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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푹 빠졌던 별과 프로그래밍…취미가 삶이 됐죠

"고교 시절 좋아하던 여학생이 별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그 여학생에게 잘 보이고 싶어 책을 찾아보며 별자리 공부를 했죠. 『별자리 여행』이란 책에 등장하는 별자리를 밤마다 밖에 나가서 찾아보곤 했어요. 북두칠성부터 헤라클레스자리, 백조자리 같은 별들을 맞춰나가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 책에 나오는 별자리를 모두 암기할 정도였답니다." 
 
별과 우주를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으로 18년 역사를 자랑하는 천문 비영리민간단체인 ‘천문노트’ 설립자 지용호(41)씨의 이야기입니다. 지씨는 어머니로부터 생일선물로 망원경을 받은 날, 학교에서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목성과 4대 위성들을 다 찾아봤다고 해요. 대부분의 별은 망원경으로 아무리 확대해도 그냥 밝게만 보이는데 목성은 원반과 줄무늬까지 보일 정도로 선명했죠. 그날 이후 하루 한 번씩 같은 시간에 나와 목성과 위성의 위치를 확인하고 날짜별로 사진을 찍고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책에서만 봤던 토성의 고리를 실제로 보니까 신기했어요. ‘하늘의 별들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400년 전에 바로 이걸 봤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벅차올랐죠. 밤하늘에 어떻게 저런 게 있을 수 있나,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너무 좁은 거구나 느끼면서 마음이 커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용호씨가 천문학과 1학년이던 1997년 4월 새벽 천안 직산읍에서 초라영한 헤일밥 혜성 사진. 당시 이 사진을 찍기 위해 새벽에 혼자 동네에 있는 전망 좋은 산에 올랐다.

지용호씨가 천문학과 1학년이던 1997년 4월 새벽 천안 직산읍에서 초라영한 헤일밥 혜성 사진. 당시 이 사진을 찍기 위해 새벽에 혼자 동네에 있는 전망 좋은 산에 올랐다.

그는 내친 김에 천체를 관측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메시에 목록’에 도전했어요. 메시에 목록은 18세기 프랑스 천문학자 샤를 메시에가 태양계를 넘어 ‘먼 하늘의 물체(성운·성단·은하)’를 목록으로 만든 것을 말해요. 남들은 입시에 매진할 고3 시절, 지씨는 교내 천문 동아리를 결성하고 사진동아리 친구들과 별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녔습니다. 필름카메라를 구입해 별 사진 촬영 기법도 배웠어요. 밤하늘의 별자리를 찍고 처음 사진으로 인화해서 봤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죠. 남들이 보면 그저 검은 여백에 별이 찍힌 것일 뿐이지만 열아홉 살 그의 눈에는 너무나도 멋져 보였죠.
 
“당시 입시 스트레스가 컸어요. 맨날 지구에서 땅만 보고 살다가 성운·성단·은하 같은 먼 하늘의 물체를 직접 보니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본 것 같았어요.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게 됐다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죠. 그래서 천문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어요.” 
 
1997년 충북대 천문우주학과에 입학했지만 공부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매일 수학·물리학과 씨름해야 했기 때문이에요. 고교 때 지구과학과 화학은 좋아했지만 물리와 수학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별을 보는 것만 좋아했지 실제 천문학이라는 학문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거죠. 그런데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새로 부임한 한정호 교수(충북대 물리학과)로부터 과학기술용 계산을 위한 프로그램 포트란(FORTRAN) 강의를 듣게 된 거예요. 중력렌즈 분야를 연구하던 한 교수가 별에 대한 열정은 물론 프로그래밍까지 잘하는 지씨를 눈여겨봤죠. 교수님이 연구실에 자리까지 마련해줘 좋아하는 천문학과 프로그래밍을 둘 다 마음껏 하게 됐습니다. 
 
지용호씨가 중학생 시절 만들었던 게임 설계도. 지씨는 직접 게임을 만드는 재미에 빠져 게임 프로그래머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지용호씨가 중학생 시절 만들었던 게임 설계도. 지씨는 직접 게임을 만드는 재미에 빠져 게임 프로그래머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지씨는 중학교 시절 컴퓨터학원을 다니면서 처음 프로그래밍을 접한 이후 게임을 만드는 재미에 빠진 적이 있었어요. ‘꽃을 먹는 두더지’ ‘2인용 테트리스’ ‘우주전’ 같은 게임을 만들었죠. 그때는 게임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부모님께 컴퓨터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당시에는 너무 비싼 물건이었고 결국 지씨는 컴퓨터학원도 그만둬 버렸어요. 그렇게 끊어졌던 프로그래밍과의 인연을 대학교에 와서 다시 맺게 된 거죠. 
 
“천문학이 컴퓨터 프로그램과 무관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를 계기로 천문학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고 물리학도 수학도 재미있어졌어요. 그때 진짜 공부를 열심히 했었던 것 같아요.”
 
그는 군대에 가서도 천문학 공부에 열심이었어요. 고전역학 공식을 빼곡히 수첩에 써서 2권의 책을 만들었고, 병장 시절엔 책 한 권으로 웹 프로그래밍을 독학했어요. 여유 시간엔 천문학 프로그래밍에 관한 홈페이지도 만들었죠. 당시 그의 천문 프로그램을 검색해 본 한 서울대 학생과의 만남이 ‘천문노트(http://astronote.org/)’의 탄생 계기가 됐습니다.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 이형철이라는 친구가 제 블로그로 연락을 해왔고, 2001년 전역 후 그와 의기투합해서 만든 사이트가 바로 천문노트입니다. 그 친구의 프로그래밍 실력은 저보다 훨씬 뛰어났죠. 저는 천문 기초지식을 담은 해외 사이트를 번역해서 옮기기도 했어요. 당시 별자리나 천문학에 관한 정보를 총망라한 사이트로는 국내에 유일무이했죠. 우리는 천문학의 저변 확대와 천문프로그램 보급이라는 슬로건을 야심차게 내걸었습니다.”
 
