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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따라 대학 갔죠” 부산의 현대판 ‘맹모’ 박영옥씨

박영옥씨(가운데)가 아들 배도현(왼쪽), 딸 배은진씨와 부경대 캠퍼스를 걷고 있다. [사진 박영옥씨]

박영옥씨(가운데)가 아들 배도현(왼쪽), 딸 배은진씨와 부경대 캠퍼스를 걷고 있다. [사진 박영옥씨]

평범한 주부였던 박영옥(53)씨는 뒤늦게 일본어 공부를 한 뒤 석사를 거쳐 지금 부경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공부하고 학원을 운영하느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두 아이는 한때 공부에 흥미를 잃기도 했다. 하지만 끝까지 공부의 끈을 놓지 않은 결과 두 아이가 자신을 따라 대학에 진학해 지난 3월부터 일가족 3명이 같은 대학을 다니게 됐다. 박씨는 10일 “공부하라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니 아이들이 따라 줬다”며 활짝 웃었다.
 
박씨의 인생이 달라진 것은 1999년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만난 60대 한 할머니 때문. 일본어를 잘하는 할머니가 멋져 보여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에 2000년 방송통신대 일어일문학과에 뒤늦게 입학했다. 방통대 총무를 자처하며 교수 일을 도와주거나 어린 자녀를 남편에게 맡긴 채 주중·주말 없이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그 결과 3년 만에 일본어를 능통하게 구사하게 됐다. 2004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일본어 학원을 차렸다. 그해 울산대 일어일문 석사과정에도 입학했다. 주변에서는 방통대 출신 가정주부가 운영하는 학원이어서 금방 망할 것이라고 수군댔다. 그럴수록 박씨는 더 치열하게 일본어를 공부하고 더 잘 가르치려고 애썼다.
 
자신이 터득한 노하우를 원생에게 가르치자 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강의실 면적 100㎡의 작은 학원에 80명까지 원생이 늘었다. 월 수익도 1000만원 수준이 됐다.
 
2008년 석사 과정을 마친 박씨는 2009년 부경대 일어일문 박사과정에 도전했다. 교양 중급 일본어 시간강사로도 활동했다. 대학원 수업과 강의에, 학원 운영까지 하다 보니 집안일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초·중학생이던 자녀를 돌본 것은 남편이었다.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자 두 자녀는 공부에 흥미를 잃고 게임에 빠지는 등 성적이 부진했다.
 
회사원인 남편 배경훈(57)씨는 “아내가 공부하느라 딸·아들의 학업 성적이 부진할 때 정말 속상했다”면서도 “아이들을 다그친다고 공부를 하는 건 아니어서 묵묵히 뒷바라지만 했을 뿐”이라고 기억했다.
 
10년 넘게 공부와 일에 매달리던 박씨는 2012년 건강이 나빠졌다. 담석증 수술 등으로 결국 논문을 쓰지 못하고 박사 과정만 수료했다. 2년 가까이 쉰 그는 다시 부경대 강의를 나가고 학원 문을 열었다.
 
아파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는 어머니를 보면서 딸 배은진(28)씨가 먼저 변했다. 2012년 대구외국어대에 입학했던 은진씨는 2014년 동아대 일어일문학과에 편입했고, 2016년 졸업과 동시에 엄마가 운영하는 학원에 일본어 강사로 취직했다. 가르치는 재미에 빠진 은진씨는 2017년 부경대 대학원 일어 교육 전공으로 입학해 지금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은진씨의 변화는 아들 도현(26)씨를 자극했다. 2017년 전문대를 졸업한 도현씨는 지난 3월 부경대 일어일문학부 3학년에 편입했다. 엄마와 누나를 따라 일본어 공부에 뛰어든 것이다. 뒤늦게 공부에 흥미를 느끼는 자녀를 보며 힘을 얻은 박씨는 지난 3월부터 다시 박사 학위에 도전했다.
 
박씨는 “자녀와 같이 대학에 다니는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며 “늘그막 공부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은 남편이 너무 고맙다. 박사 학위를 따서 자랑스러운 엄마와 아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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