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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의 자본주의 vs 블랙팬서의 국가주의

[윤석만의 인간혁명]국가와 기업이 경쟁하는 시대③
마블 히어로인 블랙팬서와 아이언맨. 영화에서 블랙팬서는 와칸다 왕국의 국왕인 티찰라가, 아이언맨은 스타크 인더스트리 기업의 오너인 토니 스타크가 주인공이다. [마블]

마블 히어로인 블랙팬서와 아이언맨. 영화에서 블랙팬서는 와칸다 왕국의 국왕인 티찰라가, 아이언맨은 스타크 인더스트리 기업의 오너인 토니 스타크가 주인공이다. [마블]

영화 ‘블랙팬서(Black Panther·검은 표범)’는 아프리카 최빈국인 와칸다(가상국가)의 국왕 티찰라(채드윅 보스만)가 주인공입니다. 블랙팬서로 변신한 티찰라가 지구 최강의 희귀금속 비브라늄을 훔치려는 악당들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죠. 올 초 개봉해 미국에선 ‘아바타’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5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영화에서 10만 년 전 우주로부터 떨어진 비브라늄은 와칸다에만 존재하는 신비의 물질입니다. 지구에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도 파괴할 수 없죠. 또한 물질 자체에 에너지를 흡수하는 능력이 있어 이것으로 만든 무기는 외부에서 받은 충격을 그대로 저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브라늄으로 만든 블랙팬서의 슈트는 맞으면 맞을수록 그의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들죠.
 
 와칸다는 비브라늄이 세상에 알려지면 국가가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생각해 수 천 년 동안 비밀에 부쳐왔습니다. 그 대신 비밀리에 비브라늄을 활용한 과학기술을 발전시켰죠.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최첨단 과학문명을 갖게 됐지만 여전히 많은 비밀을 간직한 채 외부엔 가난한 나라인 것처럼 위장하며 살고 있습니다. 국제기구인 UN조차 와칸다는 목축과 수렵이 주요 산업인 나라로 인식하고 있죠.
영화 속에 묘사된 와칸다 왕국은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을 가진 나라다. [마블]

영화 속에 묘사된 와칸다 왕국은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을 가진 나라다. [마블]

 하지만 와칸다의 험준한 산 속 깊은 곳엔 비브라늄으로 만든 최첨단 도시가 숨어 있습니다. 도시 전체가 스텔스(stealth) 기능이 있어 외부에선 존재조차 알 수 없습니다. 도시 안엔 수백층 높이의 마천루가 즐비하고 사람들은 개인용 비행기를 타고 다닙니다. 현대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병도 의료용 캡슐 안에 들어가면 완벽하게 치료되죠. 이 모든 것이 비브라늄을 활용한 덕분입니다.
 
 결국 영화 속에서 ‘와칸다는 곧 비브라늄’인 셈입니다. 그렇다 보니 와칸다의 모든 산업과 경제는 국가 주도로 움직입니다. 비밀이 조금이라도 밖에 새어 나가면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어느 한 개인이 비브라늄을 소유하거나 가공할 수 없죠. 비브라늄을 활용한 모든 기술과 산업이 국유로 운영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구를 지키는 일까지 기업의 몫
 이는 어벤저스의 원조인 ‘아이언맨’과는 정반대입니다. 이 영화에선 모든 이야기가 ‘스타크 인더스트리’라는 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은 괴짜 과학자 토니 스타크는 자신의 회사에서 지구를 지키는데 필요한 모든 물건을 만들어냅니다. 어벤저스의 멤버인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도, 스파이더맨의 최첨단 수트도 모두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작품이죠.
'아이언맨'에서 지구를 지키는 일은 아이언맨과 그의 친구들이다.이들은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개발한 로봇 수트와 무기를 이용해 적과 싸운다. [마블]

'아이언맨'에서 지구를 지키는 일은 아이언맨과 그의 친구들이다.이들은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개발한 로봇 수트와 무기를 이용해 적과 싸운다. [마블]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했을 때 맞서 싸운 이들은 아이언맨과 그가 만든 로봇들, 또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발명한 제품을 착용한 히어로들입니다. 이 때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은 뭘 하느냐고요? ‘쉴드’라는 조직을 만들어 아이언맨과 히어로들을 지원합니다. 하지만 그 역할은 매우 미미해 ‘들러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아이언맨의 세계관에선 지구를 지키는 것과 같은 중요한 일도 스타크 인더스트리라는 기업의 몫인 거죠.
 
