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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그들의 만남이 한국 근대 건축의 기원이 됐다.

미리 보는 '김중업,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다' 전시회
 
"저녁노을에 잠기려는 동경/빛나는 후지산과 서해/불근(붉은) 하늘을 등지고 피라밑(피라미드) 마냥/소슨(솟은) 후지산은 아름다웠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9월 20일. 이탈리아 베니스(베네치아)에서 열리는 국제예술가회의에 한국 건축가 대표로 참석하기 위해 일본으로 간 건축가 김중업(1922~1988년)은 비행기를 기다리며 들뜬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적었다.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 단체사진. 르 코르뷔지에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이 사진의 첫번째 줄 오른쪽 두번째가 르 코르뷔지에다. 두번째 줄 왼쪽에서 네번째는 그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 김중업 선생이다. [사진 안양문화예술재단]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 단체사진. 르 코르뷔지에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이 사진의 첫번째 줄 오른쪽 두번째가 르 코르뷔지에다. 두번째 줄 왼쪽에서 네번째는 그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 김중업 선생이다. [사진 안양문화예술재단]

김중업 선생이 베니스로 가는 여정을 적은 메모지. [사진 안양문화예술재단]

김중업 선생이 베니스로 가는 여정을 적은 메모지. [사진 안양문화예술재단]

 
이곳에서 그는 존경하는 건축가이자, 평생의 스승이 된 세계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1887~1965년)'를 만나게 된다.
르 코르뷔지에는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로 기둥으로 건물을 대지에서 공중으로 띄워 올리는 필로티(pilotis), 옥상정원 등 다양한 건축 방식을 도입해 근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가 설계한 프랑스의 롱샹성당 등 17개의 건축물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김중업 선생이 르 코르뷔지에의 밑에서 일할 당시 아틀리에의 모습. 르 코르뷔지에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사진이다. [사진 안양문화예술재단]

김중업 선생이 르 코르뷔지에의 밑에서 일할 당시 아틀리에의 모습. 르 코르뷔지에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사진이다. [사진 안양문화예술재단]

 
르 코르뷔지에를 만난 김중업은 자신의 명함을 건네며 "제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귀국하지 않고 그의 밑에서 일을 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당시 김중업에게 받은 명함 뒷면에 '1952년 10월 17일에 왔다. 한국에서 일할 것을 L.C(르 코르뷔지에의 약자)에게 제안하다'라고 적어놨다.
김중업 선생이 베니스에서 만난 르 코르뷔지에에게 준 명함. 르 코르뷔지에는 이 사인 뒤에 날짜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까지 기록해 놨다. 최모란 기자

김중업 선생이 베니스에서 만난 르 코르뷔지에에게 준 명함. 르 코르뷔지에는 이 사인 뒤에 날짜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까지 기록해 놨다. 최모란 기자

 
르 코르뷔지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가 된 김중업은 프랑스 파리 세브르가 35번지에 있던 그의 아틀리에에서 3년 2개월 동안 일한 뒤 귀국했다. 
이후 명보극장(1956년), 서강대학교 본관(1958년), 주한 프랑스 대사관(1960년), 서산부인과의원(1965년) 등을 선보였다.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은 서구적 모더니즘 건축 양식에 한국의 미를 더한 김중업식 건축이다. 이는 우리나라 현대 건축의 기원이 됐다. 
김중업 선생이 르 코르뷔지에 밑에서 일할 당시 참여했던 인도 샹디갈 행정청사 도면. 도면에 'KIM' 이라는 이름이 써 있다. [사진 안양문화예술재단]

김중업 선생이 르 코르뷔지에 밑에서 일할 당시 참여했던 인도 샹디갈 행정청사 도면. 도면에 'KIM' 이라는 이름이 써 있다. [사진 안양문화예술재단]

 
스승 르 코르뷔지에와 제자 김중업의 인연이 담긴 전시회가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예술공원에 있는 김중업 건축박물관에서 열린다. 
6월 17일까지 개최되는 '김중업,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다-파리 세브르가 35번지의 기억' 이 그것이다. 
김중업 작고 3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김중업이 '아틀리에 르 코르뷔지에'의 일원이 되어 참여했던 도면들이 전시된다. 그는 르 코르뷔지에의 12개 건축 작업에 참여해 320장에 달하는 도면을 남겼다.  
김중업 선생이 르 코르뷔지에 밑에서 일할 당시 참여했던 인도 샹디갈 캐피톨 배치도. 도면에 'KIM' 이라는 이름이 써 있다. [사진 안양문화예술재단]

김중업 선생이 르 코르뷔지에 밑에서 일할 당시 참여했던 인도 샹디갈 캐피톨 배치도. 도면에 'KIM' 이라는 이름이 써 있다. [사진 안양문화예술재단]

 
프랑스의 자울주택과 낭트 르제의 위니테 다비타시옹, 인도 아메다바드시의 방직자협회 회관·쇼단 저택·사라바이 저택, 인도 샹디갈시 의사당·행정청사·고등법원·주지사 관저 등이다. 전시회에는 김중업이 참여한 르 코르뷔지에의 10개 작품과 관련된 도면과 스케치 123점이 전시된다. 
그가 참여한 도면에는 모두 'KIM'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김중업 선생이 르 코르뷔지에 밑에서 근무할 당시 설계에 참여한 살계도면에는 'KIM'(동그라미) 이라는 싸인이 들어가있다. 최모란 기자

