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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과 류승룡의 충돌, 비극의 힘을 키웠다

영화 ‘7년의 밤’의 원작자 정유정 작가(왼쪽)와 추창민 감독. 정 작가는 ’추 감독이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서사를 쌓아간 방식이 감각적이고 클래식해 영화화에 기대가 더 컸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화 ‘7년의 밤’의 원작자 정유정 작가(왼쪽)와 추창민 감독. 정 작가는 ’추 감독이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서사를 쌓아간 방식이 감각적이고 클래식해 영화화에 기대가 더 컸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승패는 솔직히 제가 결정하는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정한 싸움의 룰에 있어선 최선을 다했습니다.”
 
추창민(52) 감독은 애써 담담한 어조였다. 그가 연출과 각본을 겸한 ‘7년의 밤’은 저예산 공포물 ‘곤지암’, 스필버그 감독의 SF ‘레디 플레이어 원’에 밀려 지난주 개봉 첫날부터 흥행 3위로 출발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로 1000만 관객을 동원했던 감독의 신작, 정유정(52)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바탕으로 순제작비 85억원을 들인 영화로는 실망스런 성적이다.
 
영화는 두 ‘아버지’ 에 한결 초점을 맞췄다. 사형수 최현수(류승룡 분)와 그 아들 서원(탕준상·고경표 분), 자신이 학대하던 딸 세령(이레 분)을 최현수에 잃고 이들 부자를 쫓는 마을 유지 오영제(장동건 분)의 감춰진 7년을 들춰내는 이야기다. 심리 묘사에 무게를 싣다 보니, 소설의 속도감은 상쇄된 편. 또 사건을 다각적으로 비추던 주변 캐릭터 설정, 결말 등도 주인공 위주로 덜어내고 바꿨다. 연기는 호평이 들려오는 반면 원작의 극적 재미는 제대로 못 살렸단 반응이 나온다.
 
개봉 이틀 뒤 추 감독과 함께 만난 정 작가는 “영화의 시작과 끝은 감독님이 처음 쓴 시나리오 초고부터 정해져 있었는데, 소설과 다른 해석이 재밌었다”며 “저랑 같은 이야기를 했다면 오히려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극 중 오영제를 연기한 장동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극 중 오영제를 연기한 장동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소설이 나온 지 7년 만에 개봉해 ‘7년의 밤’이냐는 우스개가 나돈다. 영화화가 오래 걸린 이유는.
추창민=소설은 여러 인물의 시선에서 바라본 각자의 에피소드가 매력적이었다. 근데 영화는 주인공을 따라 두 시간 안에 기승전결을 내야한다. 어떤 걸 취할지 결정하기 어려웠다. 작가의 말 중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그러나’가 있다”는 말이 와 닿았다. 최현수와 오영제의 대결 구도에서 ‘그러나’를 잘 구현하면 원작 팬들에게 소설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 ‘그러나’를 찾기 위해 각본에만 2년을 보냈다.
 
원작자로서 ‘제목을 바꾸지 말 것, 소설 톤을 유지할 것’을 영화화 조건으로 내걸었다고. 완성된 영화에 대한 소감은.
정유정=영화를 세 번 봤는데, 처음 봤을 때부터 감독님께 경의를 표하고 싶어졌다. 원작에는 무겁고 답답한 비극성이 있다. 돈많이 들인 상업영화니까 그걸 덜어내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확대·강화했더라. 또 영상화하기 힘든 문학적 장치를 절묘하게 표현한 장면이 많았다. 두 배우가 충돌하는 에너지도 어마어마했다. 류승룡 배우 연기가 가슴이 무너지고 아프다면, 장동건 배우는 관객을 막 끌고 다니더라.
 
세령댐 세트를 설치했던 대전 대청댐.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세령댐 세트를 설치했던 대전 대청댐.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가장 제작비를 많이 들인 부분은.
=소설의 무대가 되는 세령호 저수지다. 실제 댐(대전 대청댐) 위에 세트를 짓고 소설처럼 안개가 낄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더 자연스러워 보이기 위해 650여 컷 장면을 컴퓨터그래픽(CG)으로 덧칠했다.

=세령호는 소설과 백프로, 이백프로 똑같았다. 황폐하고 쓸쓸하면서도 슬펐다. 세령호는 최현수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 유년기 우물의 거대한 은유라서 무척 중요하다. 영화가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표현해 감탄했다.
 
영화에서 바뀐 설정이 실망스럽단 평가도 있는데.
=원작에 감춰진 악의 이면을 정밀하게 녹여내려다 보니,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은 스릴러 요소나 악행 등의 묘사가 조금은 소홀했다. 각자 소설에서 좋아했던 부분이 빠졌다고 실망할 수 있지만, 왜 저렇게 해석했을까 돌이켜보면 또 다른 흥미 지점을 찾으시리라 생각한다.
 
원작의 사이코패스 오영제를 영화는 새로운 사연을 더해 납득할 만한 ‘인간’으로 그리려 했는데.
=영화를 두 번째 보면서, 오영제는 혹시 최현수가 가장 대면하기 싫은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최현수가 가슴에 숨기고 살았던 폭력성이 우발적 살인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으로 밖으로 표출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오영제는 바로 그가 감춰온 야수의 모습 아니었을까.
 
소설에서 끝까지 존재감이 컸던 여성 캐릭터들이 영화에선 두 부성의 격돌에 가려 별다른 활약 없이 증발한다는 인상도 든다.
=최현수의 아내 강은주(문정희 분)는 소설에서 가장 공들였던 캐릭터다. 무능한 남편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성이 단지 억센 것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 연민과 호응을 이끌어낼 것인지가 제겐 하나의 과제였다. 반면 영화는 두 남성의 대결 서사에 집중한다. 약간 서운하지만 영화의 경제성 측면에서 (여성 캐릭터의) 희생은 어쩔 수 없었겠다고 수긍했다.

=최현수와 오영제를 가운데 두고 선택과 집중을 하다보니 빠졌을 뿐이다. 남성 중심의 부성 코드를 내세우려던 건 아니다. ‘7년의 밤’은 운명에 관한 영화다. 운명 중 가장 진한 것은 ‘피’다. 그걸 끊어보려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부성을 이용한 것이다. 무녀(이상희 분) 캐릭터는 소설에 없었지만 추가했다. 남성성의 대결 속에서 서원을 지켜주는 종교적인 어머니의 형상이었다.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죽을 고비에 처한 서원이 세령의 혼령과 호수를 빙빙 돌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장면. 사실 그게 첫사랑을 암시한 대목이다. 서원이 자기가 좋아하게 된 여자 아이와 노래하며 무서움을 잊는 설정인데, 소설에선 너무 섬뜩하게 묘사한 나머지 전부 그걸 호러로 받아들이더라. 영화에선 어릴 적 추억처럼 가슴 따뜻하게 구현돼 만족했다.

=지금 그 말씀 처음 듣는데 신기하다. 저도 똑같이 상상하며 그렸다.
 
정유정 작가는 다음 작품을 “처음 시도하는 여성 원톱 판타지물”이라고 전했다. "살인이나 스릴러적 요소를 쓰지 않는 것도 처음이다. 죽음 앞에 선 인간이 마지막에 어떤 선택을 하는가의 이야기다. 주인공이 침팬지 사육사이자 동물 행동학자여서 일본으로 취재도 다녀왔다. 내년 봄을 목표로 열심히 쓰고 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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