 지난 주 ‘인간혁명’에선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들이 도시 전체를 지배하는 ‘기업국가’의 미래를 살펴봤습니다. 타이탄(거인)이 된 초국적기업들이 국가에 맞먹는 권력을 갖게 되면서 정부까지 대체할 수 있다는 전망을 살펴봤죠. 아이언맨의 스타크 인더스트리도 그런 기업 중 하나일 겁니다.  
 
 그러나 시장 독점으로 국가까지 넘보는 초국적기업에 대한 우려는 오히려 정부의 힘을 키우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소수의 기업에 과도한 힘이 몰릴 경우 이를 견제하기 위해 국가 권력이 강화돼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특히 최근 페이스북이나 구글처럼 기업의 개인정보 침해 문제가 불거질 경우 기업과 시장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더욱 잦아질 수 있죠.
패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중앙포토]

패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중앙포토]

씀씀이 커진 정부, 몸집도 불려야
 미래에 국가 권력이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타이탄 기업과 그 소유주에게 과도한 부가 집중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서죠. 즉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시장을 관리하고, 이를 위해 정부의 힘이 더욱 세져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둘째는 와칸다의 비브라늄처럼 국가의 안보, 또는 국민 생활과 직결된 핵심자원과 원천기술은 기업의 사적 소유로만 맡겨둘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먼저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정부의 씀씀이가 지금보다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상위 20%만 의미 있는 직업을 가질 것”이라는 일론 머스크의 예측처럼 미래의 정부는 AI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위해 기본소득을 제공하게 될 겁니다. 80%의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주기 위해선 정부의 몸집이 더욱 커져야 한다는 것이죠.
일론 머스크 테슬라모터스 최고경영자. [중앙포토]

일론 머스크 테슬라모터스 최고경영자. [중앙포토]

 이미 여러 나라에선 기본소득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로봇세’ 같은 논의를 시작했죠. 한국도 국회 연구단체 등을 중심으로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금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기업을 운영해 수익을 벌어들이고 이를 국가 재정으로 충당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 정부는 기술혁신에 따른 성과가 소수의 기업인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부를 재분배해야 할 의무도 있고요.
 
 그렇게 되면 미래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국가체제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경희대 미래문명원장을 지낸 안병진 교수는 “2050년경의 세계는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융합된 형태의 새로운 체제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며 “기업의 힘이 더욱 강해지겠지만,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가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시도 역시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과거에도 석유, 구리광산 등 국유화
 정부의 힘이 더욱 커질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는 핵심 자원과 원천기술의 중요성이 계속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와칸다 왕국의 비브라늄처럼 과거에도 중요한 자원은 국가가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는 사례들이 많았습니다. 1951년 이란의 무함마드 모사데크 총리는 ‘이란 석유를 이란인의 손에 돌려주겠다’며 석유산업을 국유화 했습니다. 물론 미국과 영국의 석유기업이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되자 두 나라 정부가 모사데크를 축출하면서 오래 가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시도는 계속됐습니다.  
아옌대 전 칠레 대통령.

아옌대 전 칠레 대통령.

 
 1970년 칠레에서 집권한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도 구리광산을 국유화 했습니다. 당시 칠레는 전 국민의 40%가 영양부족에 시달릴 만큼 빈부격차가 심했습니다. 하지만 소수의 기업들이 칠레 수출액의 80%에 달하는 구리 생산을 독점했습니다. 이들의 상당수는 미국 기업이었고요. 당시 아옌데는 “일부 회사가 구리사업을 통해 취하는 이득이 국민소득과 맞먹는다. 이들은 칠레 국민으로부터 국가 전체를 약탈해 갔다”며 시장에 적극 개입했습니다.
 
