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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법관대표회의 첫 작품은 ‘황제노역’ 불렀던 향판 부활

판사가 인사 이동 없이 특정 지역에서 계속 근무하는 ‘권역법관 제도’가 추진된다. 보기에 따라선 향판(鄕判·지역법관) 제도와 유사해 논의 과정에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전국법관대표 측은 10일 오후 “1차 회의 의결사항”이라며 기자들에게 문서 한장을 전달했다. 제목은 ‘좋은 재판과 법관전보인사/권역법관제도’였다.
 
문서 안에는 ‘좋은 재판을 제공하기 위해 이른바 권역법관 제도(한 지역에 장기간 근무하는 제도)의 조속한 시행을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한 지역에 장기간 근무하는 제도’는 지금까지 지역법관제도라는 이름으로 통용됐다. 전국을 순환근무하지 않고 대전·대구·광주·부산고법 등 지방 관할법원 중 한 곳에 부임해 계속 근무하는 제도였다. 향판으로도 불렸는데, 2014년 지역 유착 등 부작용이 제기되면서 폐지됐다.
 
문제는 법관대표 측이 이날 기자들에게 “9일 회의에서는 지역법관의 재추진에 대해 논의한 바가 없다”고 밝히면서 불거졌다. 이번에 ‘권역법관제도’로 이름을 달리했지만, 법원 내부에선 이전과 비슷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A판사는 “지역법관제가 정착되면 인사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 지지했는데 회의 때 논의한 적이 없다고 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B판사도 “법관회의에서 논의할 때도 지역법관과 권역법관을 혼용했다. 회의록을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100여 명의 법관 대표들이 참여한 단체 카카오톡 방에도 의견이 분분했다. “권역법관제와 지역법관제가 ‘본질’에서는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발의 안건이 지역법관제였고, 사전설문조사도 지역법관제 확대에 대해 이뤄졌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이번 사안을 직접 챙겨온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는 곤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지역법관 제도는 일본을 제외한 선진국에서 널리 활용하고 있는 제도로, 법관의 독립과 전문성 확보를 위해 정착이 필요하다는 게 대법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법원행정처 소속 B판사는 “지역법관제의 장점을 국민들에게 잘 설명하는 게 중요한 시기에, 소모적인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명수 사법부’의 핵심 추진 사안이었는데 시작부터 내분에 휩싸이는 듯한 인상을 줘 부담스럽다는 얘기다.
 
지역법관제도는 수도권 근무에 지원자가 쏠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인사 이동이 잦아져 재판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인사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2004년 도입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특정 지역에 근무하겠다는 사람들은 격려해 줘서 (수도권과 지방을 오가는) 순환근무를 줄여야 한다”고 했지만, 2014년 초 ‘황제노역’ 논란(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일당 5억원의 노역장 유치 판결)으로 촉발된 ‘향판 폐지’ 여론에 떠밀려 그해 폐지됐다.
 
법조인들이 의아해하는 것은 사법행정 관련해 여러 안건 중 첫 의결 사안에 ‘권역법관’ 문제가 포함됐다는 점이다. 서울 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논의의 필요성이 있다는 건 맞는데, 첫 회의 의결 사안으로 정해지다 보니 더 도드라지게 보이는 측면도 있다”며 “혹여 자리나 밥그릇 싸움처럼 비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전국법관대표 측은 “부작용이나 문제점이 있을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분과위원회 구성 등을 통해 제도적 개선책도 함께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장의 대법관 ‘셀프 추천’ 폐지=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 추천 과정에서 특정 후보를 제시하는 권한이 오는 8월로 예정된 신임 대법관 임명부터는 폐지된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규칙’ 개정안을 오는 30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10일 밝혔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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