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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우리’ 라고 얘기하고 싶었죠...3무 영화 '덕구'

영화 '덕구' 한 장면. 아들이 죽고 이주여성인 며느리가 집을 나간 뒤 홀로 손주들을 키우는 할아버지(이순재 분)의 여정을 담담히 뒤[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영화 '덕구' 한 장면. 아들이 죽고 이주여성인 며느리가 집을 나간 뒤 홀로 손주들을 키우는 할아버지(이순재 분)의 여정을 담담히 뒤[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악당도, 반전도 없다. 5일 개봉하는 영화 ‘덕구’는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착한 영화다. 시골에서 혼자 어린 두 손주를 돌보며 살아가던 일흔 살 할아버지(이순재 분)가 시한부 암 선고를 받고 펼쳐지는 여정을 담담하게 뒤쫓는다.  

이순재 주연, 신인 방수인 감독
악당, 반전, 자극적인 소재 없이
취재 바탕해 마음 울리는 영화
다문화 가정, 아이, 노인에 촛점

아들은 죽고, 인도네시아에서 시집왔던 며느리(체리쉬 마닝앗 분)는 집 나가 소식이 끊긴 지 1년째란 설정. 여기엔 감춰진 사연이 있다. 그러나 이주민을 그린 영화·드라마에서 흔히 봐온 불법 브로커, 인종차별 문제 등 울리려 작정한 자극적인 소재는 일절 배제했다. 그런데도 눈물이 난다. 각본과 연출을 겸한 신인 방수인(37) 감독이 8년간 전국을 떠돌며 취재한 실제 가정들의 사례가 바탕이 됐다. 주연을 맡은 여든셋 노익장 배우 이순재가 초짜 감독의 순제작비 5억원 저예산 데뷔작에 출연료 없이 나선 것도 “참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시나리오” 때문이었다.  
'덕구'로 장편 데뷔한 방수인(37) 감독. 3월 29일 삼청동 1/2 ROUND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덕구'로 장편 데뷔한 방수인(37) 감독. 3월 29일 삼청동 1/2 ROUND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달 29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방 감독은 자신의 영화처럼 서글서글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그가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2005) 연출부를 마친 뒤 시나리오 초고를 쓴 게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상업영화를 하려면 노인·아이·동물·외국인은 피해가라는 얘기가 있어요. ‘덕구’ 시나리오를 본 선배들이 ‘희한하게 다 모아 썼구나’ 그러셨죠.”  
그는 ‘이야기는 좋은데 상업성이 없다’는 반응 속에 ‘덕구’를 놓지 않은 이유가 “미안함이었다”고 했다. “요즘은 뉴스 보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아이가 죽어가는 데도 동네에선 몰랐다고 하잖아요. 너무 무섭더라고요. 어린아이나 외국인, 노인들, 그런 약자를 보호하는 게 어른의 당연한 의무인데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미안함을 떨칠 수 없었어요. 가족애도 마찬가지예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있고 내가 그분들을 닮아가는 모습이 당연한데 당연시되지 못한 세상에서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논두렁에서 할아버지를 위해 웅변하는 덕구(정지훈 분) 모습. 일 나간 할아버지 대신 덕구가 여동생 유치원 체험학습에 동행하는 장면은 대견하고도, 짠하다.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논두렁에서 할아버지를 위해 웅변하는 덕구(정지훈 분) 모습. 일 나간 할아버지 대신 덕구가 여동생 유치원 체험학습에 동행하는 장면은 대견하고도, 짠하다.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일곱 살 덕구(정지훈 분)는 ‘할배’ 잔소리에 툴툴대면서도 조상님 이름을 줄줄 외고, 두 살 어린 여동생 덕희(박지윤 분)를 의젓하게 보살핀다. 하나에 300원씩 쳐주는 고깃집 불판 설거지로 손주들 과잣값을 버는 ‘덕구할배’의 내리사랑은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저리다. 시시각각 닥쳐오는 시련을 덜어주는 건 동네 이웃들의 따뜻한 정이다.  
-어쩌면 나쁜 사람이 하나도 안 나오나.  
