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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영화화 조건 "제목과 작품톤 바꾸지 말 것"

정유정 소설가(왼쪽)와 추창민 감독이 3월 30일 삼청동 골목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사진전문기자

정유정 소설가(왼쪽)와 추창민 감독이 3월 30일 삼청동 골목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사진전문기자

“승패는 솔직히 제가 결정하는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정한 싸움의 룰에 있어선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추창민(52) 감독은 애써 담담한 어조였다. 이틀 전 개봉한 그의 총제작비 100억원대 신작 스릴러 ‘7년의 밤’은 저예산 공포물 ‘곤지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SF ‘레디 플레이어 원’에 두 배 가까운 관객 수 차이로 밀려 흥행 3위에 머물고 있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로 6년 전 1000만 관객을 모은 그가 베스트셀러 소설가 정유정(52)의 2011년 대표작을 스크린에 옮기며 기대를 모은 데 비해 저조한 성적표다.  
영화는 세령마을을 수몰시키며 세상에 ‘살인마’로 낙인찍힌 사형수 최현수(류승룡 분)와 그 아들 서원(탕준상·고경표 분), 자신이 학대하던 딸 세령(이레 분)을 최현수에 잃고 이들 부자를 쫓는 마을 유지 오영제(장동건 분)의 감춰진 7년을 들춰내는 이야기다. 추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겸해, 소설에선 최현수를 괴롭히는 사이코패스로 치부됐던 오영제에게 나름의 사연을 부여하며 두 부성의 내면에 한결 초점을 맞췄다.
영화 '7년의 밤' 한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7년의 밤' 한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심리 묘사에 무게를 싣다보니, 소설의 속도감은 다소 상쇄된 편. 사건을 다각적으로 비추던 주변 캐릭터 설정, 결말 등도 주인공 위주로 덜어내고 바꿨다. 배우들의 연기 호평이 들려오는 반면, 원작의 극적 재미는 제대로 못 살렸단 반응이 엇갈리는 이유다. 30일 추 감독과 인터뷰에 응한 정 작가는 “영화의 시작과 끝은 감독님이 처음 쓴 시나리오 초고부터 정해져 있었는데, 소설과 다른 해석이 재밌었다”면서 “저랑 같은 이야길 했다면 오히려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추 감독의 연출 소식을 처음 듣곤 어땠나.  
정유정 작가(이하 정): “제가 TV 드라마랑 영화를 잘 안 본다. 일단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봤다. 소설로 치면 문체인데, 화면이 대단히 감각적이었다. 서사를 쌓아가는 방식이 클래식했다. 초고를 받아보고 기대감이 커졌다.”
-소설이 나온 지 7년 만에 개봉해서 ‘7년의 밤’인가 하는 우스개마저 나온다. 영화화가 오래 걸렸던 이유는.  
추창민 감독(이하 추): “소설을 처음 읽고 장면 하나하나가 제 눈앞에 이야기를 슥 보여주듯 세밀하게 느껴졌다. 여러 인물의 시선에서 바라본 각자의 에피소드가 매력적이었다. 근데 영화는 주인공을 따라 2시간 안에 기승전결을 내야 한다. 어떤 걸 취할지 결정하기 어려웠다. 작가의 말 중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그러나’가 있다’는 말이 와 닿더라. 최현수와 오영제의 대결 구도에서 ‘그러나’를 잘 구현하면 원작 팬들에게 소설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 ‘그러나’를 찾기 위해 각본에만 2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정유정 소설가(왼쪽)와 추창민 감독이 3월 30일 삼청동 골목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사진전문기자

정유정 소설가(왼쪽)와 추창민 감독이 3월 30일 삼청동 골목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사진전문기자

