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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학의 아버지' 차움, 10년 먼저 비트코인 꿈꾸다

암호화폐(일명 가상화폐) 정보업체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암호화폐 시장의 시가총액 59%가 날아갔다. 300조원에 가까운 돈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비트코인 전문 매체 비트코인닷컴은 지난 2일 “지난 1분기 비트코인 가격은 반토막이 났다”며 “최근 들어 시장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지난 1분기였다”고 보도했다.
 

3~4일 분산경제포럼서 강연

암호화폐 대장주 비트코인만 놓고 따지면 지난 1분기 50% 하락했다. 68%나 폭락했던 2011년 3분기보다 하락률이 작긴하다. 하지만 심리적 상실감은 더 크다. 당시엔 비트코인 가격이 16달러에서 5달러로 떨어졌다. 단순하게 따지면 1비트코인 당 11달러만 날렸다. 그런데 지난 1분기엔 1만4112달러에서 6973달러까지 떨어졌다. 7000달러 넘는 돈이 사라진 셈이다.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비트코인은 그나마 낫다. 리플ㆍ카르다노ㆍ스텔라루멘 등은 80% 가까이 폭락했다. 지난해 말 고점에 시장에 진입한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선 암호화폐 시장 종말론이 팽배한 상황이다.
 
비트코인 전체 역사를 꿰뚫고 있는 이들은 그러나,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미래에 대해 낙관한다. 비트코인이 자체가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져 탄생한 게 아니라, 앞선 연구와 실패를 극복하고 나온 탈중앙화 및 블록체인 기술의 결정판이기 때문이다. 
출처: 헤이와이어

출처: 헤이와이어

 
비트코인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인물 중 한 명이 한국을 찾았다.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 ‘이캐시(Ecash)’를 만든 ‘암호학의 아버지’ 데이비드 차움 얘기다. 그는 3~4일 이틀간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개최되는 ‘제1회 분산경제포럼(DECONOMY 2018)’에 참석한다. 분산경제(distributed economy)란 모든 참여 주체가 각자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중앙기관이나 중개자 없이 합의에 도달하는 경제모델을 뜻한다. 차움은 3일 연사로 나서 ‘분산 컴퓨테이션’에 대해 강연할 계획이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 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해 세상을 바꾼 아이작 뉴턴의 이야기다. 사람들이 뉴턴에게 ”어떻게 그렇게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나요“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꺠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뉴턴이 이 표현을 처음 쓴 사람은 아니라고 한다. 당시 유행하던 비유적 표현이라는 게 정설이다). 여기서 거인은 앞서 태어난 과학자 갈릴레오, 베이컨, 데카르트, 케플러 등이다.  
 
비트코인도 마찬가지다.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개발자가 만든 것으로 알려졌지만, 비트코인이 탄생하기 앞서 다른 많은 디지털 화폐가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차움의 회사 디지캐시(Digicash)가 만든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 이캐시다.
 
차움은 컴퓨터 공학자이면서 당시 가장 유명한 암호학자였다. 미국 UC버클리에서 컴퓨터 공학과 경영학 박사학위를 마쳤다. 1981년 발표한 ‘추적이 불가능한 전자 메일, 수신 주소, 그리고 디지털 가명(Untraceable Electronic Mail, Return Address, and Digital Pseudonyms)’이라는 논문은 다양한 프라이버시 보호 기술의 기반이 됐다.  
 
