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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의 퍼스펙티브] 미·중과의 통상 분쟁, 위기 모면용 타결 안 된다

미·중 통상 분쟁
결국 올 것이 왔다. 미국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니 중국은 한번 해볼 테면 해보라며 맞서고 있다. 지난 3월 8일 국가 안보를 이유로 미국이 중국산 철강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도 4월 2일 미국에 타격을 줄 128개 품목에 25% 관세 부과로 응수했다. 다음날 미국은 통상법 301조를 적용, 1300개 중국 상품에 대해 최대 35% 관세 부과로 총 500억 달러 규모의 대중 제재 발동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도 중국은 동일하게 맞설 것을 천명하고 있는 상태다. 추이텐카이(崔天凱) 주미 중국대사의 “끝까지 싸울 것(fight to the end)”이라는 말이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G2가 정면 충돌하자 세계가 움찔하고 있다. 당장 세계 증시가 출렁거린다. 무엇보다 우리가 곤혹스럽다. 우리 교역 순위 1·2위 국가가 정면으로 맞서니 큰 낭패다. 2006년부터 잠복해 온 양국의 교역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가뜩이나 보호무역주의 파장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우리인데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거침없는 중국 vs. 여유 잃어가는 미국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양국 통상 관계에서 2006년 이후 지난 12년은 거침없는 행보의 중국과 점차 마음의 여유를 잃어가는 미국으로 요약된다. 미국은 이제 교역 분야에서 중국의 종횡무진을 ‘안보’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더는 치고 올라오는 중국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17년 미국은 대중 교역에서 375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미국 전체 무역 적자 5660억 달러의 66%에 달한다. 미국은 심각한 위기로 판단하고 있다.
 
중국도 물러설 곳이 없다. 남중국해 분쟁에 이어 통상 문제가 미·중 패권 경쟁의 상징처럼 돼버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통상 문제에서 중국은 이전과 달리 자국에 대한 주변의 시각이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최근 보호무역 조치를 남발한 미국의 업보다. 평정심을 잃은 미국이 조급한 반응을 보이지만 오랜 기간 수세에 있던 중국은 차분하게 나서는 모양새다.
 
오바마 행정부가 환태평양경제협정(TPP) 등 새 시스템 구축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단도직입적으로 중국에 대한 공세를 전개하고 있다. 중국을 겨냥해 던진 그물에 다른 국가도 여럿 걸리다 보니 예상외로 전선이 넓어졌다. 한미 FTA 개정에 조기 합의한 바탕에는 전선 넓히기가 부담스러운 미국의 판단이 한몫했을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그간 백약이 무효였다. 2001년 11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미·중 관계의 변곡점이었다. 미국은 당시 중국의 위협을 인식하고 가혹한 가입 조건을 부과했으나 중국의 교역은 성장을 거듭했다. 2006년에 이르러 미국은 중국의 위협을 실감하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기 시작한다. 중국을 향한 반덤핑 관세,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조치가 쉴 새 없이 이어졌으나 효과가 없었다. 이에 환율·환경·천연자원·지식재산권으로 눈을 돌렸으나 이마저 신통치 않자 이제 국가 안보를 이유로 수입 제한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이도 기대에 못 미치면 새 조치를 찾아 나설 것이다. 공정 거래, 소비자 안전, 반부패 조치 등이 대기하고 있다. 사문화돼 있던 301조도 다시 꺼내 들었다.
 
우리는 미·중 분쟁을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당장 우려되는 것이 미국을 거쳐 중국으로, 또는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향하는 한국 상품에 미칠 파장이다. 그러나 중간재 수출에 방점을 두고 파장을 살피는 것은 다소 생뚱맞다. 우리 상품이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향하는 비율은 상당히 낮다. 2014년 기준 한국의 대중 중간재 수출 중 제3국 수출용은 25.8%이고, 미국으로 향하는 것은 4.4%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으로 수출된 우리 상품이 다시 중국으로 향하는 비중은 0.8%에 그친다. 반도체·자동차 등 중국 내 공장에서 생산하는 상품도 주로 중국 시장을 대상으로 한다. 미국에 건설된 우리 공장도 마찬가지다. 현지 생산 상품에 대한 영향은 그렇게 크지 않다.
 
한국은 미·중 분쟁 최대 피해자
가장 큰 우려는 미·중 분쟁이 쏟아내는 전방위적 유탄과 파편이다. 미국 통상법 체제에서는 특정 국가만을 대상으로 하는 조치를 맞춤형으로 찍어 내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니 내심 중국을 겨냥한 수입 제한 조치이나 그 외관은 여러 국가를 동시에 대상으로 하는 모습을 갖출 수밖에 없다. 지금 문제 되는 232조 철강 관세가 그러하다. 중국과 유사한 상품을 유사한 방식으로 수출하는 우리는 항상 미·중 충돌의 언저리에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원래 중국에 주로 적용되던 ‘이용 가능한 정보’(adverse facts available: AFA) 조사 기법이 시간이 지나며 우리 기업으로 방향을 튼 것이나, 중국의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적용되던 비 시장경제체제 판정이 옷만 바꾸어 우리 상품을 쫓아다니는 것도 그 출발은 미국의 중국 견제였다. 최근 한·미 통상 분쟁 사안들도 근원은 미·중 갈등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국도 12년간 미국의 조사 기법과 노하우를 익혀 필요하면 우리에게 적용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통상 조치가 정교하게 된 데에는 이러한 학습 효과가 크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두 나라가 전례 없는 갈등의 길로 들어섰다. 양국 간 뿌리 깊은 불신과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어 쉽게 갈등이 해결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서로 한 발씩 물러선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시한폭탄의 시계만 잠시 돌려 두는 미봉책에 그칠 공산이 크다.
 
