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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굵은 손가락'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2005년 12월 8일 아침, 일본 도쿄증권거래소(TSE)의 신흥기업 시장 ‘머더스’가 열리기 직전. 일본 미즈호증권의 한 트레이더가 고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날 신규 상장된 제이콤이라는 인재파견업체의 주식 1주를 61만 엔에 팔아달라는 주문이었다. 9시27분, 트레이더가 입력한 것은 엉뚱하게 ‘61만 주 1엔’이었다. 제이콤 발행 주식의 42배에 달하는 양이었다. 컴퓨터 화면엔 ‘비정상 주문’이라는 경고 메시지가 떴지만 트레이더는 습관적으로 엔터키를 눌렀다. 1분 뒤 “제대로 된 주문이냐”는 거래소 관계자의 전화를 받고 회사는 사태를 파악했다. 네 차례나 주문 취소를 시도했으나 이번엔 TSE의 전산망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사이 장은 시작됐고, 주가는 순식간에 하한가를 기록했다. 주문이 취소될 때까지 단 16분 만에 입은 손실은 270억 엔. 며칠 뒤 발행 주식 수를 초과해 팔린 9만여 주까지 현금을 주고 회수하자 손실은 405억 엔까지 늘어났다. 도쿄 증시 사상 최악의 ‘팻 핑거(fat finger)’ 사건이다.
 
‘굵은 손가락’이란 뜻의 ‘팻 핑거’는 증권 매매 직원이 주문 정보를 실수로 입력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한맥투자증권의 옵션거래 담당자가 이자 계산 수식에서 ‘365일’을 ‘0’으로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462억원의 손실을 보고 결국 회사 문을 닫은 일이 있었다. 올해 초에는 한 투자 증권사가 옵션의 매수·매도 주문 착오로 지난해 당기순이익의 절반인 62억원을 날려버렸다.
 
삼성증권이 우리사주에 배당금을 지급하면서 주당 1000원을 1000주로 입력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다. 더 어이없는 것은 일부 직원이 이렇게 잘못 입력된 주식을 재빠르게 팔아버린 일이다. 이 바람에 주식시장은 혼란에 빠졌고, 손실을 본 고객도 생겼다. ‘신뢰에 가치로 답하다’는 회사 슬로건이 무색해졌다. 발행되지도 않은 주식을 공매도할 수 있다는 매매 체계의 허점까지 드러나면서 주식시장 전체가 불신에 휩싸여버렸다.
 
컴퓨터나 AI(인공지능)를 이용해 고도로 자동화된 증권 매매 시스템에서는 작은 실수 하나가 ‘재앙’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금융회사의 자동 매매 알고리즘이 일시에 한 방향으로 작용해 주가가 폭락하는 ‘플래시 크래시(일순 폭락)’가 벌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스템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잘못 입력된 주식을 보고 거리낌없이 매도 버튼을 누른 손가락에는 인간과 컴퓨터를 구분짓는 ‘책임감’이 없었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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