지난 2016년 충북 좌구산천문대로 떠난 정기관측회에서 천문노트 회원들과 함께. 회원 수가 1만 명에 달하는 천문노트는 정기관측회를 11회째 진행했다.

지난 2016년 충북 좌구산천문대로 떠난 정기관측회에서 천문노트 회원들과 함께. 회원 수가 1만 명에 달하는 천문노트는 정기관측회를 11회째 진행했다.

카이스트에 재학 중이던 오학주씨까지 천문노트에 합세해 본격적으로 천문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전 하늘의 천체사진을 디지털화한 ‘대한민국 인터넷 천문대’도 이들의 작품이에요. 별 보는 사람들의 모임 ‘스타파티’를 열어 자신들의 천문프로그램을 소개하기도 했고요. 겨울에는 회원들과 함께 별 보러 가는 관측회도 진행하며 ‘천문노트’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죠.
 
그사이 지씨는 수능시험을 다시 치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제어시스템공학과에 입학했어요. '별'이 밥벌이가 되진 않았기 때문이었죠. ‘천문학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이대로 천문학 공부를 계속해야 하나’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 계속됐고, 결국 취업을 염두에 두고 전공을 선택한 겁니다. 졸업을 앞둔 2005년 그는 삼성 LCD 공장에 장비를 납품하는 회사에 취업했고 장비 응용 애플리케이션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어요. 프로그래밍을 좋아했던 그였지만 이상하게도 기계장비를 컨트롤하는 프로그램 운영은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일을 하면서도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되지?’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졌죠.
 
때마침 천문노트를 함께 만들었던 형철씨로부터 재미교포 사업가를 소개받게 됩니다. 그 사업가는 당시 싸이월드로 대표되는 SNS 열풍이 불기 시작한 한국에 새로운 SNS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며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별을 제공해주는 방법이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죠. 지씨는 다니던 회사를 1년 만에 그만뒀습니다. 
 
대전 시민천문대에서 지용호씨가 아드로가 함께 태양을 관측하고 있다. 지씨는 "천문학을 사랑하는 사람 누구나 밤하늘을 보며 품는 꿈들을 나눌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천문노트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대전 시민천문대에서 지용호씨가 아드로가 함께 태양을 관측하고 있다. 지씨는 "천문학을 사랑하는 사람 누구나 밤하늘을 보며 품는 꿈들을 나눌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천문노트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일종의 스타트업 개발팀장 역할을 맡게 된 셈이죠. 처음에는 사장님을 포함해 직원 5명으로 시작했어요. 서비스를 만들어야 하는데 기술도 경험도 아무것도 없었고 서비스 이름만 ‘스타플(스타+피플)’로 정했죠. 그저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동작하는 굉장히 화려한 별을 만든다’는 것이 기술의 핵심이었죠.”
 
어도비(Adobe)의 ‘플렉스(Flex)’라는 신기술로 별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씨는 이후 어도비 플렉스 플래시(Flash) 관련 기술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알게 된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며 ‘지돌스타’라는 닉네임의 블로그가 유명세를 타게 됐죠. “‘지돌스타’ 블로그는 당시 어도비 플렉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유명했어요. 어도비에서 ‘어도비 플렉스 챔피언’을 해보라고 해서 열심히 활동했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기술 관련 발표도 많이 했어요.”
 
지씨와 팀원들은 1년간 연구개발을 거쳐 스타플 서비스를 내놨습니다. 스타플 사이트에는 별 지도가 있고 회원 가입하면 개인의 성향을 분석해 그에 맞는 별을 무료로 제공해요. 가입자는 그 별에 자신의 인생기록을 남기며 취향껏 꾸밀 수 있었죠. 한때 전체 회원이 200만 명까지 늘면서 급성장하는 듯 보였고 싸이월드보다 진일보한 형태의 SNS였다고 자부했어요. 하지만 수익을 내지 못해 4년여 만에 결국 사업을 접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천문학이나 별과는 무관한 '비사이드소프트'라는 기업에서 CTO로 일하고 있어요.
 
지용호씨는 최근 드론에 취미를 붙였다. '아빠의 드론 비행 도전기' 블로그와 'Appa FPV' 유튜브 채널도 가지고 있다.

지용호씨는 최근 드론에 취미를 붙였다. '아빠의 드론 비행 도전기' 블로그와 'Appa FPV' 유튜브 채널도 가지고 있다.

그는 “지나고 보니 ‘프로그래밍’과 ‘별자리’라는 두 개의 키워드가 삶을 좌우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프로그래밍을 생업으로 하고 있고 세 아이 육아 때문에 별을 보러 다니진 못해요. 하지만 저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커넥팅 더 닷츠(Connecting the Dots)’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제가 해왔던 모든 일이 연결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제는 비즈니스 감각을 키워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업가가 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글=김은혜 꿈트리 에디터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행하는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dreamtree.or.kr)’의 주요 콘텐트 중 하나입니다. 무엇이 되겠다(what to be)는 결과 지향적인 진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겠다(how to live)는 과정 중심의 진로 개척 사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틀에 박힌 진로가 아닌,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진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성공 여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고, 남들이 뭐라 하든 스스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길’을 점검해 보시기 희망합니다. 꿈트리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소년중앙과 협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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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