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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 “집 사는 게 낫다” 2만명 퇴직연금 깼다

미래에셋대우가 지난 4일 대구에서 퇴직연금 세미나를 열었다. 기업과 근로자 모두의 퇴직연금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 미래에셋대우]

미래에셋대우가 지난 4일 대구에서 퇴직연금 세미나를 열었다. 기업과 근로자 모두의 퇴직연금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 미래에셋대우]

경기도 일산에 사는 직장인 박모(35)씨는 올해 초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을 중도 인출했다. 분양받은 아파트의 계약금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그는 “퇴직연금을 헐어 쓰는 게 아깝긴 했지만 대출받아 이자를 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DC형과 개인형(IRP) 퇴직연금은 무주택자가 본인 명의로 주택을 구입하는 등 일부 사유에 한해 적립금 전액을 중도 인출할 수 있다.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노후생활을 위한 안전판이다.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기대한다면 국민연금뿐 아니라 퇴직연금까지는 필수로 갖춰야 한다. 정부가 2005년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한 것도 소중한 노후 재원을 잘 지키자는 취지였다. 기존 퇴직금 제도에선 중간 정산으로 노후 생활자금이 소진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박씨처럼 퇴직연금 적립금을 중도에 빼서 쓴 가입자는 2016년 기준 4만91명에 달한다(통계청). 인출된 금액은 총 1조2000억원, 1인당 평균 3073만원이다. 전년보다 중도 인출한 가입자와 금액 모두 대폭 늘었다.
 
이들은 왜 퇴직연금을 깼을까. 가장 많은 사유는 주택 구입(45.7%)이었다. 이어 본인·배우자·부양가족의 6개월 이상 요양(25.7%), 주거 목적의 전세금·임차보증금 충당(18.1%), 개인회생절차 개시(10.1%) 순이었다. 중도 인출은 가입자에겐 손해다. 사망·해외이주·개인회생 같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연금소득세보다 높은 퇴직소득세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연금소득세는 퇴직소득세의 70% 수준이다. 그런데도 중도 인출이 많은 것은 퇴직연금을 노후 안전판이 아닌 맡겨둔 여윳돈 정도로 여기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퇴직연금에 대한 신뢰 부족이다. 퇴직연금에 꼬박꼬박 적립해 봤자 수익률이 쥐꼬리다 보니 쉽게 중간에 빼서 쓰게 된다. ‘퇴직연금 투자수익률<주택가격 상승률’이라면 퇴직연금을 헐어서 집을 사는 게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경희 상명대 글로벌금융경영학과 교수는 지난해 논문에서 “퇴직연금의 투자수익률이 낮을수록, 특히 주택가격 상승률이 투자수익률보다 높을수록 중도 인출을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무분별한 중도 인출을 줄이기 위해 “중도 인출 사유에서 주택 구입을 빼고 영구장애, 과도한 의료비 같은 ‘예측 불가능한 경제적 곤란 상황’으로 엄격히 한정할 것”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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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미국·영국·호주는 퇴직연금을 중간에 헐 수 있는 사유를 까다롭게 제한한다. 미국은 사망·영구장애로 근로활동을 못하거나 의료비 같은 긴급자금이 필요할 때만 중도 인출을 해 준다. 호주 역시 장애 또는 심각한 재무적 곤경에 한해 중간에 돈을 뺄 수 있다. 영국은 건강을 이유로 한 퇴직이나 기대여명이 1년 이하인 경우에만 허용하고, 그 외 사유에 대해서는 55%를 세금으로 뗀다. 미국·호주처럼 당장 중도 인출을 금지하거나 영국처럼 세금을 왕창 떼면 ‘내 돈 내가 빼서 쓰는데 왜 제한하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올 것이 뻔하다. 중간 정산이 가능한 법정 퇴직금 제도와 비교해 형평성 시비도 일 수 있다.
 
급격한 규제보다는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중도 인출 규정을 까다롭게 바꿔 나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급한 돈이 필요할 때 퇴직연금을 빼 쓰는 대신, 퇴직연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도록 유도해 나가야 한다. 류건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택 구입을 위한 인출 시 적립금 전액이 아니라 일정 비율, 예를 들어 30% 또는 3000만원으로 한도를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현재 거의 활용되지 않는 퇴직연금 담보대출도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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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