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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트럼프의 북핵·FTA 연계 발언

중앙일보 <2018년 3월 31일 34면>
한반도 비핵화 ‘그레이트 게임’ 시작됐다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남북한과 주변 열강의 ‘그레이트 게임’이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된 가운데 깜짝 북·중 정상회담도 열렸다. 4월 중순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러시아를 전격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회담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사학 스캔들로 궁지에 몰린 아베 총리의 일본도 6월 초 북·일 정상회담을 추진 중이다. 잠깐 한눈팔았다간 저 혼자만 링 밖으로 팽개쳐질 정도로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다.
 
게임의 목표는 비핵화다. 문제는 목표에 이르는 셈법이 각기 다르다는 점이다.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말한다. 선(先) 핵포기-후(後) 보상의 ‘리비아식 해법’을 요구한다. 우리는 비핵화와 북한 체제안전 보장을 한꺼번에 맞바꾸는 통 큰 해결을 말한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듯 단칼 해결하자는 것이다. 일본은 미국 뒤에 서 있다. 북한의 구상은 김 위원장의 방중에서 드러난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다. 비핵화 과정을 여러 단계로 나누고 단계별로 보상을 받자는 취지로 이해된다. 중국의 쌍궤병행(雙軌竝行)과 맥을 같이 한다. 러시아는 중국을 민다. 평창올림픽을 매개로 남북이 열어젖힌 비핵화 논의의 장이 돌고돌아 다시 6자회담 틀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게임의 분수령은 5월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만남이다. 최상의 결과는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로드맵 작성에 합의하는 것이다. 최악은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이 결여돼 있다고 판단해 문을 박차고 나오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북·중 관계가 개선돼 중국이 제재의 뒷문을 열어놓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경우 두 갈래 길이 예상된다. 하나는 북핵의 사실상 용인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대북 군사공격이다. 모두 상상하기조차 무서운 상황이다.
 
4월 27일로 날짜가 확정된 남북정상회담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미의 간극을 조율해 ‘마지막’이란 말을 듣는 이번 기회를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어제 “리비아식 해법을 북한에 적용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미국의 비핵화 접근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발언이다. 이면엔 북한의 단계적 해법에 동조한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제 한·미가 원칙적으로 합의한 양국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의 서명을 북한과의 핵 협상 타결 이후로 미룰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게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사실이라면 한·미가 적전 분열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비핵화 대화에 나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대북 제재에 대해 국제 사회가 일치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핵 도발을 일삼는 북한에 대한 국제 사회의 합종(合縱)이 만들어낸 결과다. 최근 상황은 김 위원장이 합종을 깨는 연횡(連衡) 작전을 구사하는 양상이다. 각국 정상과의 회담을 통해 각개 격파에 나선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합종이 연횡에 무너지지 않으려면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최대의 압박을 통한 비핵화 추진이다. 이를 주도하는 미국과 틈이 벌어져선 안 된다. 지금은 미국과 목소리를 합칠 때다. 정부가 새겼으면 한다.
 
한겨레 <2018년 3월 31일 23면>
FTA를 북핵과 연계하겠다는 트럼프의 ‘장삿속’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각) 한-미 양국이 이미 합의한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대북 협상과 연계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오하이오주 리치필드에서 한 연설에서 “북한과의 협상이 타결된 이후로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을 미룰 수 있다. 왜 이러는지 아느냐. 이것이 매우 강력한 (협상) 카드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의 협조를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자유무역협정을 지렛대로 삼겠다는 의도라고 외신들은 보도하고 있는데,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확한 의도를 읽긴 어려우나, 그의 특기인 ‘미치광이 전략’인 듯싶다. 자신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상대방에게 보이게 해 공포감을 유발한 뒤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에서도 이 전략을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매우 나쁜 협정으로 폐기하겠다”고 거듭 위협해 우리 정부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냈다. 협상 과정에선 돌연 ‘철강 관세 카드’를 꺼내 자유무역협정에서 양보를 받아냈다.
 
