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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거리에 장애인이 적은 까닭은?

기자
손민원 사진 손민원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 이야기(6)
발달장애인 이상걸(23·가명) 씨는 대학에서 특수교육학을 전공하고 있다. 졸업 후 특수학교에서 장애인 친구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멋진 꿈을 갖고 있다.
 
상걸 씨는 걸을 수 있지만 뒤뚱거리고 잘 넘어진다. 손가락도 많이 굳어 있어 밥을 먹거나 옷을 입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부모님이 평생 상걸 씨의 손과 발이 돼 줘 마음 편히 여행 한번 다녀오지 못한 것이 상걸 씨는 마음에 걸린다.
 
 
부모님 없이 처음으로 혼자 외출을 결심하게 된 발달자애인 이상걸(23·가명) 씨. 현관문 앞에서 떨어진 열쇠를 주으려다 지나가던 윗집 아주머니에 의해 강제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중앙포토]

부모님 없이 처음으로 혼자 외출을 결심하게 된 발달자애인 이상걸(23·가명) 씨. 현관문 앞에서 떨어진 열쇠를 주으려다 지나가던 윗집 아주머니에 의해 강제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중앙포토]

 
그런데 작은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부모님이 장례식에 가는 바람에 난생 처음 혼자 식사도 해결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됐다. 두렵지만 혼자 외출해 보겠다는 결심을 실천해 보기로 했다. 몇 시간에 걸쳐 옷을 갖춰 입고 머리도 손질하고 신발까지 신었다.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외출 준비를 마친 상걸 씨는 드디어 혼자서 문밖까지 나오는 데 성공했다.
 
2층에 사는 상걸 씨에게 남은 숙제는 현관문을 잠그고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다. 현관문을 잠그기 위해 열쇠 구멍 사이에 열쇠를 밀어 넣으려는 순간 상걸 씨의 손에서 그만 열쇠가 또르르 계단으로 떨어져 버렸다. 때마침 윗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시장바구니를 들고 현관문을 나서 계단을 내려온다. “어! 상걸이 밖에 나왔네. 아직 추운데 왜 나왔어?”
 
아주머니는 땅에 떨어져 있는 열쇠를 주웠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어젖히더니 상걸 씨를 현관 안으로 밀어 넣는다. “열쇠 여기 올려놓고 갈게. 잘 있어!”라는 말을 남기고 가던 방향으로 유유히 내려간다. 순식간에 벌어지는 이 상황에 상걸 씨는 너무 놀라 아무 말을 못 한다.
 
지난해 만난 장애인 친구가 들려준 ‘내가 경험한 차별’에 대한 이야기의 일부다.
 
 
'비정상' 아닌 '권리의 주체' 
많은 장애인은 대부분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여겨 지하철에서 껌이나 사탕을 줄 때 가장 기분이 상한다고…. 위층에 사는 아주머니는 장애인을 만났을 때 무엇이 필요한지 묻지 않고 뭔가 챙겨주어야 할 존재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직 많은 사람이 장애인을 ‘권리 주체인 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감정이나 욕구 따위는 없는 그냥 ‘비정상 사람’으로 바라본다.
 
장애인이 있는 가족은 자녀의 장애를 드러내 보이길 꺼리고 집 안에 은폐하려는 경향도 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아주머니의 태도에서 보듯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시혜나 동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인식의 장벽, 편견의 장벽이 한없이 높다. 그래서 외국인의 눈으로 본 한국의 거리에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장애인이 많지 않다고 한다.
 
상걸 씨는 부모님의 희생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가정이나 시설에 고립돼 있을 것이다. 이 고립은 개인적인 외로움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상걸 씨는 사람들과 사회적 교류나 감정의 교류가 차단될 것이고, 교육으로부터도 차단됐을 것이며, 직업을 갖는 것에서도 차단된다. 
 
그렇게 되면 상걸 씨의 삶의 질은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상걸 씨가 사회에 나가 교사가 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을 요구하기 이전에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수많은 차단의 벽을 허무는 변화가 필요함을 알 수 있다.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스키 남자 7.5km 좌식 경기에서 한국 신의현이 금메달이 확정되자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스키 남자 7.5km 좌식 경기에서 한국 신의현이 금메달이 확정되자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지난달 18일 강원도 평창에서 겨울 패럴림픽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우리는 언론에서 자주 장애인이 무엇인가를 해냈을 때 ‘인간 승리’란 수식어를 쓰면서 영웅화하는 것을 보게 된다. ‘장애는 축복… U대회에 도전하는 인간 승리의 주인공’ ‘장애를 딛고 총을 겨누다 인간 승리 OOO 선수’ ‘인간 승리 감동과 희망의 열전’ ‘장애를 뛰어넘는 인간 승리… 감동의 개막식’이란 제목의 글과 영상을 접한다.
 
