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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라 말 뇌물, 안종범 수첩 증거 인정 … 이재용 2심과 달라

[SPECIAL REPORT] 변호사 기자가 Q&A로 풀어본 박근혜 판결 
검찰이 “국정농단 정점에 있는 최종 책임자”라고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24년형이 선고됐다.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18가지의 혐의 중 16가지에 대해 재판부가 유죄 또는 일부 유죄라고 판단한 결과였다. 그러나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박 전 대통령에게 던졌던 그물에선 구멍도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18가지 혐의 중 검찰 측이 입증을 위해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던 것은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삼성그룹으로부터 약 433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받기로 약속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날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것은 정유라씨가 타던 말 값 등 72억원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삼성그룹이 2015~2016년 정유라 승마 지원과 미르·K스포츠 재단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각기 다른 명목과 방식으로 전달한 돈 전체를 뇌물로 판단하기 위해 검찰이 내세운 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의 ‘승계작업’이란 설계였다.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 ▶삼성 SDS 및 제일모직 상장 ▶삼성테크윈 등 4개 계열사 매각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삼성물산 주식 처분 최소화 ▶금융위원회의 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 전환 계획 승인 등이 모두 이 부회장이 최소한의 자금으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지배할 수 있게 하려는 ‘승계작업’이며 곧 부정한 청탁의 대상이란 주장이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날 선고에 담겨 있는 판단의 매듭들과 향후 재판에 영향을 미칠 쟁점들을 부장판사 출신 서민석(52·사법연수원 23기·법무법인 케이에스앤피) 변호사와 함께 짚어봤다.
 
 실제 돈을 받은 최순실씨보다 높은 형량을 받았다.
“롯데그룹에서 받았다가 돌려준 70억원 등이 유죄로 인정되면서 뇌물 액수가 커진 것이 양형에 큰 영향을 준 결과다. 뇌물 수수액이 1억원 이상이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돼 있고, 뇌물 액수가 커질수록 양형도 높아진다. 뇌물죄는 공무원의 직무행위를 매수할 수 없도록 해 공정한 직무 집행을 확보하는 데 처벌 목적이 있다. 따라서 돈은 최순실이 받았더라도 공무원인 대통령의 형량이 높을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통령은 삼성·롯데로부터 직접 받지도 않았고 최씨와 함께 썼다는 것도 입증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230억원이 넘는 뇌물을 수수했거나 요구했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공모공동정범이라는 법리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돈을 받지 않았더라도 최씨와 공모한 정도가 뇌물 수수 과정에 본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볼 만큼의 장악력을 행사하는 데 이른 것이라면 최씨와 함께 정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 2015년 7월 25일 독대에서 박 전 대통령이 승마협회 운영에 관해 질책했다는 이 부회장의 진술, 대통령이 정유라씨 이름을 거론했다는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진술 등이 재판부가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을 공모공동정범을 인정한 핵심적인 증거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측은 삼성에서 받았거나 받기로 약속한 뇌물을 433억원으로 계산했지만 결국 정유라씨 승마 지원에 들어간 72억원만 유죄로 인정됐다.
“두 재단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된 돈에 관해 제3자 뇌물수수죄를 적용하면서 검찰 측이 ‘부정한 청탁’의 내용으로 제시했던 ‘승계작업’이라는 틀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게 컸다. 재판부는 ‘승계작업’을 이루는 개별 현안들의 해결이 이 부회장의 삼성생명이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효과는 있지만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라는 목표를 위해 개별 현안들이 추진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 측은 삼성의 굵직한 현안들을 다양한 루트로 보고받은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묵시적 청탁’이 인정된다고 주장했었다.
“대법원 판례는 돈을 주고받은 당사자들 사이에 직무집행의 내용과 금품이 그 직무집행의 대가라는 점에 대한 ‘공통의 인식과 양해’가 존재해야 묵시적 청탁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 ‘승계작업’이라는 틀을 인정하지 않은 이상 개별 현안들에 대한 청탁이 있었는지 따질 수밖에 없다. 재판부는 삼성SDS 및 제일모직 상장,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등 다섯 가지는 첫 독대 이전에 이미 종결된 사안이고, 다른 현안에 대한 청탁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제출한 대통령 말씀자료 등에 삼성그룹의 현안들이 언급된 것만으로는 독대 상황에서 실제 청탁이 이뤄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본 것 같다.”
 
