의 복잡한 함수관계를 푸는 것은 정치인들의 몫이지만 비핵화를 구체적 현실로 만드는 것은 과학자들 몫이다. 그들의 도움 없이는 원자로의 벽돌 한장 옮길 수 없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치와 과학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정치인과 외교관들은 과학을 잘 모르고, 과학자들은 정치를 잘 모른다. 북한 비핵화로 가는 길에서 정치와 과학의 찰떡 공조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2주 후면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만난다. 북한 비핵화를 의제로 다루는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다. 5월 말이나 6월 초에는 미국과 북한의 역사적 정상회담이 열린다. 25년 이상 끌어온 ‘난제 중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한과 북한, 미국의 세 운전자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셈이다. 기대가 큰 만큼 위험 부담도 크다.
 
사업가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전략가적 면모를 보이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일대일 담판이 현실화하면서 통 크게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일괄타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예상외로 단기간에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임기에 맞춰 ‘2년 내 비핵화’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과거와 달리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협상이 진행되는 만큼 ‘속전속결’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초강경파로 알려진 존 볼턴 전 유엔대사가 트럼프의 신임 국가안보보좌관이 되면서 초스피드로 진행된 리비아식 해법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리비아 모델을 북한에 적용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핵 과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핵 관련 시설과 장비를 모두 해외에서 들여온 리비아는 제출한 구매 목록과 시설·장비를 비교 확인한 뒤 전량 해외로 반출하는 방식으로 간단히 비핵화가 가능했다. 그런데도 3년 2개월이 걸렸다. 리비아와 달리 북한은 수소폭탄급 핵탄두는 물론이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까지 갖춘 핵 강국이다. 대부분 자체 기술로 독자 개발했기 때문에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도 힘들다.
 
북한은 이란과도 다르다. 이란은 북한보다 훨씬 개방된 사회인 데다 핵 개발 수준이 낮고, 관련 시설도 적었다. 핵무기 제조 단계까지 가지도 못했다. 핵 활동이 의심되는 군사 시설은 한 군데에 불과했지만, 북한은 미국이 파악한 것만 200곳이 넘는다. 1980년대 이후 새로 굴착한 것으로 의심되는 지하시설도 약 6000개에 달한다. 핵·미사일 관련 작업을 하는 것으로 의심받는 일반 공장도 많다. 그동안 생산한 핵물질이나 핵무기를 숨기기로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찰 대상과 검증 항목이 그만큼 길고 복잡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비핵화는 미국 핵 과학계에 역사상 가장 어려운 미션이 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는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비핵화 의지를 독려하고 강화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그러려면 핵 과학자들의 조언을 받아 나름의 유인책을 들고 가야 한다. 북한의 가려운 곳을 정확하게 긁어줌으로써 우리가 이런 부분까지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남한의 선의를 믿고, 마음을 열 수가 있다. 문 대통령은 지금 그런 준비를 하고 있는가.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제시할 종합패키지에는 세 가지가 담겨야 한다고 핵 과학자들은 조언한다. 우선 연구용 원자로 가동을 중단해도 민간 부문에 피해가 없도록 의료용이나 산업용 방사성 동위원소는 우리가 책임지고 공급하겠다는 약속이다. 군사용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 북한의 에너지 공급 문제에 관한 장기적 해법도 제시해야 한다. 파이프라인을 통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방안과 경수로 건설을 재개하는 방안이 포함될 수 있다. 물론 비핵화가 이행 단계에 들어간 다음 국제사회와 협력해 진행할 문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력 대책이다. 북한의 핵 분야 핵심 인재는 200~300명이고,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기술인력은 8000~1만5000명이다. 비핵화 이후에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핵시설을 재건하고,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지식과 노하우를 가진 사람들이다. 핵 개발에서 손을 떼더라도 딴마음 먹지 않고,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지식 통제(knowledge control)’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북한 핵 문제는 언제든 다시 터질 수 있는 휴화산이다. 핵기술의 외부 유출에 따른 핵확산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국제 핵 밀매 커넥션의 진앙이 된 파키스탄 핵 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 박사의 사례를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핵심 핵 과학자들에 대한 관리 대책은 미국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문제다.
 
