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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안 올 때 수면제 대용으로 쓰이는 와인 '바롤로 키나토'

기자
조인호 사진 조인호
[더,오래] 조인호의 알면 약 모르면 술(4)
약효를 지닌 술을 뜻하는 '약주'. [중앙포토]

약효를 지닌 술을 뜻하는 '약주'. [중앙포토]

 
약주라는 말이 있다. 요새는 귀한 술이나 윗사람이 마시는 술의 의미로 불리고 있지만, 원래는 약효를 지닌 술을 뜻한다. 약재를 넣고 빚은 술이란 얘기다. 물에 씻기는 얼룩과 기름에 녹는 얼룩이 있어 물세탁과 드라이클리닝으로 세탁법을 구분하듯 한약재의 유효 성분 중엔 무기 용매인 물에 잘 녹는 것이 있는 반면 유기용매인 알코올에 의해 추출이 더 쉬운 것들이 있다. 
 
이중 후자는 예전부터 술로 담가 먹으며 약효를 기대했다. 물론 이는 과학적 고찰이 아닌 순전히 경험을 통해 얻은 것들이었을 터다. 조선 시대 양반이 빠른 약효를 얻기 위해 한약을 복용하면서 술을 조금씩 같이 먹었던 경우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우리의 약주처럼 술을 통해 약효를 증진하거나 술을 약 자체로 사용한 것은 서양도 마찬가지다. 동서를 막론하고 술의 역사가 곧 약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집트인은 약성을 갖는 여러 허브를 술에 넣어 약으로 썼으며 페르시아인은 대마와 양귀비 씨앗을 술에 타 진정제나 진통제 등으로 사용했다. 와인을 그 누구 보다 사랑했던 로마인은 소나무와 옻나무의 수지, 몰약, 꿀, 장미, 계피, 바이올렛 등 거의 모든 약용 식물들을 와인과 함께 끓여 마셨다.
 
 
약사가 만든 약용 와인 '바를로 키나토'
약으로서 기능한 와인의 잔재가 현재에까지 남아있는 것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롤로 키나토 (Barolo Chinato)'다.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혼합주로 19세기 말 약사인 주세페 카펠라노 (Giuseppe Cappellano)가 처음 제조한 처방에서 유래한 술이다. 당시만 해도 약용 허브나 향신료들이 질병의 치료제로 광범위하게 쓰이던 시기였기에 약사가 만든 약용 와인인 셈이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존 펨버튼(John Pemberton)이란 약사가 코카콜라라는 물약을 만든 것이나, 1863년 프랑스 와인에 코카잎을 넣고 코카인을 추출한 혼합주 ‘뱅 마리아니(Vin Mariani)’가 세계적인 히트를 한 것도 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다.
 
 
보르도 와인에 코카잎을 넣어 만든 혼합주 뱅 마리아니는 다양한 치료 효과로 반짝 성공을 거두었고 교황 레오 13세에게 메달까지 수여 받게 된다. [사진 http://www.corespirit.com/7-strange-curious-facts-wine-history/]

보르도 와인에 코카잎을 넣어 만든 혼합주 뱅 마리아니는 다양한 치료 효과로 반짝 성공을 거두었고 교황 레오 13세에게 메달까지 수여 받게 된다. [사진 http://www.corespirit.com/7-strange-curious-facts-wine-history/]

 
바롤로 키나토의 제조법은 이렇다. 먼저 증류주에 키나 나무껍질과 용담, 대황 뿌리, 계피, 고수, 정향, 민트를 비롯한 30여 가지의 약용 식물을 넣어 약성을 지닌 성분들을 추출한다. 여기에 와인과 설탕을 섞고 숙성을 거쳐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바롤로 키나토는 간단한 소화제로 쓰였고 감기의 예방과 긴장 완화, 두통 등 가벼운 질병에도 사용됐다. 근래에 와서는 식사를 마친 후 마시는 디저트 주나 다크 초콜릿 등과 함께 입가심으로 내어지는 술로도 쓰인다.
 
