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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강요·권한남용 의심되는 홍일표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청와대에 근무하는 홍일표 행정관이라는 사람이 미국 존스홉킨스대에 설치된 한·미 연구소의 인사 문제에 관여하고, ‘6월부터 예산 지원 중단’이란 결정에 개입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한·미 연구소에 예산을 지원하는 대외경제연구원 부원장이 지난해 10월 30일 워싱턴 파견 근무자에게 보낸 e메일에서 “BH(청와대)의 홍일표 보좌관 측에서는 현재 상황을 대단히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대목이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 청와대가 “자문에 응하는 역할만 한 것으로 안다”고 하고 뒤늦게 부원장은 “홍 행정관은 인사에 관심 두지 않았다”며 홍일표 두둔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한·미 연구소의 로버트 갈루치 이사장이 “한국 정부가 부당한 간섭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나는 조윤제 주미대사를 포함해 한국 대표자들로부터 구재회 연구소장을 교체하라는 얘기를 계속 받아 왔다(중앙SUNDAY 4월 7일자)”고 한 반박이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갈루치는 또 “이번 사안은 청와대 내 한 사람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정책도, 원칙도 없다”고 했다. 정황상 홍일표가 그 ‘청와대 내 한 사람’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필자는 반론을 듣기 위해 여러번 전화를 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합리적 의심이 사실로 판명날 경우 홍일표는 헌법 위반에 형법상 강요·권력남용죄 혐의를 피할 수 없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21조)”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31조)”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민간 대학에 한국 정부기관이 예산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청와대 특정인이 나서 그 대학 인사를 좌지우지하려 했다면 ‘학문의 자유’ ‘대학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해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갈루치는 1994년 한반도 핵 위기 때 미국 대표로 북한과 제네바 협상을 완수했던 워싱턴의 실력자다. 북핵 위기가 고조됐던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평화적 해결방안을 논의했던 대화파·지한파 지성이기도 하다. 그런 갈루치가 “나는 지금까지 기부금을 받아도 보고, 주기도 해 봤다. 미국 최고의 대학한테 소장을 바꾸라는 지시를 할 수 없다. 참으로 기이한(bizarre) 일이 벌어지고 있다. 뭐가 진짜 이유인지 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고 한 말엔 한국의 국격과 문화 수준을 청와대 일개 행정관이 이렇게 깔아뭉갤 수 있느냐는 냉소가 묻어난다. 참모가 대통령을 수치스럽게 했다.
 
홍일표한테 박근혜 피고인에게 24년형이 내려진 판결문을 읽어 보길 권한다. 판결문은 “피고인은 사기업의 경영진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도록 강요했고,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지위와 권한을 남용해 경영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썼다. 홍일표는 미국 사립대학의 연구소장을 물러나도록 강요했고, 청와대 근무 권한을 남용해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을 심각하게 침해한 건 아닌지 자문해 보라. 정부 공무원을 동원해 블랙리스트를 집행토록 한 범죄에 대해 판결문은 “청와대의 위법부당한 지시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직업적 양심에 반하는 업무를 고통스럽게 수행해야 했다”고 밝혔다. 조윤제 주미대사나 대외경제연구원의 부원장은 합리적이고 절차를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보수적이고 공화당 성향이라는 이유로 구재회 소장을 무리하게 쫓아내는 업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직업적 양심에 반하는 상당한 고통을 느꼈으리라. 이 책임을 홍일표나 그 상급자가 지게 될 때가 올 것이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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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