 이처럼 기업과 자본의 독점현상이 심화될수록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장을 통제하려는 국가의 힘은 더욱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엔 국가와 기업이 힘겨루기를 벌일 대상이 천연자원만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빅데이터와 AI 등을 활용한 원천기술이 국유화 논란의 중심에 설 가능성이 큽니다.
 
미래엔 AI·빅데이터 기술도 국유화 가능성
 빅데이터는 개인이 생산해낸 정보와 이들로 이뤄진 사회 전체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의 총합입니다. 기업은 지금도 빅데이터를 활용해 온갖 사업을 벌이지만 데이터의 생산자인 개인은 기업의 영리활동을 통한 보상을 적절하게 받고 있지 못합니다. 하지만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개인정보 주권’이라는 관점에서 개인의 정보를 활용해 비즈니스를 할 경우 해당자에게 적절한 수익이 돌아가도록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빅데이터는 언젠가 기업의 소유물이 아니라 공공의 재산이라는 인식이 생겨날 가능성이 큽니다.  
 
 AI 기술 역시 마찬가집니다. 미래 사회엔 온갖 영역에서 AI가 쓰일 겁니다. 전파와 통신, 철도와 항만, 도로 같은 SOC처럼 모든 산업의 근간이 될 거란 이야기죠. 그렇게 되면 AI 기술 역시 공공재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가 직접 AI와 관련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소유할 수 있습니다. 재정을 투입해 기업과 대학의 연구·개발을 지원했다면 그로 인한 일정 지분을 요구할 수도 있고요.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계속 강화하고 있는 두 나라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앙포토]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계속 강화하고 있는 두 나라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앙포토]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하면 정부의 시장 개입도 더욱 수월해집니다. 중국이 대표적이죠. 2017년 10월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시진핑 주석이 디지털 시대의 마오쩌둥을 꿈꾸고 있다”며 “시 주석은 빅데이터와 AI 기술을 활용해 과거의 오류를 보완하고 중국 경제의 세세한 부분을 관리하려는 밑그림을 그리는 중”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도 2017년 5월 ‘빅데이터 산업포럼’에서 “지난 60년간은 시장경제가 계획경제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지만 30년 후엔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며 “최첨단 정보처리 기술은 시장을 더욱 총명하게 만들어 계획과 예측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보다 더 효율적이며, 앞으로 더욱 강화될 거란 주장이죠.  
마윈 알리바바 회장. [중앙포토]

마윈 알리바바 회장.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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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로선 블랙팬서 같은 국가주의 모델이나, 아이언맨과 같은 기업주의 시스템 모두 미래 사회에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역사는 어느 한 쪽의 힘이 매우 강력해졌을 때 많은 갈등과 희생을 치러야 했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죠. 국가가 직접 시장을 통제하고 관리하든, 초국적기업이 정부의 역할을 대체하든 한 편에 치우친 미래는 우리의 삶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요. 국가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고 그 안에서 기업은 무엇을 해야 좋을까요. 국가와 기업이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통해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다음 회에서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윤석만의 인간혁명‘은 매주 일요일 아침 업데이트 됩니다.
 
#홈페이지(http://news.joins.com/issueseries/1014)
윤석만 기자는
 윤 기자는 2010년부터 교육 분야를 취재했다. 특히 인성·시민 교육 및 미래와 관련한 보도에 집중했다. 성적·스펙보다 협동·배려·공감 등의 인성역량이 핵심능력이 될 것이란 주제로 ‘휴마트(humanity+smart) 씽킹’이란 책을 냈다. 더불어 다가올 미래를 인문의 관점에서 통찰한 '인간혁명의 시대'를 썼다. 유네스코가 15년마다 주최하는 세계교육포럼에서 세계시민교육 심포지엄 기조발표를 했다. 중앙인성연구소 사무국장을 겸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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