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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의 통영놀이 : 그냥 지나가질 않네

“어제도 여기 왔었는데요. 옥상에서 카메라 들고 왔다갔다 하는 걸 봤는데요.”
 
어제 오기로 한 유리집 아저씨는 미안했는지 현관문 열고 들어오면서 한 마디 던진다. 도로명 주소로는 헤맬 것 같아 ‘지장암’이라고 했더니 금세 찾아온다. 이사 오기 전까지 할머니 홀로 이십 년 넘게 부처님을 모셨던 곳이다. 큰 방 천정에는 연꽃이 달려있었고 그림이 걸린 벽 쪽엔 부처님께서 반질거리는 미소를 띠며 앉아있었다.  
 
통영에선 뭐든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서울이라면 유리를 갈거나 인터넷을 설치하러 와서는 그저 제 할 일만 잘하면 된다. 좀 더 보태 “오늘 날씨가 참 따뜻하다”거나 애프터서비스를 저렴하게 받는 요령 따위를 가볍게 건네주면 충분하다. 괜히 “집안 잘 꾸몄다”거나 “언제부터 이 집에서 사느냐”고 묻는다면, 실례를 넘어 잠재적인 범죄자로 오해받기 쉽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제 할 일만 잘하기. 서울살이를 잘 견뎌내는 요령이었다.  
 
그런데 통영은 달랐다. 어제 난방유를 채우러 온 아저씨는 몇 달 전부터 집 공사하는 걸 봤다며 얼마에 샀느냐고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았다. 옆 집은 1년 전에 서울 사람이 샀는데 세를 내주고 지금은 제주에 산다며 역시 묻지도 않았는데 귀띔해주었다.  
통영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이며 나의 본적지다. 어릴 때 잠깐 살았다는데, 사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지난해 친구와 일하러 왔다가 이 집을 소개받고, 옥상에 올라가 바다를 본 뒤, 그 자리에서 계약했다. 함께 집을 고쳐 지장암은 이제 ‘믿는구석통영’이 되었다. 골목길 첫 번째 집과 옆구리 높이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있다.  
 
옆집 마당엔 시베리안 허스키가 된똥을 싸놓고 팔손이 나무 아래 낮잠을 즐기며 뒹굴곤 한다. 어제 저녁엔 옆집 아저씨가 찾아왔다. 딸내미 입학한다고 새 운동화를 주문했는데 도착하지 않아 혹시 이곳으로 왔나 싶어 달려왔단다. 워낙 붙어있다 보니 택배 아저씨도 가끔 헷갈린다. 아저씨는 얼마나 급했던지 아래 위로 히트텍 차림이었다. 언덕 아래 앞집은 3층짜리 건물인데 마당이 무척 넓다. 아침마다 아주머니는 꽃무늬 조끼에 챙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물 주고 잡초를 뽑았다. 보고 싶지 않아도 다 보인다.  
 
서울에서 살림살이를 싣고 밤늦게 다리 밑 주차장에서 짐을 내리다가 담배 피우러 나온 앞집 아저씨와 처음 마주쳤다. 이 밤에 뭐 하냐며 경계하듯 물었다. 뒷집 ‘지장암’으로 이사한다고 했더니 금세 표정이 풀렸다. 안 그래도 공사하는 거 쭉 지켜봤는데 어쩐지 통영 스타일이 아니더라며 말을 건넸다. ㅅ약국 ㅇ약사님이 아버지 친구라고 했더니 “니가 ㅇ약사 친구 아들이가?”라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는 마당에서 채소도 기르니까 언제든지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오늘 아침 동백나무에 물을 주는데 옆집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가볍게 인사를 건넸더니 담 넘어 말 없이 검은 봉지를 건네준다. 요구르트 세 개가 들어있었다.  
 
P.S. 서울에서 왔다니까 유리집 아저씨는 통영에선 웬만하면 눈 구경, 얼음 구경을 할 수 없다, 고성만 가도 추워서 얼음이 많다며 슬쩍 자랑한다. 그런데 요즘 동네 집들이 사부작사부작 외지인들한테 넘어간다며 아쉬워했다. 곧바로 고향이 통영이라고 했더니 얼굴이 금방 환해졌다. 살기에 이만한 데 없다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
 
작가ㆍ일러스트레이터ㆍ여행가. 회사원을 때려치우고 그림으로 먹고산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호주 40일』『밤의 인문학』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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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