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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신라 절터에서 나온 금동반가사유상

강원도 흥녕선원지에서 나온 금동반가사유상. [사진 문화재청]

강원도 흥녕선원지에서 나온 금동반가사유상. [사진 문화재청]

강원도 영월에 있는 절터에서 금동반가사유상이 나왔다.
 

높이 15㎝, 폭 5㎝의 작은 불상
발굴지에서 출토한 첫사례 주목
휴대용 가능성, 7세기 초 양식

강원문화재연구소(소장 오제환)는 영월 흥녕선원지(강원도 기념물 제6호)에서 높이 15㎝, 폭 5㎝ 크기의 금동반가사유상을 발견했다고 3일 발표했다.
 
현재 국내에는 반가사유상이 40여 점 전해오지만 이번처럼 발굴 현장에서 나온 것은 처음이다. 지금까지 경남 양산 유산동, 경북 경주 성건동 등지에서 우연히 발견된 적은 있으나, 발굴 현장에서 완형의 금동반가사유상이 출토된 것은 최초다.  
 
흥녕선원지에서 출토된 금동반가사유상. [사진 문화재청]

흥녕선원지에서 출토된 금동반가사유상. [사진 문화재청]

금동반가사유상은 청동 표면에 금을 입힌 반가사유상을 말한다. 반가사유상은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겨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불상이다. 인도 간다라 지방에서 시작됐으며, 고대 한국·일본 등에서 유행했다.
 
삼국시대 불상 중 걸작으로 평가되는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은 1920년대 경북 경주에서 발견됐다고 전하나 출토지를 알 수 없었다.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 역시 출토지가 명확하지 않다.
 
이번 금동반가사유상 역시 일반적인 반가부좌 형태다. 얼굴은 원형에 가깝고 잔잔한 미소를 띄고 있다. 상의는 걸치지 않았고, 머리에는 삼면이 돌출된 삼신관을 쓰고 있다.
 
불상 전문가인 곽동석 동양대 교수는 “크기는 작은 편이지만 국보 제83호와 유사하다”며 “양식상 7세기 초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작품성도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곽 교수는 “반가사유상의 자세는 비례가 잘 맞기 쉽지 않다. 이번 불상은 형태적으로 자연스럽고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월 지역이 삼국시대에 불교문화가 발달한 지역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발굴을 계기로 영월 일대를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흥녕선원은 신라 고승 자장율사(590∼658)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통일신라 징효대사(826~900)가 크게 번성시켰다. 징효대사 탑비(보물 제 612호)와 부도(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모신 탑) 등은 현재 영월 법흥사 경내에 남아 있다.
 
정원철 강원문화재연구소 조사원은 “흥녕선원은 9∼10세기 유적으로 10~12세기에 번창했다”며 “앞으로 출토지와 연계해 반가사유상을 연구할 중요한 자료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이번 금동반가사유상은 크기가 작아 한 곳에 봉안하지 않고 들고 다닐 가능성도 있어 제작 시기를 추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곽동석 교수는 "제작 시기와 건물의 번성 시기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며 7세기에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강원문화재연구소 측은 “유물 상태가 좋은 편이다. 보존처리와 추가연구를 통해 주조기법과 도금방법 등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사실상 방치된 흥녕선원지의 규모와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시작됐다. 흥녕선원지에서는 앞서 2002~2004년 두 차례 시굴조사가 진행됐다. 건물지·석축 등에서 다양한 유구(遺構·건물의 자취)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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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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