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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흔든 ‘나는 야한 여자’ 노래 … 미투 운동도 흥행 한몫

뮤지컬 ‘레드북’ 공연 장면. 주인공 안나(맨 오른쪽)가 문학회 로렐라이 언덕 회원들과 어울리는 모습이다. 이곳에서 안나는 ’진정 나를 만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길을 찾아“ 글을 쓴다. [사진 바이브매니지먼트]

뮤지컬 ‘레드북’ 공연 장면. 주인공 안나(맨 오른쪽)가 문학회 로렐라이 언덕 회원들과 어울리는 모습이다. 이곳에서 안나는 ’진정 나를 만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길을 찾아“ 글을 쓴다. [사진 바이브매니지먼트]

연타석 홈런이다. 한정석(35) 작가와 이선영(35) 작곡가가 데뷔작 ‘여신님이 보고 계셔’에 이어 두 번째 작품 ‘레드북’까지 성공시켰다. 우리나라 창작뮤지컬 역사에 새 기록을 세운 이들을 4일 만났다. 두 사람은 2008년 ‘불과 얼음 뮤지컬 창작 아카데미’ 초급반에서 수강생으로 만나 꼬박 10년간 공동 작업을 이어온 친구 사이다. 2013년 초연한 ‘여신님이 …’는 올 1월까지 다섯 차례나 공연하며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자리 잡았고, ‘레드북’은 지난 2월 6일부터 3월 30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무대를 뜨겁게 달궜다. 티켓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에 1600여명 관객이 남긴 ‘레드북’의 평점 평균은 무려 9.7점이다.
 
‘레드북’은 주체적인 여성 작가, 안나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사회적 통념과 편견에 당당히 맞서는 이야기를 담았다. 묵직한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한국전쟁이 배경인 ‘여신님이 …’와 일맥상통한다.
 
“작품이 세상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는 데서 끝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려고 했다”는 작가의 소신은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2막 9번째 넘버)이라는 안나의 선언을 끌어냈다. 작곡가 이씨는 “상황보다 대사가 가벼우면 음악으로 누르고, 캐릭터의 정서보다 대사가 무거울 땐 음악으로 풀어주는 식으로 곡을 썼다”고 말했다.
 
한정석(左), 이선영(右)

한정석(左), 이선영(右)

‘레드북’의 흥행에는 한국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미투(#Me Too)’ 운동도 한몫했다. 극중 안나가 저명한 평론가 존슨에게 성희롱·성추행을 당하는 모습은 최근 미투에서 드러난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들과 놀랍도록 닮았다. 작가 한씨는 “처음 ‘레드북’ 스토리를 완성했을 때부터 포함됐던 내용이다. 주변 동료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면서 “관객들의 공포심이나 긴장감을 유발하거나 누군가의 상처를 복기하게 하지 않도록 ‘선’을 지켰다”고 설명했다. 안나가 존슨을 통쾌하게 응징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작품 속에서 통쾌한 순간은 이밖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씨는 “안나가 1막 마지막 넘버 ‘나는 야한 여자’를 부를 때 나도 속이 시원해진다. 여성 작가가 섹스에 대한 글을 쓴다고 비난받는 상황에서 ‘이게 나쁜 거라면 나는 야한 여자야’라고 고음으로 외치며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찾아가는 모습이 짜릿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작업하며 기업·정부의 지원 프로그램을 십분 활용했다. ‘여신님이 …’는 2011년 CJ크리에이티브 마인즈 뮤지컬 부문, 2012년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창작뮤지컬 육성사업에 선정돼 제작 지원을 받았다. ‘레드북’의 출발은 2015년 우란문화재단의 ‘시야 플랫폼: 작곡가와 작가’였다. 이씨는 “세 팀을 뽑아 아이템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구상 중인 작품에 대해 매주 멘토들이 조언해줬고, 필라테스 교육과 심리 상담까지 제공했다. 음원 만드는 비용도 지원받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완성한 대본과 음원으로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 창작산실 공모’에 도전했다. 이 공모에서 우수작으로 뽑히면서 상금(2500만원)뿐 아니라 30분 동안의 시범공연 기회까지 얻었다. 2016년 6월 시범공연에서 ‘레드북’은 ‘우수신작 공연’으로 선정됐고, 문예위로부터 제작비 2억 원을 지원받아 이듬해 1월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16회의 트라이아웃 공연을 하게 됐다. ‘레드북’의 숨 가쁜 성공담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당시 개막 사흘째 공연을 네이버 TV캐스트를 통해 전막 생중계하면서 ‘레드북’은 일약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한씨는 “공연을 알리고 싶었다. 작품이 소리 없이 묻히면 안 된다고 생각해 인터넷 생중계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전략은 적중했다. 실황 중계를 1만3000여 명이 관람하면서 ‘레드북’이 실시간 검색어 7위까지 올랐고, 중계 이후 공연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7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로 선정돼 올해 공연 제작비(1억5000만원)까지 지원받았다. 두 사람은 “공모전들이 목표가 돼 창작의 원동력이 됐던 것 같다. 관객을 만나기 전에 검증과정을 거칠 수 있었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공동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우선 ‘레드북’의 다음 시즌 공연 때 어떤 부분을 보완할지 고민 중이다. 두 사람은 “2막 후반 무대 장치 교체 과정에서 암전이 잦아 진행이 느렸다”면서 “이를 해결할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작품 구상 단계부터 함께 작업한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전화와 카톡으로 의견을 주고받는다. 자신을 “긍정·낙관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평한 한씨는 “내가 ‘이렇게 하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냐’고 물어보면, 선영씨는 ‘과연?’ 그럴 때가 많다. 내게는 선영씨가 하나의 기준이 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차기작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이들은 “현재 자료조사 중”이라며 “내후년쯤”이라고 귀띔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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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