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무조건 주 52시간, 연구개발직까지 ‘공장 마인드’ 규제

정부발 고용시장 교란 <하>
제2차 노사정대표자회의가 3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의에서 열렸다. 정부·노동계·경영계 대표자들이 회의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연합뉴스]

제2차 노사정대표자회의가 3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의에서 열렸다. 정부·노동계·경영계 대표자들이 회의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연합뉴스]

대기업 A사의 인사·기획 부서는 오는 7월 근로시간 단축(주당 최대 52시간)에 대비해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생산직은 큰 문제가 없다. 기계가 멈추면 물품 생산도 중단되니 근로시간이 곧 생산량이다. 문제는 연구개발과 사무직이다. 이 업체 임원은 “외국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수시로 제품을 업그레이드하고 새 제품을 내놔야 한다. 이 때문에 밤새워 일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렇게 일하면 처벌하니 걱정”이라고 말했다.

획일적 근로시간 단축의 구멍
생산직은 기계 서면 일 끝나지만
연구직, 제품 개발 땐 야근 불가피
선진국선 총량만 묶고 유연 근무
노사의 근로시간 자율 결정권 봉쇄
전문가 “경직된 법 체계 바꿔야”

 
연구개발직이나 사무직의 근로시간을 제대로 체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컴퓨터를 켜고 끄는 시간, 출입문을 드나든 시간, 사내 헬스장이나 사우나를 이용한 시간 등을 다 따지고 들면 사기만 떨어뜨릴 수 있다. 인사 담당자는 “근로기준법을 엄격히 지키면 사내 분위기를 해칠 게 뻔하다”며 “법이 가로막고 서서 ‘어련히 알아서 하는’ 걸 막으니 막막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피해도 만만찮다.
 
울산의 2차전지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강성희(36·가명)씨는 80만원 넘게 보수가 줄 것으로 계산되자 걱정이다. 그가 한 달에 받는 돈은 450만원 정도다. 이 중 잔업과 특근수당이 150만원이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초과근로는 12시간으로 제한된다. 강씨는 “일을 하고 싶어도 못 하게 하니 답답하다”며 “주택담보대출 상환, 두 아이 교육비를 감안하면 몇십만원만 줄어도 타격”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데는 경영계도 이견이 없다. 문제는 시행 방법이다.
 
대·중소기업의 두 사례에서 기업과 근로자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든 건 노사의 자유의지를 원천 봉쇄했다는 점이다. 노사가 합의해도 주당 52시간을 넘겨 일하면 형사 처벌한다.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형량도 만만찮다. 기업의 자율권이나 근로자의 자기결정권이 행사될 여지가 없다. 노사 자율을 부정한 꼴이다.
 
더욱이 근로시간이 강제되면서 재량근무나 탄력근로 같은 유연한 근무체계를 운영하기도 쉽지 않다. 유연한 근무 형태는 노사 자율이란 대전제가 깔려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B사 임원은 “유연 근무를 위한 시행 기준과 방법이라도 정부가 내놔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항변을 정부가 모르는 것도 아니다. 2015년 고용노동부는 고소득 사무직이나 연구개발직에는 초과근로수당을 면제하는 제도 도입까지 검토했다. 고용시장이 공장 안에서 일하는 체계에서 벗어나 다양해졌고, 임금 기준도 ‘시간’이 아니라 ‘과제수행능력과 성과’에 근거한다는 점을 고려한 정책안이었다. 한데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유연한 근로 자체를 어렵게 하는 방향으로 역주행했다.
 
중견기업 C사의 인사 담당자는 “아직도 출입문 통과시간을 가지고 근로시간을 따지는 근로감독관이 부지기수”라며 “정부조차 다양한 업무 형태를 인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근로시간을 관리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과 가정의 균형, 즉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독일 금속노조(IG Metal)가 최근 노사 합의로 근로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자기결정권은 근로시간 총량 내에서 근로자 스스로 사정에 따라 유연하게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제도다. 가족 간병을 위해 2주 동안은 하루 4시간씩 근무하고, 나머지 2주는 12시간씩 일하는 식이다.
 
개정된 한국의 근로기준법으로는 이런 방식을 채택할 수 없다. 한국의 탄력적 근로시간은 2주 단위로 시행된다. 독일의 예처럼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2주 분은 처벌 대상이다. 물론 노사가 합의하면 탄력 근로시간 단위를 3개월로 늘릴 수 있지만 이조차 짧다. 선진국의 탄력 근로시간 단위는 길다. 독일은 6개월 또는 12개월(노사 합의), 프랑스는 4주 또는 1년(노사 합의), 영국은 17주, 덴마크는 4개월 단위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경직된 법체계를 깨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통계상 근로시간이 줄고, 고용률이 오를지도 의문이다. 근로시간이 짧은 나라의 고용률은 대체로 높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나눠서가 아니라 파트타이머가 많아서다. 대체로 청년과 여성, 고령층이 파트타임 일자리에 흡수되고 있다. 한데 현 정부는 파트타임을 ‘나쁜 일자리’로 간주한다. 8시간 풀타임 정규직 고용시장을 지향한다. 또 한국은 자영업자의 근로시간 통계가 없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는 자영업자의 근로시간이 포함된다. 최저임금이 확 오른 뒤 자영업자의 근로시간은 크게 늘었다. 자영업자의 근로시간을 줄이지 않으면 국제 비교에선 장시간 노동국가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