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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21년' 박근혜 드라마···그 결말은 징역 24년이었다

영애(令愛)에서 최정점인 대통령을 지나 영어(囹圄)의 몸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권력의 정점인 청와대에서 21년간 살았다. 그 누구보다 긴 시간이다. 1963년 ‘박정희의 딸’로 청와대에 들어간 그는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게 피격당해 숨진 1974년부터 청와대 안주인 역할을 했다. 1979년 박정희마저 총탄에 숨지자 쫓겨나듯 청와대를 나왔다. 그리고 33년 후인 2013년엔 청와대의 주인, 대통령이 돼 돌아갔지만 2017년 3월 10일 탄핵당했다. 3주 후인 31일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등으로 구속기소 됐고, 1년여 후인 6일 법원은 그에게 징역 24년을 선고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 자격으로 새마음갖기결의실천대회에 참석했던 박근혜. [중앙포토]

박정희 대통령의 '딸' 자격으로 새마음갖기결의실천대회에 참석했던 박근혜. [중앙포토]

 
박근혜의 삶은 웬만한 드라마나 소설로도 담을 수 없을 만큼 드라마틱하다. 현대사에서 가장 강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의 딸로 태어난 출발부터 남달랐다. 1979년 전두환 신군부에 쫓겨나 은둔의 삶은 살던 그가 재등장한 건 1997년이었다. 대선을 8일 앞둔 그해 12월 10일,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다. 이듬해 4월 재보선에 출마해 그의 정치적 고향이 된 대구 달성에서 배지를 달았다.
 
박근혜가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진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 ‘국모(國母)’라 불린 육영수 여사를 빼닮은 외모 등으로 강력한 팬덤을 형성했다.
 
2014년 탄핵 후폭풍으로 위기에 처했던 한나라당이 꾸렸던 여의도 천막당사. [중앙포토]

2014년 탄핵 후폭풍으로 위기에 처했던 한나라당이 꾸렸던 여의도 천막당사. [중앙포토]

 
보수 진영은 위기 때마다 그를 소환했다. 처음 정치판의 중심에 섰던 건 2004년 3월,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후폭풍을 맞아 "총선에서 50석도 얻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팽배했을 때다. 천막당사를 세운 그는 전국을 돌며 읍소했고, 한나라당은 예상을 크게 웃도는 121석으로 선전했다.
 
2006년 5ㆍ31 지방선거를 앞둔 5월 20일 테러범 지충호가 커터칼로 박근혜의 얼굴에 10㎝ 넘는 상처를 입혔다. 두 시간에 걸쳐 60바늘을 꿰맨 그는 퇴원 직후 오른뺨에 테이프를 붙인 뒤 전국을 돌았다. 한나라당은 서울ㆍ경기ㆍ대전 등 광역단체 12곳을 휩쓸었는데, 이때부터 그는 ‘선거의 여왕’이 됐다.
 
2007년 8월 본선이나 다름없었던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졌다. 단상에 올라간 그는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다"고 선언한 뒤 공개 활동을 확 줄였지만, 이후 가끔 내뱉는 발언 하나하나가 큰 정치적 위력을 발휘했다.
 
이명박 정부 내도록 ‘여당 내 제1야당’이었던 그에 맞설 다른 보수 주자는 없었다. 2012년 12월 대선에서 보수 단일 후보로 당시 문재인 후보와 정면 대결을 벌였다. 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처음으로 과반 득표율(51.6%)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식을 마치고 33년만에 청와대 본관으로 입장하던 모습. 뒷줄 왼쪽부터 김장수 국가안보실장,허태열 비서실장. [사진공동취재단]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식을 마치고 33년만에 청와대 본관으로 입장하던 모습. 뒷줄 왼쪽부터 김장수 국가안보실장,허태열 비서실장. [사진공동취재단]

 
취임 초 안팎의 기대가 컸다. 외신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그에 대해 “신라 진성여왕 이래 천 년이 넘어 탄생한 첫 한국 여성 통치자”(워싱턴포스트)라고 평했다. 최초의 이공계 출신(서강대 전자공학과)에 거는 기대도 남달랐다.
 
봄날은 짧았다. 임기 초반부터 국정원의 댓글조작 사건이 불거졌고, 이를 수사하던 채동욱 당시 검찰 총장의 혼외자 문제를 둘러싸고 ‘찍어내기 논란’이 일었다.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역사적 트라우마가 됐고, 박근혜 정부의 무능·무책임을 상징하는 사건이 됐다. 메르스 사태와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등 시민의 목숨과 직결된 사건·사고도 잇따라 터졌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 둥 이념논쟁이 더해지면서 민심은 싸늘히 식어갔다. 외교·안보 이슈도 편한 날이 없었다. 북한은 박근혜 정부 때 4ㆍ5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개성공단도 폐쇄됐다. 그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겠다며 내건 '창조경제'는 논란에 휩싸였다.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문화계 안팎의 적도 늘었다.
 
결정적 몰락은 최순실로부터 시작됐다. 그간 소문으로만 돌던 ‘비선 실세 최순실’의 존재와 전횡이 2016년 10월24일 JTBC의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로 폭로됐다. 그 이후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부터 대기업의 부당 지원, 대통령의 연설문과 정부 정책에 관여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 [뉴스1]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 [뉴스1]

 
시민들은 한겨울,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이게 나라냐"고 외쳤다. 여론에 등 떠밀린 국회의 탄핵안 의결이 있었고,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주문에 시민들은 환호했다. 헌정사 최초의 여성대통령이자 과반 득표 대통령, 부녀 대통령이었던 그는 헌정사 최초로 탄핵당한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안았다. 1심 판결로 지금 66세인 박 전 대통령은 인생 후반부의 상당 기간을 감옥에서 보낼 가능성이 커졌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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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