-영화에 ‘제목을 바꾸지 말 것, 소설 톤을 유지할 것’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고. 완성된 영화에 대한 소감은.  
정: “영화를 세 번 봤는데, 처음 봤을 때부터 감독님께 경의를 표하고 싶어졌다. 원작이 가진 무겁고 답답한 비극성이 있다. 돈을 많이 들인 상업영화니까 그걸 덜어내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확대하고 강화했더라. 또 영상화하기 힘든 문학적 장치를 절묘하게 표현한 장면이 많았다. 두 배우가 충돌하는 에너지도 어마어마했다. 류승룡 배우 연기가 가슴이 무너지고 아프다면, 장동건 배우는 관객을 막 끌고 다니더라.”
추: “배우와 ‘아, 우리가 이런 감정 느낄 수 있구나’ 납득할 때까지 테이크를 많이 갔다. 한계까지 밀어붙인 게 지금 말한 에너지를 뽑아낸 것 같다.”
-가장 많은 제작비를 투자한 부분은.  
추: “소설의 무대가 되는 세령호 저수지였다. 실제 댐 위에 세트를 짓고 소설처럼 안개가 낄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밤 장면은 조명기가 들어갈 수 없어 길을 닦으면서 찍었다. 화장실을 가려면 쉬는 시간에 배를 타고 나가야 했다. 더 자연스러워 보이기 위해 650여 컷 장면을 컴퓨터그래픽(CG)으로 덧칠했다. 일반 영화보다 훨씬 많은 분량이다.”
정: “세령호는 소설과 100프로, 200프로 똑같았다. 황폐하고 쓸쓸하면서도 슬펐다. 세령호는 최현수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 유년기 우물의 거대한 은유이기 때문에 무척 중요하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표현해서 감탄했다.”
영화 '7년의 밤' 한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7년의 밤' 한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바뀐 설정이 실망스럽다는 평가도 있는데.  
추: “원작에 감춰진 악의 이면을 정밀하게 녹여내려다 보니,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은 스릴러 요소, 악행 등의 묘사가 조금은 소홀했다. 각자 소설에서 좋아했던 부분이 빠졌다고 실망할 수 있지만, 왜 저렇게 해석했을까 돌이켜보면 또 다른 흥미 지점을 찾으시리라 생각한다.”
-정 작가는 소설 『28』 『종의 기원』 등에서도 사이코패스 캐릭터를 통해 악(惡)의 근원을 탐구해왔다. 영화에서 납득할 만한 ‘인간’으로 재탄생한 오영제 캐릭터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정: “영화를 두 번째 보면서, 영화 속 오영제는 혹시 최현수가 가장 대면하기 싫은 자기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현수가 가슴에 숨기고 살았던 폭력성이 우발적인 살인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으로 밖으로 표출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오영제는 바로 그가 감춰온 야수의 모습 아니었을까.”
영화 '7년의 밤' 한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7년의 밤' 한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소설에선 마지막까지 존재감이 컸던 여성 캐릭터들이, 영화에선 두 부성의 격돌에 가려 별다른 활약 없이 증발한다는 인상도 든다. 원작자로선 아쉬울 수 있는데.  
정: “최현수의 아내 강은주(문정희 분)는 소설에서 가장 공들였던 캐릭터다. 무능한 남편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성이 단지 억센 것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 연민과 호응을 이끌어낼 것인지가 제겐 하나의 과제였다. 반면 영화는 두 남성의 대결 서사에 집중한다. 약간 서운하지만 영화의 경제성 측면에서 (여성 캐릭터의) 희생은 어쩔 수 없었겠다고 수긍했다.”
추: “최현수와 오영제를 가운데 두고 선택과 집중을 하다보니 빠졌을 뿐이다. 남성 중심의 부성 코드를 내세우려던 것은 아니다. ‘7년의 밤’은 운명에 관한 영화다. 운명 중 가장 진한 것은 피다. ‘금수저’도 있지만 피하고 싶은 저주 받은 운명도 있잖나. 그걸 끊어보려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부성을 이용한 것이다. 오히려 무녀(이상희 분) 캐릭터는 소설에 없었지만 추가했다. 남성성의 대결 속에서 서원을 지켜주는 종교적인 어머니의 형상이었다.”
영화 '7년의 밤' 한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7년의 밤' 한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정: “죽을 고비에 처한 서원이 세령의 혼령과 호수를 빙빙 돌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장면. 사실 그게 첫사랑을 암시한 대목이다. 서원이 자기가 좋아하게 된 여자아이와 노래하며 무서움을 잊는 설정인데, 소설에선 너무 섬뜩하게 묘사한 나머지 전부 그걸 호러로 받아들이더라. 영화에선 어릴 적 추억처럼 가슴 따뜻하게 구현돼 만족했다.”
추: “지금 그 말씀 처음 듣는데 신기하다. 저도 똑같이 상상하며 그렸다. 영화와 소설이 결이 다르다고 느꼈는데 어쩌면 한 곳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표현 방식이 조금 달랐을 뿐이다.”
영화 '7년의 밤' 한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7년의 밤' 한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혐오와 차별이 화두가 된 시대다. ‘작가’로서 어떤 얘기를 해나가고 싶나.  
추: “요즘은 사람들이 현상만 손가락질하고 그 이면은 관심 없거나 안 보려고 한다. 저는 사람에 관심이 있다. 악이든 선이든 행동의 동기가 궁금하다. ‘7년의 밤’도 약간 그런 지점이다. 현상만 보면 최현수와 오영제는 죽어 마땅한 놈이지만, 뒤집어보면 다른 것들이 보인다.”
정: “어떤 사건 이면의 물음표가 제 소설의 화두다. 그냥 사이코패스여서 이런 일을 했다가 아니라 대체 이 악행 안에는 어떤 매커니즘이 있을까.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 머리말에 ‘이기적 유전자를 완벽히 이해하자. 그래야 그들의 의도를 뒤집을 기회를 얻는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인간뿐’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서로 비난하고, 네 편, 내 편 나눠 이긴 사람 우리 편 하면 쉽다. 헌데 이해하지 못하면 현상에 대해 문제제기도 못하고 넘어설 수도 없다. 저는 소설을 쓸 때마다 꽃삽 하나 들고 알래스카 설원에 도시를 건설하는 기분으로 새로운 과제에 도전한다. 다음 작품은 처음 시도하는 여성 원톱 판타지물이다. 살인이나 스릴러적 요소를 쓰지 않는 것도 처음이다. 죽음 앞에 선 인간이 마지막에 어떤 선택을 하는가의 이야기다. 주인공이 침팬지 사육사이자 동물 행동학자여서 일본으로 취재도 다녀왔다. 내년 봄을 목표로 열심히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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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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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