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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안점순 할머니 추모로 열린 수요집회… “계속 위드유 하겠습니다”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329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모습. [뉴스1]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329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모습. [뉴스1]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미투’의 시작이셨습니다. 저희가 계속 ‘위드유’ 하겠습니다.”
 
4일 정오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주최한 1329차 정기 수요시위가 열렸다. 이날은 지난달 30일 숨을 거둔 위안부 피해자 고(故) 안점순 할머니 추모 집회로 열렸다.
 
안 할머니는 1928년 서울 마포에서 태어나 열네 살이던 1941년 중국으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가 됐다. 할머니는 1993년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했고,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며 피해 증언에 앞장섰다.
 
이날 수요집회 무대 옆에는 안 할머니 영정 사진과 함께 꽃다발이 놓였다. 중고생 등 약 300명이 참석해 고인의 생전 활동을 기리며 묵념하면서 집회를 시작했다.
 
한국염 정대협 공동대표는 “안점순 할머니처럼 일본은 ‘아동’을 끌고 가서 성노예로 만들었다”며 “할머니들은 해방 후 고향에 돌아와서도 정절을 잃었다며 수십 년간 배척당하고 차별당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안점순 할머니는 생전에 ‘무엇을 가장 원하시냐’고 묻자 ‘다시 여자로 태어나서 여자로 살고 싶어요’라고 말씀하셨다”며 “즉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던 삶은 여자로서의 삶이 아니었던 것”이라며 고인을 회고했다.
 
한 대표는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를 시작으로 할머니들이 ‘내가 위안부였다’며 미투 운동을 시작했고, 시민들이 ‘위드유’ 하면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위안부 피해 폭로는 이제 전시 여성폭력 반대와 세계 평화를 위한 운동으로 확장됐다”고 짚었다.
 
이어 “우리가 수요집회에서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고 평화를 외치는 것도 위안부 피해자만을 위한 게 아니라, 모든 여성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이제 할머니가 단 스물아홉 분 살아 계시지만, 모두 돌아가신 후에도 우리가 증언을 계속하며 위드유를 외치자”고 당부했다.
 
이날 수요집회에는 지난해 4월 4일 별세해 이날 1주기를 맞은 위안부 피해자 고 이순덕 할머니의 딸도 참석했다.  
 
정대협은 “위안부 피해자의 유족이 수요집회에 참석해 발언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 1심에서 승소를 이끌었던 일본 ‘관부재판’의 마지막 원고였다. 고인은 1992년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다른 위안부 피해자 9명과 법정 투쟁을 시작해, 1998년 광복 이후 처음으로 30만엔의 배상금 지급 판결을 끌어냈다.
 
이 할머니의 딸은 “엄마가 생전에 ‘다른 할머니들이 일본어를 못해서 통역하러 간다’고만 말해서 그렇게 고생하고 다닌 줄은 미처 몰랐다가 뒤늦게 알았다”며 “이렇게 계속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눈물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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