차움은 “프라이버시는 인간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며 “프라이버시는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 사상의 핵심 원리를 지키고 유지하는데 매우 핵심적인 개념”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그의 사상은 ‘사이퍼펑크(Cypherpunk)’ 문화의 핵심이 된다. 사이퍼펑크는 암호학의 진보와 프라이버시 보호의 대중화가 사회적ㆍ정치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다고 믿는 사람들로 구성된 자유주의 운동이다. 1980년대 활동을 시작해 당시 정보기관이나 군대에서 이용되던 암호학을 대중화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차움이 1983년 고안한 ‘블라인드 서명(Blind Signature)’ 기술은 디지털 서명을 활용해 암호화된 메시지를 주고 받는 기술이다. 그는 1988년 ‘추적이 불가능한 전자 화폐(Untraceable Electronic Cash)’라는 논문을 통해 인터넷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그렇지만 추적이 불가능한 전자화폐를 최초로 제안한다. 그리고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1990년 디지캐시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디지털화된 달러에 고유 해시(Hash) 값을 붙여 만든 최초의 암호화폐 이캐시를 출시했다. 이캐시는 은행이 모든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신용카드와 달리 거래 내역을 제3자가 알 수 없는 익명성을 보장했다.
 
출처: 분산경제포럼

출처: 분산경제포럼

◇“디지털 시대의 금이 아니라 석유”
디지캐시는 그러나, 1998년 파산 신청을 한다. 전도 유망한 회사의 몰락을 두고 일부는 차움의 피해망상과 편집증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개발을 할 수는 있지만 이를 현실에 접목하기 위해서는 경영 수완이 필요한데, 차움은 그런 능력은 없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디지캐시 몰락의 진짜 원인은 시대를 잘못 만난 탓이다. 차움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프라이버시는 최근에 와서야 일반인들에게 중요하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소비자들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이캐시보다는, 은행이 거래 내역을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결제가 빠르고 각종 부가 혜택까지 가미된 신용카드를 선호했다.
 
디지캐시 파산 뒤 10년이 지난 2008년 11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름을 쓰는 익명의 개발자가 비트코인 백서를 공개했다. 비트코인에는 차움의 디지털 암호학 기술이 녹아 있다.  
출처: 분산경제포럼

출처: 분산경제포럼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갔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드러난 기존 금융과 화폐 시스템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시도까지 담았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전자화폐에서 중앙화된 기관인 은행을 없앴다. 대신 이중 지불(더블 스펜딩) 문제는 사용자들이(노드) 거래 내역들을 장부(블록)로 만들어 서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극복했다. 블록체인에 대한 악의적인 공격을 막기 위해 거래를 검증하려면 아주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도록 했다. 작업증명(Proof of Work), 이른바 채굴이다. 또, 사용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블록을 만든 사람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줬다. 이게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은 기술적으로 분리할 수 없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무엇보다 비트코인의 성공에는 달라진 시대 정신이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정점으로 돌아가는 달러 화폐 경제에서 임금을 받는 일반 노동자들의 자산이 약탈당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국가 마음대로 찍어내는 돈(법정화폐)이 아니라 익명성이 보장되고 국경의 장벽도 없앤, 진짜 돈에 대한 수요가 비트코인의 인기를 끌어올렸다.
 
블록체인 투자펀드를 운용하는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는 지난달 30일 열린 ‘블록체인 3.0 비즈니스 혁명‘ 포럼에서 “주식회사제도가 근대 자본주의 발전의 근간이 됐듯이 블록체인은 공유와 상생의 협동조합 경제를 뒷받침하는 플랫폼 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서 박한결 넥시빗 설립자는 “블록체인은 단순한 통화 수준이 아니라 우리 삶의 근간을 바꾼다는 점에서 디지털 시대의 금이 아니라 석유”라고 비유했다.
 
블록체인 기술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비트코인(암호화폐)과 블록체인은 기술적으로 분리할 수 없다면, 1분기 가격 하락에 따른 암호화폐 시장의 종말을 논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다만, 특정 암호화폐의 미래에 대해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블록체인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오스트인베스트먼트의 임동민 연구원은 “인터넷 버블 때에도 그랬지만 인터넷 산업의 성장과 내가 투자한 기업의 가치 상승은 별개의 문제”라며 “시장 과열이 가라앉은 지금이 오히려 투자기회를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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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의 어쩌다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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