 승마지원금 72억원은 비교적 쉽게 뇌물로 인정됐다.
“승마지원금에 적용된 단순수뢰죄에는 ‘부정한 청탁’이라는 요건이 없다. 대통령이 갖는 광범위한 권한이 기업 활동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과 삼성그룹의 후계자라는 이 부회장의 지위 등을 감안하면 뇌물죄의 요건인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을 인정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광범위한 권한을 갖는다는 이유로 대통령이나 검사 등에게 적용돼 온 포괄적 뇌물의 법리가 뇌물죄의 처벌 범위를 지나치게 넓힌다는 지적도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도 같은 법리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어떤 부분이 쟁점인가.
“포괄적 뇌물의 법리는 1997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처음 공식화됐다. 대통령처럼 광범위한 권한을 갖는 공무원이 받은 금품에 대해서는 각각의 금품이 어떤 직무집행의 대가인지를 일일이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진다는 비판 때문에 대법원도 최근에는 적용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직무권한이 넓은 고위직 공무원이더라도 금품을 받을 당시에 그 직무에 속하는 사항이 막연하고 추상적이거나 그 권한을 행사할지 여부 자체를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직무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본 판결이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롯데그룹에 받았다가 돌려준 70억원과 SK그룹에 요구했다가 받지 못한 89억원은 각각 제3자 뇌물수수죄와 제3자 뇌물요구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입증 수준의 질적 차이가 있다는 의미인가.
“그렇게 본 것 같다. 검찰 측이 입증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및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독대 전후의 사건 전개 과정으로 볼 때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보기에 충분한 정황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독대에 앞서 신 회장과 최 회장을 만난 뒤 두 그룹의 현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한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진술과 그의 수첩 등이 유력한 증거라고 본 것 같다.”
 
 이 부회장에 대한 2심을 맡은 재판부(부장 정형식)는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부인했는데 이번 재판부는 엇갈린 판단을 내렸다. 박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빼곡히 적혀 ‘사초(史草)’라고도 불리던 이 수첩의 증거능력에 대한 판단이 왜 달라지나.
“수첩에 있는 내용을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대화 내용을 직접 입증하는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데는 이 부회장의 1·2심 재판부, 이번 재판부의 판단이 모두 일치한다. 증거법의 원칙상 대화 주체가 아닌 제3자가 전해들은 것을 기록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모두가 내용을 부인하는 한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재판부와 이 부회장의 1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기업인들과의 독대 후 안 전 수석에게 대화 내용을 불러줘 안 전 수석이 받아 적었다는 사실은 어떤 대화가 있었는지 추측할 수 있게 하는 간접 사실이고 수첩은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증거로는 쓸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2심 재판부는 이렇게 보면 결국 사실상 수첩에 기재된 내용의 대화나 지시가 있었다는 걸 인정하는 데 쓰이게 돼 정황증거로도 쓸 수 없다 보았기 때문에 판단이 엇갈린 것이다. 안종범 수첩은 뇌물 혐의 외에도 각종 직권남용 및 강요 혐의의 주요 증거로 활용된 만큼 향후 재판에서도 증거로 쓸 수 있는지, 쓸 수 있다면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계속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2심은 정유라씨가 말을 빌려 탄 것으로 보고 그 사용가치 만큼만 뇌물로 인정했지만 이번 재판부는 말 세 마리의 값이 뇌물이라고 했다.
“승마지원 과정에서 오고 간 행위들의 사실 인정에서 차이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씨가 삼성 측에 말의 소유권 이전을 요구했는지와 삼성 측이 이 요구에 따라 말에 대한 처분 권한을 최씨 측에 넘겨주었는지에 대한 판단이 달랐다. 이번 재판부는 최씨가 요구하는 대로 다 응해주겠다는 취지의 삼성전자 박상진 사장의 발언을 소유권을 넘겨주겠다는 승낙이라고 봤지만 이 부회장의 2심 재판부는 그렇게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재판부는 2016년 최씨 측이 살시도와 비타나를 다른 말로 바꾸는 교환계약을 체결했는데 삼성 측이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았던 점 등도 그 이전 어느 시점에 말들에 대한 처분 권한이 최씨 측으로 넘어갔다는 유력한 정황으로 본 거 같다. 이 같은 판단의 차이는 뇌물 수수 액수에 꽤 큰 차이를 만들게 된다. 결국은 대법원에서 정리돼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문체부 인사 등과 관련된 직권남용 혐의는 쉽게 인정됐다.
“대통령의 직접적 지시나 암묵적 공모가 있었는지가 재판 내내 쟁점이 됐다. 이 부분을 이날 재판부는 ‘수석비서관들의 증언과 대수비(대통령이 참석한 수석비서관회의), 실수비(대통령이 빠진 수비) 회의 자료,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지위를 종합해 보면’이라고 표현했다. 상하관계에 있는 공무원들을 직권남용의 공모공동정범으로 구성하는 데에는 지시가 있었는지 입증하는 게 중요한 부분이다. 직권남용죄에 대해선 그동안 헌법재판소의 소수의견 등도 ‘직권남용’의 의미가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등의 지적이 제기돼 왔다. 그런 상태에서 국정 농단 재판으로 그 적용 범위가 상당히 넓어진 느낌이다. 향후 구성 요건과 양형 기준에 대한 법조계의 성찰이 과제로 남았다.”
 
 박 전 대통령의 재판 거부가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소 후 재판 출석 여부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피고인의 재판 출석은 권리인가 의무인가.
“피고인의 재판 출석은 권리이자 의무다.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는 것은 법질서를 경시하는 태도로 보아 양형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반성이 없다’는 이번 재판부의 판단에서도 불출석이 미친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서민석 변호사(左), 임장혁(右)

서민석 변호사(左), 임장혁(右)

임장혁 변호사·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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