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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무너뜨리는 '팻 핑거'의 저주

지난 6일 삼성증권 유령 주식이 110조원대로 발행되고 이 중 2000억원이 시장에 실제 유통됐다. 입력 사고 규모로는 국내에서 유례가 없다. 개인 투자자까지 피해를 봤다. 한국 증권 역사상 최악의 주문 실수 사고로 번질 조짐이다.
 
삼성증권 우리사주를 가진 직원에게 배당을 입금하면서 주당 1000원을 1000주로 잘못 입력한 게 발단이다. 뚱뚱한 손가락 탓에 자판을 잘못 눌렀다는 핑계에서 유래한 ‘팻 핑거(Fat finger)’ 오류다. 이런 사고는 대형 증권사라고 해서 피해갈 수 없다.
 
팻 핑거 실수가 대형 사고로 번지는 데는 3가지 법칙이 있다. 먼저 실무자가 벌인 실수를 이중삼중으로 막아낼 상사의 부재, 의무 태만이다. 2015년 독일의 도이체방크 사고가 대표적이다. 상사가 휴가를 간 사이 외환거래 업무를 맡은 젊은 직원이 고객사인 미국 헤지펀드에 60억 달러(약 6조4000억원)를 잘못 송금해버렸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33년 역사의 영국 베어링은행을 파산으로 내몬 팻 핑거 사건도 유사하다. 한 신참 딜러가 파생상품을 거래하면서 ‘사자’ 주문을 ‘팔자’로 입력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직속 책임자였던 닉 리슨은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이 실수를 숨겼다. 주문 착오로 인한 손실을 만회하려고 무리한 투자를 벌였다. 대규모 손실을 내면서 결국 베어링은행의 파산(1995년)으로 이어졌다.
 
시장의 탐욕도 팻 핑거 사태를 키우는 요인이다. 2013년 12월 한맥투자증권의 한 직원은 코스피200 옵션 주문을 하면서 오류를 냈다. 시중가와 크게 차이가 나는 가격으로 거래가 체결되면서 한맥증권은 400억원대 손실을 봤다. 당시 한맥증권과 거래했던 7개 국내 증권사는 해당 거래를 취소해줬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체결된 거래라며 외국계 기관투자가들은 합의를 거부했다. 결국 한맥증권은 2015년 파산했다. 팻 핑거 오류로 횡재를 한 상대가 수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헤지펀드 같은 외국계 기관투자가일 때 더 큰 손실이 난 사례는 이 외에도 빈번하다.
 
이번 삼성증권 사태도 마찬가지다. 시장의 탐욕이라기보다 엄밀히 말해 일부 직원들의 탐욕이다. 잘못 입고된 주식을 16명 직원이 팔지만 않았더라도 사태가 이렇게 커지진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오류를 사전에 막아낼 제도적 장치의 부족도 문제다.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주먹구구식 배당 업무 시스템이 삼성증권 말고도 다른 4개 증권사에서도 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를 금지할 금융 당국 차원의 사전 규제가 없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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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자의 의무 태만, 시장의 탐욕, 제도적 장치의 부재. 이 3가지가 맞물리면 팻 핑거 오류는 여지없이 대형 사고로 번졌다. 삼성증권 사태가 이를 증명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하물며 개인이 쓰는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도 자신이 보유한 주식보다 많은 양을 입력하면 주문 자체가 되지 않는데 정작 삼성증권 같은 증권사 내부엔 이런 기본적 시스템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황 연구위원은 또 “이번 일을 수습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라며 “고도화되는 금융상품 구조에 맞춰 인공지능(AI), 핀테크를 활용한 사전 사고 방지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당국과 금융사의 적극적 투자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전문가는 증권업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입력 실수 사고는 회사 규모, 국내·외, 금융사 종류에 상관없이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며 “실수가 발생하더라도 실제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내부 검증 시스템이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시중은행을 제외한 국내 증권사, 저축은행 등엔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전반적인 시스템 점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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