 
Giuseppe Cappellano 의 바롤로 키나토. 말린 과일과 허브, 감초, 담배 등의 다양한 향이 나며 단맛과 함께 키니네에서 오는 약간의 쓴맛이 타액과 위산의 분비를 도와 소화 촉진제의 효과가 있다. 식전이나 식후에 가볍게 마시기 좋은 이유다. [사진 조인호]

Giuseppe Cappellano 의 바롤로 키나토. 말린 과일과 허브, 감초, 담배 등의 다양한 향이 나며 단맛과 함께 키니네에서 오는 약간의 쓴맛이 타액과 위산의 분비를 도와 소화 촉진제의 효과가 있다. 식전이나 식후에 가볍게 마시기 좋은 이유다. [사진 조인호]

 
바롤로 키나토란 이름이 붙은 것은 이를 만들 때 여러 식물과 섞는 베이스 와인이 바롤로 (Barolo) 와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펠라노는 수많은 와인 중 왜 하필 바롤로 와인을 선택했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네비올로(Nebbiolo) 품종 100%로 만드는 바롤로는 와인의 왕이라 불릴 만큼 피에몬테 지역 최고급 와인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한참이 지난 먼 훗날 카펠라노의 선택에 ‘과연~’ 이라는 수긍이 절로 나게 할 만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된다.
 
 
멜라토닌이 가장 많은 '바를로' 와인  
2006년 밀라노 대학의 아이리티 마르첼로 (Iriti Marcello) 연구팀은 레드 와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에서 우리 몸의 수면을 돕는 성분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주인공은 멜라토닌 (Melatonin)이다. 척추동물의 뇌에 있는 송과선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은 수면과 관련한 생체 리듬을 조절하는 호르몬으로 '천연 수면제'로 알려진 물질이다. 
 
우리 몸은 멜라토닌을 만들어 내기 위해 아미노산 중 하나인 트립토판을 필요로 한다. 트립토판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기에 우유나 견과류 등의 단백질 식품을 통해서만 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당시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일부 식물과 버섯 등에 멜라토닌이 함유되어 있다는 여러 연구 결과가 발표되자 마르첼로 박사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와인을 만드는 포도를 가지고 멜라토닌 추출 실험을 하게 된 것이다. 
 
이후 발표된 자료들에 의하면 포도에 함유된 멜라토닌은 와인으로의 발효과정을 거치면서 인체에서 생성하는 멜라토닌과 더욱 비슷한 구조로 변형이 된다고 한다. 포도 주스나 포도 자체보다는 와인을 마심으로써 멜라토닌이 갖는 생리적 효과를 더욱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 조사에서 멜라토닌의 함량이 가장 높았던 포도 품종은 바로 네비올로 (0.965 ng/ 포도 껍질 1g중)와 크로아티나 Croatina (0.87 ng)이었다.
 
자 그렇다면 이제 멜라토닌이 많이 함유된 네비올로로 만드는 바롤로 와인과 여기에 각종 약재를 섞어 만드는 술, 바롤로 키나토의 약효가 더욱 궁금해지지 않는가? 하지만 제품으로 출시되는 멜라토닌 알약의 함량에는 많이 부족하기에 단지 멜라토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만 이들 와인을 마시기에는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멜라토닌은 미국 등지에서는 건강기능식품으로 분류가 되어 수면 보조제로 쉽게 복용이 가능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허가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구매가 불가하다. 대신 약물의 방출 속도를 조절한 서방정 형태의 멜라토닌 제품인 서카딘 서방정이 유일하게 허가를 받고 시판이 되고 있는데 전문의약품이므로 반드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 55세 이상의 불면증 환자에게 효과가 입증되었다. [사진 건일제약 홈페이지]

멜라토닌은 미국 등지에서는 건강기능식품으로 분류가 되어 수면 보조제로 쉽게 복용이 가능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허가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구매가 불가하다. 대신 약물의 방출 속도를 조절한 서방정 형태의 멜라토닌 제품인 서카딘 서방정이 유일하게 허가를 받고 시판이 되고 있는데 전문의약품이므로 반드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 55세 이상의 불면증 환자에게 효과가 입증되었다. [사진 건일제약 홈페이지]

 
대신 상상력과 응용력을 조금만 발휘하면 자기 전에 마시는 와인 한잔에서 많은 즐거움과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마시고 남아 냉장고에 넣어둔 김빠진 와인 한 잔을 준비하자. 거기에 물 반 잔과 레몬즙과 설탕을 조금 넣고 데워서 마셔보자. 우리가 ‘뱅쇼’라 부르는, 예전 로마인들의 약용 와인인 멀드 와인(Mulled Wine)의 간단 제조법이 이것이다. 
 
하루의 긴장과 피로를 풀어주는 진정 작용과 함께 편안한 수면을 이끄는 효과까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때의 와인이 바롤로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몰랐다면 모를까 이제 우리는 네비올로의 특별한 장점과 바롤로 키나토란 술의 유래와 효능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조인호 약사·와인 파워블로거 inho3412@naver.com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news.joins.com/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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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