막대한 돈과 인력이 소요될 북한 핵시설 폐기는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블루오션이다. 경수로 건설과 운용에도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북한의 핵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전문지식과 기술을 활용해 이런 분야에서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는 방안을 우리가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국내 핵 과학자들과 긴밀히 협의해 문 대통령이 종합솔루션을 제시한다면 북한의 비핵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북·미 정상이 한 테이블에 앉게 하는 것으로 한국의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김 위원장이 핵 포기를 결심하고 비핵화를 추진하더라도 현장의 상황은 다를 수 있다. 북·미 정상이 합의를 한다 해도 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숱한 마찰과 갈등이 예상된다. 그로 인해 합의가 깨지는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한국이 중간에서 기술적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는 모든 핵시설과 핵물질, 핵무기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영변에 있는 핵시설만 30개가 넘는다. 핵과 미사일 실험을 동결하고, 추가 핵 활동은 중단된다. 이를 감시하는 모니터링 장치가 설치되고, 시설은 봉인과 불능화 과정을 거쳐 폐기된다. 일부 시설과 핵물질, 핵무기 및 핵폐기물은 검증을 거쳐 해외로 반출된다.
 
그 과정에서 북한이 신고한 내용과 검증 결과가 불일치하면 문제가 생긴다. 운전기록과 시료 분석 등을 통해 사찰단이 추정하는 핵물질 양이 북한이 신고한 양과 서로 맞지 않는 경우다. 플루토늄 경우 2.33kg 이상 차이가 나면 불일치로 간주한다. 재처리 후 남은 폐기물이 고화하는 과정에서 액체와 고체가 뒤섞이면 정확한 양을 측정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북한의 의도와 무관하게 증명을 못 하는 바람에 오해에 시달릴 소지가 있는 것이다.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목표로 하는 미국은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사찰과 가장 엄격한 검증 잣대를 들이밀 것으로 예상된다. 위성에서 촬영한 영상자료를 근거로 민감한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크다. 우리가 나름대로 북한 핵시설이나 핵 활동에 대한 과학적 자료와 정보를 갖고 있다면 중간에서 양측의 기술적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는 북한 핵 관련 정보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전담기관이 없다. 우리가 북한 핵에 대해 가진 정보는 이스라엘이 이란 핵에 대해 갖고 있는 정보량에도 못 미친다. 국정원과 국방부, 외교부,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에 흩어져 있는 조각 정보에 의존해 그때그때 주먹구구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 해 1조원의 연구 예산이 원자력 분야에 투입되고 있지만 거의 100% 원자력 발전에 몰려 있다. 북한 핵 관련 연구에 별도 예산 지원이 없다 보니 전문인력도 없다. 기술적 문제로 인한 북·미 간 갈등으로 합의가 깨지는 상황이 와도 발만 동동 구르며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북핵 관련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 관리하는 컨트롤 타워를 설치, 운영할 필요가 있다. 한 해 50억원 정도면 충분하다는 게 핵 전문가들 의견이다. 북핵 전담기관 하나 없이 북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것은 총 없이 전투하는 꼴이다. 이란 핵 협상 당시 미국의 핵 과학계가 협상팀에 전달한 기술적 자료만 16만 쪽에 달한다.
 
청와대 관계자 표현대로 북핵 문제는 TV 전원코드 뽑듯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신뢰가 없는 탓이 크다. 불신은 의심을 낳고, 의심은 오해와 갈등을 부른다. 사사건건 충돌할 수 있다. 신뢰를 쌓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인내가 요구된다. 정치인들이 아무리 야심 찬 목표를 세워도 그걸 현장에서 실행하는 것은 과학자들이다. 남한과 북한, 미국 핵 과학자들 간 소통 채널을 구축해 불필요한 오해와 마찰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 비핵화는 또 한 번의 ‘시시포스 신화’로 끝날 수 있다. 
 
배명복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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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