이번 겨울 패럴림픽에서 크로스컨트리 스키 남자 좌식 7.5km에서 신의현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성과를 얻었다. 그런데 신의현 선수의 금메달 또한 ‘배트맨’에 비교하면서 영웅화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영웅 신화는 '인간 승리'를 만들어내지 못한 남은 99%의 장애인에겐 장벽이 될 수 있다. 많은 장애인을 만나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우리 또한 똑같은 사람’으로 봐달라는 것이다. 겨울 패럴림픽 관계자는 장애인 선수를 올림픽 선수보다 장한 선수로 보지 말고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의 경기에 집중해 달라는 주문을 했다.
 
한 달 전 충남 부여에서 ‘장애 이해교육’이란 제목으로 마을 어르신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 교육을 마련한 계기는 비장애인의 상당수가 장애인 편의시설 지원에 대해 재정적 낭비고 비효율적이며 세금 낭비라고 생각하는 주민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 늙으면 장애인이 되는 거여"
이틀 동안 마을 이곳저곳을 다니며 주민을 만나 장애인이 현실에서 겪고 있는 차별과 편견으로 인해 무척 힘들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의 강연을 했다.
 
일단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를 했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연로하시자 갖게 된 질병과 장애, 그리고 엄마가 치매로 고생하신 이야기, 열심히 며느리 김치 담가주시던 시어머니 이야기. 나이가 들어감과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에 마을 주민들은 마음을 열어 주었다.
 
“다 늙으면 장애인이 되는 거여. 안 그려?” “맞어! 어제 저녁에도 허리가 하도 아파서 자다가 일어나 찜질하고 간신히 잠들었다니께. 오늘은 병원에 가서 침이라두 맞아야 되는디….”
 
“다 맞는 얘기만 하시네. 옛날보다 살기 좋아졌다 생각했는디 우리가 또 해야 할 게 참 많네유. 우리 노인들도 장애인인디 장애인도, 노인도 모두 잘 사는 세상이 빨리 돼야것어유.”
 
어르신들은 나도 장애인이 돼 가고 있다는 것,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잘사는 사회가 되기 위해 우리가 가진 편견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공감해 주셨다. ‘인권 감수성’의 시각이 열린 것이다.
 
 
지난 5일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2차 토론회에서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하며 무릎 꿇은 장애학생 부모들 모습(右). [연합뉴스TV 캡처]

지난 5일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2차 토론회에서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하며 무릎 꿇은 장애학생 부모들 모습(右). [연합뉴스TV 캡처]

 
 
지난해 ‘특수학교에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무릎 꿇고 큰절 올린 장애인 학부모’의 사진을 보며 장애는 시혜가 아닌데, 무릎을 꿇고 구걸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이 공감돼 참 아프게 느껴졌다. 지역 발전의 논리, 집값 하락, 장애인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이유의 근거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그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도 차별을 받지 않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세계인권선언문 1조와 2조에 명시된 내용이다.
 
우리가 살아왔던 과거를 돌아보면 ‘모든 사람’ 안에 진짜 모든 사람이 포함된 적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홍길동이 살았던 시절에 홍길동은 서자라서 ‘모든 사람’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로사 파크스는 흑인이라서 돈을 내고 버스를 타고도 내가 원하는 좌석에 앉지 못했다. 내가 100년 전에 태어났다면 난 여성이라서 투표에 참여할 자격조차 부여받지 못했을 것이다.
 
장애를 지닌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다. 교육을 통해 상걸 씨처럼 교육받고 소중한 꿈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받을 권리는 모든 사람이 누릴 당연한 권리인데 지역사회의 이기심으로 장애인이라서 ‘모든 사람’에서 배제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겨울 패럴림픽에 참가한 국가대표 선수 36명 중 선천적 장애는 불과 5명이다. 모두 평범하게 살다가 장애를 맞게 됐다. 전체 장애인의 89%는 후천적 장애인이란 통계도 있다.
 
 
장애인도 주민과 더불어 사는 '인권 감수성'  
우리는 언제고 장애인이 될 수 있고, 내 가족 또한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중앙포토]

우리는 언제고 장애인이 될 수 있고, 내 가족 또한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중앙포토]

 
기운 펄펄하던 부모님도 나이가 듦에 따라 누군가의 도움 없이 뭔가를 할 수 없는 장애인이 됐다. 나도 늙어 간다. 우리는 언제고 장애인이 될 수 있고, 내 가족 또한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모든 사람의 인권이 지켜지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각자 머릿속에 가진 배제의 범위를 줄이는 것이 아닐까? 내가 만났던 부여의 지역 주민은 배제의 범위를 줄였다. 특수학교를 설립하는 지역의 주민도 함께 더불어 사는 감수성의 눈이 밝아지기를 기대한다.
 
장애인을 위한 교육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값’이다.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어서 얻어내는 '시혜 옵션’이 아니다. 내년 9월 개교 목표인 서진학교(특수학교)에서 가을 운동회가 떠들썩하게 열리길 기대해 본다.
 
손민원 성·인권 강사 qlover@naver.com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news.joins.com/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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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