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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의 에코파일] 항생제 내성균 내게 맡겨 … ‘마법의 탄환’ 박테리오파지

2001년 12월 추운 겨울날 흑해 연안의 조지아(그루지야) 공화국에서는 세 명의 남자가 땔감을 줍고 있었다. 이들은 페인트 통 크기의 금속 용기를 발견했다. 금속 용기 주변만 눈이 다 녹아있어 쉽게 눈에 띄었다. 남자들은 이 뜨거운 금속 용기를 캠프로 가져가 난로처럼 사용했다.
 
금속 용기는 구소련 시절 임시변통으로 만든 히터였고, 그 속에는 스트론튬-90이란 물질이 들어있었다. 반감기가 28년인 방사성 동위원소였다. 몇 시간 뒤 두 명이 어지럼증과 구토 등 방사선 노출 증세를 보였고, 피부도 벗겨지기 시작했다.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이 상처 부위에 침투했다. 상처가 깊은 탓인지 항생제도 말을 듣지 않았다.
 
대장균 표면에 붙어있는 T1 박테리오파지. 박테리오파지는 세균을 공격하는 바이러스다. [중앙포토]

대장균 표면에 붙어있는 T1 박테리오파지. 박테리오파지는 세균을 공격하는 바이러스다. [중앙포토]

이들은 조지아 수도 티빌리시의 병원으로 후송됐고, 거기서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를 이용한 치료를 받았다. 박테리오파지는 ‘세균(박테리아)을 먹는 포식자’, 즉 세균을 죽이는 바이러스다. 2~3주 후 감염은 치료됐고, 이후 피부 이식 수술로 완치됐다.
 
항생제를 투여해도 죽지 않는 세균, 특히 인류의 골칫거리인 항생제 내성균을 박테리오파지로 다스리는 새로운 치료법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박테리오파지 요법을 항생제 내성균을 잡는 ‘마법의 탄환’이라고까지 부른다. 알고 보면 박테리오파지 요법은 100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미생물학자들이 바이러스를 발견한 것은 19세기이고, 박테리오파지도 1880년대에 존재가 알려졌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박테리오파지를 발견한 것은 영국의 프레더릭 트워트(1915년)와 프랑스계 캐나다 사람인 펠릭스 데렐(1917년)이다.
 
박테리오파지의 세균 세포 공격 과정

박테리오파지의 세균 세포 공격 과정

당시는 페니실린 같은 항생제가 개발되지 않았다. 상처가 나서 감염이 되면 상처 부위를 깨끗이 씻는 것이 유일한 수단이었고, 그래도 안 되면 사지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환자가 사망했다.
 
데렐은 박테리오파지를 발견하자마자 세균 감염병 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1919년 여름 프랑스에서 살모넬라균에 의한 가금(家禽)티푸스가 발생했을 때, 닭에게 박테리오파지를 투여, 치사율을 낮췄고, 발병 기간도 줄이는 데 성공했다.
 
몇 년 후 데렐은 세균성 이질을 앓고 있는 12세 소년에게 박테리오파지를 투여했고, 2~3일 뒤 소년은 회복했다. 다른 세 명에게도 투여해 치료에 성공했다. 이에 앞서 데렐은 안전성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과 가족들, 동료 연구진들에게 박테리오파지를 주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테리오파지 요법은 1940년대부터 점차 시들해졌다. 박테리오파지 자체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치료 현장에서 박테리오파지를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더욱이 편리하게 쓸 수 있는 항생제가 등장하면서 박테리오파지 치료법은 관심에서 멀어졌다.
 
대장균이 자란 배지 위에 원형의 투명한 구역이 만들어진 것은 박테리오파지인 람다 파지가 대장균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대장균이 자란 배지 위에 원형의 투명한 구역이 만들어진 것은 박테리오파지인 람다 파지가 대장균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서구와는 달리 동유럽에서는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지속해서 연구가 이어졌다. 데렐은 1930년대 스탈린의 초청으로 소련을 방문했고, 박테리오파지 요법을 전수했고, 조지아에 엘리아바 연구소 창립하는 것도 도왔다. 엘리아바연구소는 1980년대에 1200명의 직원이 매일 2t의 박테리오파지를 생산할 정도로 번성했다. 94년 이후 연구소는 민영화됐고. 박테리오파지 연구도 재개됐다.
 
동구에서 진행된 박테리오파지 요법은 1989년 소련이 무너진 뒤 서구에 알려졌고, 이제는 서구에서도 비교적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미국이나 유럽연합(EU)에서 박테리오파지를 직접 인체에 투여하도록 허가한 사례는 없다. 다만 치즈나 육류 가공 공장 청정실 등에서 식중독을 일으키는 리스테리아(Listeria) 균을 제거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박테리오파지를 처음 치료에 활용한 펠릭스 데렐.

박테리오파지를 처음 치료에 활용한 펠릭스 데렐.

하지만 서구에서도 치료를 위한 연구가 최근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항생제 내성균으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영국 정부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항생제 내성으로 인한 사망자가 연간 70만 명이나 된다. 2050년에는 연간 사망자는 1000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새로운 항생제 개발은 쉽지 않다. 83~97년 사이 미국 식품의약처(FDA)는 16종의 새 항생제를 허가했는데, 2010~2016년 사이에 허가받은 항생제는 6종에 불과했다.
 
항생제 등과 비교했을 때 박테리오파지 요법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특이성(specificity)’을 들 수 있다. 모든 세균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특정 종류의 세균, 특정 병원균만 골라 공격한다는 점이다. 또 박테리오파지가 증식하는 곳이 바로 감염이 일어난 바로 그 장소라는 점이다. 박테리오파지가 필요한 곳에서 계속 세균을 죽이면서 숫자를 불리기 때문에 금방 효과를 볼 수 있다.
 
물론 박테리오파지 요법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세균 자체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박테리오파지에 대한 저항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박테리오파지가 사람 몸 안에 너무 많이 돌아다닐 때 예상치 못한 면역반응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한편에서는 박테리오파지가 만드는 특정 단백질, 즉 세균 세포를 파괴할 수 있는 단백질을 대량 생산해 박테리오파지 대신에 단백질만 감염 부위에 투여하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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