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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바꿔라, 모두 똑같은 집에 사는 재미없는 사회를 바꿔라"

‘2016 하우스 비전 도쿄’ 전시회에서 숙박 공유기업 에어비앤비와 건축가 하세가와 고가 선보인 ‘요시노 향나무’집. 1층은 주민회관, 2층은 게스트하우스로 쓰고 있다.

‘2016 하우스 비전 도쿄’ 전시회에서 숙박 공유기업 에어비앤비와 건축가 하세가와 고가 선보인 ‘요시노 향나무’집. 1층은 주민회관, 2층은 게스트하우스로 쓰고 있다.

오늘날 집은 ‘문제적 이슈’다. 사람들을 몰고 다닌다. ‘로또 청약’으로 소문난 강남 재건축 현장이 대표적인데, 24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살림터 3층에도 사람들이 운집했다. 의미는 달랐다. 자산 증식을 위한 집이 아니라, 내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미래의 집을 고민해보자는 자리였다. 일본 디자인계의 거장 하라 켄야(原研哉·일본 디자인센터 대표·60)가 “집을 통해 디자인하고, 행동하자”며 2011년 일본 도쿄에서 론칭한 프로젝트 ‘하우스 비전’을 직접 설명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하우스 비전-서울’의 고민도 더해졌다.  
 
참가 신청을 받은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250명 정원의 세미나에 600명이 넘게 몰렸다. 의자가 부족해도 사람들은 계단과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강의에 열중했다. 왜 집을 고민해야 하고,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중앙SUNDAY S매거진이 이날 하라 켄야를 만나 물었다.  
숙박 공유기업 에어비앤비와 건축가 하세가와 고가 선보인 ‘요시노 향나무’집의 1층

숙박 공유기업 에어비앤비와 건축가 하세가와 고가 선보인 ‘요시노 향나무’집의 1층

 
‘하우스 비전’이란 무엇인가.  
“집은 여러 산업을 한 데 담을 수 있는 플랫폼이다. 식료품ㆍ통신ㆍ물류ㆍ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의 교차점이다.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새로운 산업의 가능성을 집을 통해 보여주는 일, 그게 ‘하우스 비전’이다. ”  
 
‘요시노 향나무’집

‘요시노 향나무’집

‘하우스 비전’이 왜 필요한가.  
“나는 건축가도 아니고, 주택 산업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무인양품’의 아트디렉터이자 고문으로 있으면서 취급하는 제품 수가 40여 개에서 현재 7500개로 늘었다. 내가 사는 집을 스스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요 타깃층인데, 그렇다 보니 고민이 집으로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됐다. 디자인은 미래를 가시화해야 하는 영역인데, 디자이너로서 미래 비전을 제시하며 깨달음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본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주체성을 가진, 진화된 나라 일본을 만들고 싶었다.”  
 
택배 회사 야마토 홀딩스와 산업 디자이너 후미에 시바타가 협업한 주택. 물품 보관용 문이 밖에 하나 더 있다.

택배 회사 야마토 홀딩스와 산업 디자이너 후미에 시바타가 협업한 주택. 물품 보관용 문이 밖에 하나 더 있다.

하우스 비전을 통해 어떤 변화가 생기고 있나.
“과거에는 새 집에서 사는 것이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오래된 집이라도 내 입맛에 맞게 고쳐 살아야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내가 만드는 집’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2016년 도쿄 전시회에서 냉장고가 집 외부에서 열리는 집을 선보이면서, 삶에서 물류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본 사회에 인식시켰다. 지난 전시에서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스케는 집 한가운데에 부엌을 둔 집을 선보였다. 가사 노동의 공간에서 가족이 모이는 공간으로 바뀐 부엌의 모습이었다. 주방용품 관련 업계에서도 기능만 따지기보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서 주방 공간을 디자인하는 변화가 생겼다.”  
욕실업체 릭실과 건축가 반 시게루의 코어(배관)가 하나로 합쳐진 집

욕실업체 릭실과 건축가 반 시게루의 코어(배관)가 하나로 합쳐진 집

 
집은 산업의 플랫폼, 우리에게 필요한 집을 디자인하라
미츠코시 이세탄과 건축가 타니지리 마코토의 ‘노마드 하우스’

미츠코시 이세탄과 건축가 타니지리 마코토의 ‘노마드 하우스’