하지만 이익을 챙기는 데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는 법이다. 최소한의 금도는 지켜야 한다. 한-미 양국은 28일 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의 원칙적 타결을 담은 ‘공동선언문’까지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동선언문 발표 직후 트위터에 “미국과 한국 노동자들을 위한 위대한 합의”라고 한껏 치켜세웠다. 백악관도 “궁극적으로 미국 노동자와 미국 기업들에 큰 거래이고 중대한 승리”라고 자화자찬을 했다. 그래 놓고 공동선언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딴소리를 하고 있다. 국가 간 중요한 협정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비판받아 마땅하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파악 중이라고 한다. 자유무역협정과 대북 협상은 연계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트럼프 행정부에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이런 식으로 좌충우돌하며 압박하는 공세에 더는 끌려가선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도 반복되는 일방주의적 행태가 한국 국민의 여론을 악화시켜 한-미 공조를 해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논리 vs 논리 
미국과의 공고한 공조 필요 vs 미국의 일방주의적 행태가 문제
(단계1) 공통주제의 의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오하이오주에서 ’한미 FTA 협상을 북한과의 협상이 끝날 때까지 미룰 수 있다“며 한미 FTA와 북핵 협상 연계 방침을 밝힌 연설을 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오하이오주에서 ’한미 FTA 협상을 북한과의 협상이 끝날 때까지 미룰 수 있다“며 한미 FTA와 북핵 협상 연계 방침을 밝힌 연설을 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대북 핵협상 연계 방침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29일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한 대중연설을 통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타결 이후로 (FTA 개정협상 서명을) 미룰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 이러는지 아느냐. 이것이 매우 강력한 (협상) 카드이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한·미 간에 위대한 협상이 이뤄졌다. 이제 안보에 집중하자”고 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변화와 관련하여 뉴욕타임스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북 강경노선을 유지하도록 촉구하려는 시도”로 해석했다. 4월 27일 열릴 예정인 남북정상회담에서 남한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미국과 같이 단호한 입장을 취하라는 압박이란 것이다. 미국의 대북 강경파들은 비핵화의 해법으로 ‘선 폐기 후 보상’이라는 소위 ‘리비아식’을 주장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베를린에서 “포괄적 접근을 통해 북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완전한 해결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고, 최근 ‘고르디우스 매듭 끊기’식 일괄타결 방식도 언급했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북중 정상회담에서 단계적 조치를 언급한 후 정부에서는 북한에 리비아식 핵 해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설명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바로 이런 문재인 정부에 강경하고도 일관된 입장을 취해달라는 주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외신이 전하는 메시지다.
 
(단계2) 문제 접근의 시각차
 
중앙일보는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논의를 국가의 운명이 달린 ‘그레이트 게임’에 비유하며 여기서 ‘잠깐 한눈팔았다간 저 혼자만 링 밖으로 팽개쳐질 정도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고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핵을 둘러싼 각국의 셈법도 열거한다. 미국은 선 핵포기-후 보상의 ‘리비아식 해법’이다. 일본도 미국과 맥을 같이 한다. 우리는 비핵화와 북한의 체재 보장을 맞바꾸는 이른바 ‘고르디우스식 해법’, 북한은 비핵화 과정을 단계별로 나누어 단계별로 보상을 받자는 ‘단계적 해법’이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해법도 북한과 맥을 같이 한다. 중앙이 각국의 셈법을 소개하는 것은 그레이트 게임에 대비해 각국의 전략적 목표를 점검하라는 뜻으로 볼 수 있겠다.
 
한겨레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의 ‘정확한 의도’를 읽기 어렵다고 본다. 한국 정부가 미국과 같이 강경한 입장을 취해달라는 신호인지, 아니면 한·미 FTA에서 추가적인 이득을 얻어내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트럼프의 오하이오주 발언은 “자신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상대방에게 보이게 해 공포감을 유발한 뒤 양보를” 얻어 내기 위한 ‘미치광이 전략’이라고 격앙된 어조로 비난하고 있다. 이미 다 끝난 협상을 보류하겠다고 하는 미국의 태도가 상식과 국제관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또 통상과 안보를 하나로 묶어 외교적 거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단계3) 시각차가 나온 배경
 
중앙은 FTA 개정 협상의 서명을 북한과의 핵 협상 타결 이후로 미룰 수 있다는 트럼프의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으로 우리 정부의 비핵화에 대한 태도가 오락가락했음에 주목한다. 우리 정부가 최근 “리비아식 해법을 북한에 적용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한 것은 미국의 비핵화 접근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발언으로, 이는 북한의 단계적 해법에 동조한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기에 이를 차단하기 위한 포석으로 트럼프의 오하이오주 발언이 제기되었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비핵화를 가장 힘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공조를 공고히 하라는 권고다.
 
한겨레가 미국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국제관례와 상식이다. 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의 원칙적 타결을 담은 공동선언문까지 발표한 후 번복하는 것은 일종의 ‘탈선’이라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가 매우 나쁜 협정이라 폐기하겠다고 위협해 우리 정부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것도, 철강 관세부과를 앞세워 FTA 재협상에서 한국으로부터의 양보를 받아낸 것도, 트럼프의 오하이오주 발언도 자국의 이익을 챙기려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행태라고 규정한다.
 
김보일 배문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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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