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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인사이트] 마오쩌둥의 ‘공미’ 넘어 ‘극미’ 시동 건 시진핑

미·중 무역 전쟁이 세계를 긴장시킨다. G2의 용호상박(龍虎相搏) 의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겉으론 무역 분쟁이지만 이면은 세계의 패권 다툼 전초전 성격이 짙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와 종신 집권의 길을 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이 부닥치는 형국이다. 중국몽의 종착역은 미국을 넘어 세계 최강이 되는 것이다. 양국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보인다. 신중국 역사가 극미(克美)를 향한 행보였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 창당 이래 28년에 걸친 투쟁 끝에 신중국을 건설한 마오쩌둥(毛澤東)에게 미국은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없는 꽃과 같았다. 미국의 풍요가 부러웠지만, 미국은 늘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편이었다. 1949년 건국과 함께 마오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건 미국이 세 갈래 길을 이용해 중국 본토를 향해 진격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이는 ‘삼로향심우회(三路向心迂回)’ 전략으로 불린다.
 
세 갈래 길은 한반도와 인도차이나 반도, 그리고 대만을 가리킨다. 결국 마오의 중국은 한반도와 베트남에서 미국과 격전을 치른다. 미국이 중국 심장부까지 공격할 의사가 없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론 마오가 예상한 세 지역 중 두 곳에서 미·중은 혈전을 치렀다. 마오가 미국과의 전쟁 불가피론을 강조하면서 전쟁과 기아에 대비하는 비전비황(備戰備荒) 정책을 실시하고 군사시설을 미군의 예상 상륙 지점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으로 배치하는 작업을 단행해야 했던 배경이다.
 
이 시기는 미국의 위세를 두려워하는 공미(恐美)와 미국과 같은 풍요와 발전의 국제적 지도국이 되고 싶다는 숭미(崇美)의 심리가 중국 내부를 끊임없이 배회했다. 나이 들어서도 나름대로 영어 공부에 열심이었던 마오의 모습이 이 시대 미·중 관계를 대변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마오쩌둥을 이어 중국의 2세대 지도자가 된 덩샤오핑(鄧小平) 앞에 놓인 중국의 현실은 ‘찢어지는 가난’으로 요약된다. 건국 30년이 지났건만 중국의 빈궁(貧窮)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전쟁 준비와 계급 투쟁으로 일관한 마오 시대가 남긴 자연스러운 유산이었다. 덩의 눈에 이제 세상은 국지전(局地戰)이 있을지는 몰라도 대국(大國)끼리 전쟁을 하는 시기는 지났다.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국내적으론 무얼 해야 하나. 바로 발전이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평화와 발전’의 개념이 정착된 것이다.
 
덩샤오핑은 “가난이 사회주의는 아니다”란 구호를 내세우며 대내적으론 개혁, 대외적으론 개방에 나섰다. 이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등 ‘미국 배우기(學美)’가 필요했다. 덩이 미국을 방문해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마음씨 좋은 아저씨’란 인상을 미국인 마음속에 심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게 된 배경이다.
 
덩샤오핑의 노력으로 중국은 미국의 긍정 속에 성공적으로 국제경제에 편입했다. 특히 2001년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은 달리는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다. 중국의 비약적인 성장에 서방에선 ‘중국위협론’이 불거져 나왔다.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중국의 부상은 평화적이라는 화평굴기(和平崛起) 주장이었다. 그러나 권력의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힘이 붙자 중국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하나의 변곡점을 이룬다.
 
당시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세계 각국의 리더들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알현(?)을 위해 30분씩 줄을 서야 했다. 세계 수퍼 대국의 지도자인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감이 생긴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가 때로 다툴 수는 있어도 그 관계가 완전히 깨지지는 않는다는 투이불파(鬪而不破)의 상태라 규정했다. 이젠 미국에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中國可以說不)』과 같은 서적이 나왔다. 미국 추격(赶美)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2012년 시진핑 집권 이후 미·중 관계엔 질적인 변화가 이뤄지기 시작한다. 중국이 국내적으론 민족주의, 외교적으론 공세주의, 군사적으론 확장주의적 모습을 보이며 미국처럼 국제 질서의 제정자가 되겠다고 자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개혁과 발전의 동력을 외부적 확장을 통해 확보하려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전략의 추진이나 강력한 경제력과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새로운 금융 질서 수립을 꾀하는 행위는 미국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시진핑은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 주장에 빗대어 “역사는 종결이 없고 끝날 가능성도 없다”고 말한다. 20세기 말 동구권의 몰락을 보며 자본주의의 승리를 예언했던 후쿠야마에게 현재 사회주의 중국의 발전을 어떻게 해석하겠느냐는 반문이다. 미국에 대한 도전장이기도 하다. 시진핑은 특히 건국 100주년이 되는 21세기 중엽까지 중국이 도달할 목표를 덩샤오핑의 ‘중등 국가’에서 ‘강국’으로 바꿨다. 강국이 되기 위해선 세계 일류의 군대가 필요하다며 강군몽(强軍夢)을 외친다. 1등은 하나이고 패자(覇者)도 하나다. 미·중 충돌은 어쩌면 예정된 시간표인 셈이다.
 
트럼프의 미국과 시진핑의 중국 앞엔 10가지 갈등이 놓여 있다. 미국 무역적자를 둘러싼 통상(Trade)문제와 이에 대응한 중국의 미 정부국채(Treasury Bonds) 투매 가능성이 현재 불거진 상태이고, 중국의 미국 기술(Technology)정보 절취 문제 또한 뜨겁다. 미·중 간 최대 갈등 요인이라는 대만(Taiwan)문제도 최근 미국이 고위 인사의 대만 여행을 자유롭게 하는 ‘대만 여행법’을 통과시키면서 중국에서 ‘단교 운운’의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중국을 격분시키고 있는 현안이다.
 
남중국해 ‘항해의 자유’를 둘러싼 영토(Territory)문제, 티베트(Tibet) 소수민족자치구와 천안문(Tiananmen) 사태를 둘러싼 인권 문제, 기후(Temperature)협약과 반(反) 테러(Terror) 공조문제에 중국 부상이 미국 이익 침해와 연결된다는 상호 신뢰(Trust)구축 문제도 골칫거리다.
 
문제는 우리다. 미·중 모두가 우리의 우군이자 시장이 돼야지 이들로부터 어느 한쪽에 서라는 강요를 받는 처지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우리 자신의 원칙을 세우고 사안별로 탄력적으로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판세 보기는 빼놓지 말아야 한다. 10가지 T를 잣대로 펼쳐지는 미·중 양국의 힘겨루기를 눈여겨 봐야 한다.
 
 
◆강준영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에서 중국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으로 중국의 현대화 전략 및 정치·경제 개혁에 관심이 많다. 20여 권의 저서와 역서, 1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강준영 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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