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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수근을 기억하다 … 바람도 쉬어가는 ‘궁극공간’

설치작가 부지현은 몇 줄기의 빛과 연기, 그리고 집어등으로 밤바다와 같은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는 ’바쁜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사진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설치작가 부지현은 몇 줄기의 빛과 연기, 그리고 집어등으로 밤바다와 같은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는 ’바쁜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사진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건축가 김수근이 ‘궁극공간’(Ultimate Space)을 꿈꾸며 세운 옛 ‘공간’사옥이 설치작가 부지현(39)의 ‘궁극공간’을 품었다. 2014년 8월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재탄생한 그곳에서 열리는 개인전 ‘궁극공간’(Ultimate Space) 얘기다. 건축가 김수근의 공간을 경의 어린 시선으로 해석하고, 그만의 상상력으로 풀어낸 작가의 감성과 패기가 돋보이는 전시다.
 

설치작가 부지현 개인전
김수근의 옛 공간소극장 자리에
번잡한 도심 벗어난 어둠과 고요
빛과 연기, 집어등의 묘한 어울림
작가의 고향 제주 바다도 연상돼

‘궁극공간’은 김수근(1931~1986)이 추구한 건축 개념이었다. “인간 환경의 본질은 물리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내면적·정신적인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믿은 그는 “인간성을 유지하고 표현하기 위한 공간을 ‘궁극공간’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한 바 있다. 1976년의 일이다.
 
김수근의 주장을 풀면 이렇다. 인간에게는 주거를 위한 기본적인 공간(제1의 공간)과 경제활동을 위한 창고와 공장, 사무실(제2의 공간)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제3의 공간, 즉 궁극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궁극공간이란 “시간의 여유, 공간의 여유”를 말한다며 “이는 비생산적 공간이고, 사색을 위한 공간이며, 평정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원서동의 명물 ‘공간’ 사옥은 김수근이 구축한 궁극의 공간이기도 했다.
 
건축가 김수근의 대표작인 공간사옥. [중앙포토]

건축가 김수근의 대표작인 공간사옥. [중앙포토]

김수근의 비전은 후배 작가로 이어졌다. 김수근의 그 ‘공간’에 부지현 작가가 또 다른 ‘궁극공간’을 만든 것이다. 작품이 설치된 곳은 과거에 공연이 열리던 ‘공간 소극장’ 자리다.
 
‘궁극공간’은 무엇보다 관람객에게 극적인 변화를 체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도심 한복판의 눈부신 햇살과 소음을 뒤로 하고 전시장에 들어서면 느닷없어 보이는 어둠과 고요함이 관람객을 맞는다. 숨을 고르고 주위를 둘러보면, 붉은 빛과 연기, 그리고 그 공간 가운데 부유하는 듯한 몇 개의 집어등(集魚燈·바다에서 물고기를 유인하기 위해 쓰는 등불)이 보인다.
 
눈앞에 일렁이는 것은 물결인가, 구름인가. 팔을 뻗어 휘저으면 물결 같은 연기와 빛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간다. 몸을 움직여 걷는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빛의 물결이 고요하게 일렁인다. 전시장에서 만난 부지현 작가는 “관람객들이 복잡한 삶에서 벗어나 개인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 잠시나마 정신적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부지현

부지현

부 작가가 빚어낸 궁극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빛과 연기와 집어등의 섬세한 움직임이다. 눈에 띌 듯 말 듯 한 이 움직임은 총 20분의 프로그램으로 치밀하게 준비됐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김수근의 공간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제 작품이 설치된 곳은 전체 공간에 비하면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김수근 건축가는 왜 이 건물을 이렇게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죠. 그 질문에서 작품을 시작했습니다.”
 
부 작가는 1년 전 전시 제안을 받고 작품을 설치하기까지 틈만 나면 공간 건물을 찾았다. 대학원 시절 판화 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하기 위해 옛 공간 사옥에 들렀던 기억도 더듬었다.
 
그가 본 김수근의 공간은 “풍부한 공간감을 경험하게 하는 곳, 힘을 품고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건축가인 그가 이곳을 자신의 아틀리에이자 전시장과 공연장을 겸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한 점”이라고 말했다.
 
김수근의 공간 내부는 막힘 없이 연결돼 있다. 같은 공간이라도 보는 이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을 느끼는 것이 특징이다. 부 작가가 가장 신경 쓴 부분도 관람객의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이었다. “관람객이 누워서 또는 앉아서, 서 있거나 걸어다니며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만나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부 작가의 궁극공간은 바다를 연상시키는 서정성이 두드러진다.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는 제주에서 얻은 영감을 작품에 녹여왔다. 그가 만들어낸 ‘궁극공간’이 고요한 밤바다를 연상시키는 것도 그런 맥락에 있다. 제주대 미술학과를 졸업한 작가는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에서 미디어 프린트를 전공하고 2007년부터 집어등을 소재로 한 설치 작품으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주로 어선이 있는 풍경을 판화로 찍던 그는, 우연히 버려진 집어등을 만나면서 집어등에 배의 이미지를 판화로 새기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집어등을 대거 수집해 설치작품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일부러 설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제주에서 판화를 하다가, 집어등으로, 후에 바람과 수조·모래·소금·LED 등으로 작품 소재가 자연스럽게 넓어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제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립 큐레이터 이나연씨는 “부지현 작가의 작업은 이상화된 바다의 모습을 닮았다”며 “그의 작품엔 바다라는 자연과 어울리는 인공의 미를 극단으로 끌어올리는 시도가 엿보인다”고 평가했다. 전시는 5월 13일까지.
 
◆김수근
한국의 현대 건축가. 미술·문학·음악 등 다양한 예술인과 교류하며 사회와 소통하는 건축을 일궜다. 1966년 종합예술 월간지 ‘공간(空間)’을 창간했다. 71년 검은 벽돌로 지은 공간 사옥은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건출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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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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