김중업 선생이 르 코르뷔지에 밑에서 근무할 당시 설계에 참여한 살계도면에는 'KIM'(동그라미) 이라는 싸인이 들어가있다. 최모란 기자

 
1956년 귀국한 김중업의 초기 작품은 스승을 닮았다. 필로티 구조나 야외 계단, 옥상 정원, 평면·수평창, 층과 기둥 등 건물 내부 구조를 밖으로 드러내 보이는 구조물 등이 그렇다. 
일상생활에서도 스승을 따라 했다. 귀국 후 이듬해 연 '김중업 건축작품전'에서 그는 스승처럼 뿔테 안경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나타났다. 그와 일했던 사람들은 김중업은 '김 꼬르'(르 코르뷔지에를 줄여 부르는 것)라고 불렀다고 한다.
김중업 선생이 르 코르뷔지에 밑에서 근무할 당시 설계에 참여한 인도 샹디갈 의사당 사진 [사진 안양문화예술재단]

김중업 선생이 르 코르뷔지에 밑에서 근무할 당시 설계에 참여한 인도 샹디갈 의사당 사진 [사진 안양문화예술재단]

 
하지만 여기에 한국의 정서를 담았다.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서까래를 닮은 지붕 등 '선(곡선)'을 강조하고 남향·정원·사람 등 내세운다. "건축은 인간에 대한 찬가이자 알뜰한 자연 속에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또 하나의 자연"이라는 그의 신조를 그대로 드러낸 건축물이다.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주한 프랑스대사관 모형. 최모란 기자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주한 프랑스대사관 모형. 최모란 기자

 
김중업은 평양 출신이다. 일본에서 건축을 배우고 해방 이후에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교수로 활동했다. 한국전쟁 때는 부산으로 피난해 생계를 이었다. 이번 전시회에는 그가 부산 피난 생활 중에 설계한 부산 '송도의원'의 사진도 처음으로 발굴돼 전시됐다. 
조병화 시인이 그린 패각의 집 - '송도의원'의 실제 사진. 송도의원은 김중업 선생이 부산 피난 당시 설계한 병원이다. 이 사진은 조병화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 안양문화예술재단]

조병화 시인이 그린 패각의 집 - '송도의원'의 실제 사진. 송도의원은 김중업 선생이 부산 피난 당시 설계한 병원이다. 이 사진은 조병화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 안양문화예술재단]

 
그렇다면 김중업 건축박물관이 안양에 들어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안양과 김중업의 인연은 1959년 안양시에 들어선 유유제약 안양공장에서 시작된다. 김중업은 이 공장을 직접 설계했다. 공장의 곳곳을 살펴볼 수 있도록 정문에 설치된 둥근 모양의 경비초소, 거미 다리처럼 밖으로 나온 기둥 등 그의 건축 특징이 고스란히 담겼다. 현재도 김중업이 설계한 건물 4개 동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예술공원에 있는 김중업건축박물관 전경. 김중업 선생이 직접 설계한 유유제약 안양공장을 리모델링해 박물관으로 꾸몄다. [사진 안양문화예술재단]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예술공원에 있는 김중업건축박물관 전경. 김중업 선생이 직접 설계한 유유제약 안양공장을 리모델링해 박물관으로 꾸몄다. [사진 안양문화예술재단]

유유제약이 소장하고 있는 1959년 유유제약 안양공장 준공식 당시 사진 [사진 안양문화예술재단]

유유제약이 소장하고 있는 1959년 유유제약 안양공장 준공식 당시 사진 [사진 안양문화예술재단]

 
유유제약은 2007년 첨단시설을 갖춘 충북 제천공장으로 이전했다. 다른 곳에 팔려 헐릴 위기에 놓인 땅을 안양시가 샀다. "거장의 작품이 방치되는 것이 안타깝다"는 이유였다. 
안양시는 이곳에 김중업의 유품 등도 모아 2014년 김중업 건축박물관을 열었다. 
뜻에 공감한 김중업의 아들과 지인 등도 무상으로 유품을 기증해 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유품만 5000여 점에 이른다고 한다. 안양시는 박물관 안에 상설전시관을 열어 그의 유품 일부를 공개하고 있다.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주한 프랑스대사관 모형. 최모란 기자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주한 프랑스대사관 모형. 최모란 기자

 
박물관 부지에선 보물 제4호로 지정된 중초사지 당간지주와 고려 시대 삼층석탑 등도 있다. 4차에 걸친 발굴조사로 안양(安養)이란 지명의 유래가 된 고려 시대 안양사(安養寺) 명문 기와도 출토됐다. 안양시는 기존 평촌 아트홀에 있던 안양박물관도 이곳으로 옮겨 지난해 9월 재개관했다. 
 
고은미 안양문화예술재단 학예연구사는 "르 코르뷔지에의 주요 도면들이 한꺼번에 국내로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르 코르뷔지에와 김중업의 인연은 물론 이들의 만남이 한국 현대건축에 미친 영향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안양=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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