급변하는 통상 환경, 원칙 정해 대처해야
무엇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나라는 우리에게 압도적인 양대 수출시장이다. 그리고 우리 내수시장은 너무 작다. 이 두 사실이 당장 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니 ‘수출시장 다변화’와 ‘내수시장 확대’로 문제 해결을 도모한다는 것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대안이다. 싫으나 좋으나 이들 두 시장으로 수출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일본 정도의 내수시장만 있어도 이런 고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은 일단 악화를 막으며 관리하는 것이 현명하다. 최근 한미 FTA 개정 협상과 한·중 간 현안 논의는 삐걱거리면서도 아쉬운 대로 통상 현안을 관리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런 관리 모드에서 몇 가지 구체적 방안을 생각해 보자.
 
우리 기업부터 살펴보자. 미·중은 독특한 공통점이 있다. 지방 정부의 권한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중앙 정부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영역이 적지 않다. 이들을 공장 건설 허가나 세금 감면 신청의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평소에 우군으로 만들어 두자. 문제가 생긴 이후 움직이면 늦다. 분쟁이 불거진 후 분쟁 해결을 위해 접근하면 반발심만 초래한다.
 
그리고 서비스 분야로 조금씩 눈을 돌리자. 최근 미·중 수입 규제는 모두 ‘상품’을 겨냥한 것이다. 국제 교역의 또 다른 축인 서비스 교역의 비중을 차차 높이면 최소한 이들이 던지는 상품 규제의 넓은 그물에 함께 걸리는 상황은 줄여나갈 수 있다. 우리의 체질을 바꾸어야 하는 어려운 길이나 내수시장을 키우는 것보다 현실성이 있다. 다행히 우리에게 기회가 오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새 디지털 상품과 이와 연동된 서비스를 근간으로 한다. 여기에서 한 발만 앞서면 상당 기간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다.
 
여러 통상 문제에서 우리의 입장은 미국과 중국의 중간 즈음 어딘가이다. 사안에 따라 때로는 미국, 때로는 중국 입장에 좀 더 가까웠다. 나름 객관성을 유지했다는 의미다. 그 결과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분위기가 있다. 어렵더라도 이 기조를 유지하며 균형감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양국 분쟁에서 중립을 유지한다는 것과는 다른 맥락이다. 옳고 그름이 명백한 사안에 대해 우리 입장을 밝히고 이에 기초해 처신하는 것이 옳다. 불편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이득이다.
 
최근 통상 분쟁은 한국에 예방주사
이런 맥락에서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한 ‘위기 모면용’ 일회성 타결은 늘 경계해야 한다. 눈앞의 상황만을 모면하고자 한쪽 입장을 수용하고 그쪽 편을 드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다. 다른 쪽의 보복은 물론이거니와 그 보복에 대해 우리가 내세울 주장도 별로 없게 된다. 애매한 상황에서 한쪽 편을 드는 도박을 했으니 선택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것으로 비칠 것이다. 미·중 갈등은 유럽연합(EU)·일본·캐나다 등 주요국이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안이다. 우리만 굳은 심지로 밀고 나가면 이들의 눈초리가 부담돼서라도 미·중이 한국을 거칠게 대하기는 쉽지 않다. 양국 간 줄타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에 따라 처신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 최근 일련의 상황은 우리에게 좋은 예방주사가 됐다. 미·중 통상 분쟁은 오랜 기간 내연하던 문제가 터져 나온 것으로 이번에 갈등의 표면화를 거쳐 양국의 기본 입장이 확인되고 적절한 수준의 대타협이 이루어지는 것도 기대할 수 있다. 바닥까지 갔으니 이제 공생을 위한 방안을 찾아 나설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만 되면 우리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다. G2 국가 간 입장 조율로 첨예하고 애매한 이슈들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진다면 우리 기업이 안정적으로 교역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기대해볼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우리가 ‘장기판의 졸’처럼 거래되는 상황은 경계해야 한다. 미·중 간 미국산 반도체 및 자동차 관련 거래설은 그래서 불편하다.
 
통상문제로 올 1월부터 숨 가쁘게 달려오고 있다. 우리가 가진 역량과 인맥을 모두 동원하고, 신중히 그러나 과감히 움직여야 할 시점이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통상분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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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