“사실 초반에 쓴 버전에는 있었다. 근데 덜어냈다. 실제 제가 취재한 사람 중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없었다. 인종차별 문제만 해도 이런 일이 있었다. TV 다큐멘터리를 보고 충청도까지 찾아가 만난 필리핀 친구한테 일곱 살짜리 혼혈아 딸이 있었다. 동네 꼬마가 그 애를 좋아하는 눈치여서 말을 걸다 보니 피부색 얘기가 나왔다. 그 꼬마아이가 우리 그림자를 가리키며 무슨 색이냐 묻기에 ‘까만색’이라 했더니, ‘사람들은 모두 다 까만색이에요’ 하더라. 철저히 보고 겪은 제 느낌으로 시나리오를 고쳐 나갔다.”
-아이들 어머니를 이주여성으로 설정한 이유는.  
“대학 때 학교 앞 중국집에서 일하는 동갑내기 필리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를 통해 안성 이주민 노동자들과 친하게 지냈다. 제 꿈이 영화감독이랬더니, 그 친구들은 한국에서 일하며 좋은 사람 만나 정착하는 게 꿈이라더라. 몇 년 흐르고 보니, 다문화 가정이 많아졌다. 우리나라처럼 유교가 뿌리 깊고 한민족을 중시하는 나라에서 친구들이 잘 지낼까 생각이 났다. 한국인 남편을 일찍 여읜 이주민 여성이 남편 생일날 홍동백서 다 무시하고 정성으로 차린 제사상도 기억에 남더라. 그 친구들과 2세 아이들에게 ‘너희는 다르지 않다. 너희는 우리이다’ 희망을 들려주고 싶었다. 특별함보단, 우리네 일상처럼 그려보고 싶었다.”
생전 아들과 며느리의 행복한 한때. 방 감독은 영화 배경을 일부러 경상도로 잡았다. 그는 "경상도는 남편들이 과묵해 이주여성 아내의 한국말 실력이 가장 더디게 느는 곳인데, 극중 덕구 엄마 바네사(체리쉬 마닝앗 분)는 한국말을 잘한다"면서 "그만큼 화기애애한 가족이었다는 의미"라고 했다.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생전 아들과 며느리의 행복한 한때. 방 감독은 영화 배경을 일부러 경상도로 잡았다. 그는 "경상도는 남편들이 과묵해 이주여성 아내의 한국말 실력이 가장 더디게 느는 곳인데, 극중 덕구 엄마 바네사(체리쉬 마닝앗 분)는 한국말을 잘한다"면서 "그만큼 화기애애한 가족이었다는 의미"라고 했다.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몰입감을 더하는 건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호흡이다. 방 감독은 “아역 배우들이 ‘네가 없으면 할아버지는 이 길을 쓸쓸히 혼자 걷겠지? 밥은 누구랑 드실까?’ 하며 자신보단 상대방 입장을 설명해줬을 때 더 좋은 연기가 나오더라”면서 “어른보다 더 배려심이 크다고 느꼈다”고 했다. 또 “이순재 선생님은 제가 쓰면서 상상한 대사나 표정 그 이상의 큰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셨다”면서 “특히 엔딩신은 편집하며 수십, 수백 번을 봐도 계속 눈물이 났다”고 했다.  
“‘덕구’ 만들면서 내리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선생님이 덕희를 안고 촬영하다 넘어져 다치셨을 땐 제가 무슨 짓을 했나 머리가 하얘졌죠. 괜찮다 하시는데 너무 죄송해서 많이 울었어요. 늘 따뜻한 이야기를 그리시며 ‘동주’(2016)로 5억원 예산 상업영화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이준익 감독님도 힘이 돼주셨죠.”
영화 '덕구' 한 장면. 이순재가 엄마와 헤어지고 우는 손주들을 안아주는 장면은 촬영중 진심에서 우러나온 애드리브였다고.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영화 '덕구' 한 장면. 이순재가 엄마와 헤어지고 우는 손주들을 안아주는 장면은 촬영중 진심에서 우러나온 애드리브였다고.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그는 무엇보다 영화에 뿌리가 돼준 존재가 돌아가신 외조부모라고 돌이켰다. “어릴 적 삶과 죽음을 처음 알려주신 분들이에요. 결혼이 늦어 연세가 많으셨어요. 외할아버지 한의원 병풍 뒤에서 곧잘 놀았는데, 치료를 받으러 온 손님들이 외할머니 한복집에서 수의를 지어가곤 했어요. 사람은 왜 죽음을 생각하면서 삶을 연장하려 할까. 어쩌면 ‘덕구’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외할머니가 실제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영화에 생전 에피소드를 반영한 것도 있어요. 엄마가 영화 보면 많이 우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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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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