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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없는 은행' 가보셨나요? 한 번 서명으로 일사천리

 "깨알 같아 읽지도 못하는 신청서에 행원이 시키는 대로 서명하다 보면 진이 다 빠진다."
 
기자가 시중은행 디지털 창구에서 종이 신청서 대신 태블릿 PC로 금융상품에 가입해 봤다.

기자가 시중은행 디지털 창구에서 종이 신청서 대신 태블릿 PC로 금융상품에 가입해 봤다.

금융상품 하나 가입하는 데 불필요한 절차가 많다는 고객 볼멘소리에 등장한 것이 페이퍼리스(paperless) 즉, 종이 없는 지점이다. 
 
지난 3월 30일 디지털 창구로 전환한 시중은행 지점을 찾았다. 기록이 생명인 은행에서 과연 페이퍼리스가 가능할까 궁금해서다. 
 
부끄럽지만 사회 초년생 필수 가입 상품이라는 주택청약종합저축에 입사 12년 차에 가입해 보기로 했다. 
 
은행 지점을 직접 방문한 것도 오랜만이지만 사라진 세 가지가 생소했다. 으레 신규 상품 가입 때 창구 행원이 내밀었던 팸플릿, 빼곡한 글씨의 종이 신청서, 그리고 서명을 위해 열심히 굴렸던 볼펜이다.
 
상품 가입시 확인사항이 태블릿PC에 구현돼, 행원의 간략한 설명을 듣고 의사 표시만 하면 된다. '동의'란에 체크하는 시간이 단축됐다.

상품 가입시 확인사항이 태블릿PC에 구현돼, 행원의 간략한 설명을 듣고 의사 표시만 하면 된다. '동의'란에 체크하는 시간이 단축됐다.

 
가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마다 설치된 대형 태블릿 PC로 이뤄졌다. 일단 종이보다 글씨가 커졌다. 읽기가 쉬웠다. 
 
과거엔 각종 확인사항을 읽어보지도 않고 '동의'란 에 체크했다면, 태블릿 PC에 뜬 내용을 행원이 알기 쉽게 간략히 설명해줘서 들인 시간 대비 상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종이 서류였다면 총 3번 해야 했던 서명은 한 번으로 끝났다. 만약 체크카드를 신청했다면 7번인데 역시 일괄 서명으로 한 번만 하면 된다.
 
구정림 KB국민은행 차장은 "화면을 통해 대화나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에 의외로 고령층의 만족도가 높다"며 "행원 역시 일일이 전표를 찾는 시간을 단축해 고객 대기 시간도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2015년 일부 은행 지점에서만 가능했던 페이퍼리스 업무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가장 먼저 나선 곳은 IBK기업은행이다. 2015년 말 종이 신청서 대신 태블릿 PC로 전자신청서를 작성하는 전자문서 시스템을 도입했다. 창구 업무 100% 디지털화를 목표로, 전 영업점 창구에서 이 시스템을 적용한다. 
 
현재는 예금 등 수신업무 70%를 전자문서로 처리한다. 고객은 불필요한 서류 작성을 하지 않아도 되고 행원은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고객, 직원 편의뿐 아니라 종이 비용을 아껴 연 45억원을 절감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고객이 써야 할 필수 작성 항목이 입력되지 않으면 거래가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금융소비자 보호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부동산 전자계약, 전자등기 등 새로운 제도 시행에 맞춰 신용대출, 담보대출 등 여신업무로 디지털 창구를 확대하기로 했다.
 
지난해 3월 디지털 창구를 시작한 신한은행은 현재 900여개 영업점에서 운영 중이다. 하루 평균 9만여건의 전자 문서가 활용되고 있다. 
 
전체 문서 사용량 대비 60%를 넘어 은행 전체로는 종이 문서보다 활용량이 더 많다. 예금, 대출, 환전, 인터넷뱅킹 등 약 150여 종류의 서비스가 가능하다.
 
지점을 찾은 고모 씨는 "병원에선 이런 전자문서를 이용한 적이 있는데 은행에서 전자펜으로 정보를 입력하는 게 생소하다"며 "처음엔 어색했는데 전보다 시간은 단축된 듯하다"고 말했다.
 
여러 장의 종이 서식을 핵심 내용으로 재구성해 디지털로 전환한 '간편 서식' 덕분이다. 만일 이 은행 신규 고객이 입출금통장과 체크카드를 만들려면 15분이 걸렸지만, 디지털 창구에선 7분으로 줄어든다.
 
한 행원은 "영업점에선 업무처리 점검이나 BPR 발송 등 마감 업무가 빨라졌다"며 "이른바 '워라밸'이 가능한 업무 환경이 차츰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4월부터 쏠깃(SOL kit) 서비스를 통해 전국 모든 창구에서 태블릿PC를 활용한 상담서비스를 진행한다. [사진 신한은행]

신한은행은 4월부터 쏠깃(SOL kit) 서비스를 통해 전국 모든 창구에서 태블릿PC를 활용한 상담서비스를 진행한다. [사진 신한은행]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10월 3개 점포를 시범 운영하고 현재 50여개로 확대했다. 연내 전 영업점에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만일 온라인으로 영업점 방문을 예약한 고객은 보유한 금융상품과 투자 성향 등을 바탕으로 추천 상품 안내장 및 상품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제공하는 '디지털 안내장 알림' 서비스를 도입했다. 
 
KEB하나은행도 최근 "연내 전 영업점 창구를 디지털 시스템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7월부터 차례로 도입한다.
 
은행권의 페이퍼리스 움직임은 '종이 없는 사회'를 추진하는 정부의 큰 그림과도 무관하지 않다. 정부는 각종 문서나 서류를 전자문서로 작성, 보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전자문서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은 2020년 9월까지 종이통장을 발급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통장 기반 금융거래 관행 혁신방안'도 내놨다. 그때까진 원하는 사람은 종이통장을 발급받을 수 있다.
 
한구 금융감독원 은행감독국 팀장은 "인터넷·모바일뱅킹이 보편화한 데다 종이통장을 분실했을 경우엔 다른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종이 없는 은행은 고령층 등 디지털 소외계층을 더 소외시킨다는 우려가 있지만 페이퍼리스가 그처럼 급진적으로 이뤄지진 않을 것"이라며 "과도기를 거치면 금세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새누리 기자 newwor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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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