‘집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라’, ‘집은 산업의 플랫폼이다’.  
하라 켄야의 ‘하우스 비전’ 프로젝트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2016년 도쿄 전시회에서는 실물 크기의 집 12채가 전시됐다. 건축가와 기업이 1대 1로 매칭해 협업한 결과물이었다. 주제는 함께(Co)와 개인(Individual)의 합성어인 ‘코-디비주얼(Co-dividual)’. 사람들이 더이상 함께 살지 않지만 연계해 살아가는 집을 고민하자는 의미였다.  
파나소닉과 건축가 나카야마 유고가 협업한 ‘IoT(사물인터넷)하우스’

파나소닉과 건축가 나카야마 유고가 협업한 ‘IoT(사물인터넷)하우스’

 
가장 각광받은 집은 택배 회사 야마토 홀딩스와 산업 디자이너 후미에 시바타가 협업한 주택이었다. 이 주택은 물품을 보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문을 집 밖에 만들었다. ‘문을 하나 더 두는 삶’이라는 컨셉트로, 냉장고 문을 밖에서 열게 한 집이다. 사람이 없을 때 배송 기사가 그 문을 열고 냉장식품을 두고 갈 수 있게 했다. 하라 켄야는 “어떤 물건이 이 문을 통해 주로 배송됐는지 추적하면 독거인들의 삶을 살피고 돌볼 수 있게 된다”며 “집에 문 하나 더 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숙박 공유기업 에어비앤비와 건축가 하세가와 고가 지은 ‘요시노 향나무’집은 실제로 나라현 요시노(吉野) 마을에 세워졌다. 고령화 마을을 위한 해법으로 지역 특산품인 삼나무로 만든 집의 1층은 주민회관, 2층은 에어비앤비로 쓰게 했다. 파나소닉과 건축가 나가야마 유코가 협업한 ‘IoT(사물인터넷)하우스’는 심플한 나선형 공간에서 IoT를 활용해 누리는 다채로운 삶을 보여줬다. 그는 “임대주택 건설회사와 건축가가 협업해 공유 공간이 풍성한 임대주택 타워를 선보이거나, 욕실용품 회사와 반 시게루가 협업해 전기ㆍ물ㆍ공기 등 모든 배관이 하나로 통합한 자유로운 구조의 집도 관심을 모았다”고 전했다.  
무인양품과 아틀리에 보우&와우의 도시농부 주택

무인양품과 아틀리에 보우&와우의 도시농부 주택

 
한국에서 집은 부동산이다. 일본은 다른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발하면서 개념이 바뀌었다. 집은 자산이 아니라, 살기 위한 곳이다. 일본에서도 고도 성장기에 땅값과 집값이 올라가면서 집을 자산으로 여겼다. 그 시기를 지나 성숙한 사회를 맞았고, 이제는 개인의 행복을 더 추구하게 됐다. 집을 자산으로 보기보다는 살기 좋은 환경으로 바꿔나가는 곳이며 그런 사람을 교양있는 사람이라 여기는 분위기다.”  
 
돗판인쇄와 하라 디자인 센터의 우드그레인 하우스

돗판인쇄와 하라 디자인 센터의 우드그레인 하우스

‘하우스 비전-서울’이 출범한 지 1년째다. 그동안 살핀 서울 주거의 문제점이 있다면.
“(길게 고민하다) 사실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한 가지를 꼽자면, 삼성ㆍLGㆍ현대 같은 대기업에서 일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격차가 심한 것 같다. 수입 격차에 따른 주거의 모습이 노골적으로 다르게 드러나는 사회인 듯하다. 하지만 꼭 현대적인 아파트에 사는 게 멋진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똑같이 성공해 똑같은 집에 산다면 재미없는 사회이지 않을까. 자기 삶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로 서울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왜 지금껏 똑같은 집을 만들며 살아왔을까.
“한국의 경우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유럽 스타일의 아파트를 많이 짓게 됐다. 그 탓에 집의 역사와 지혜 즉 오랜 시간 축적된, 선조의 지혜가 담긴 집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것 같다. 한국도 성숙한 사회로 바뀌면서 이를 보존하자는 흐름이 생길 것이다. 일본에도 최근에서야 트렌드가 됐다. 글로벌 시대이지만, 글로벌한 문화는 사실 없다. 문화는 지역에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시대를 맞이해 아시아에서 시작된 새로운 디자인, 삶의 방식이 세계로 퍼져나갔으면 한다.”  
다이토 트러스트 건설과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의 공유주택

다이토 트러스트 건설과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의 공유주택

 
9월 전시를 앞두고 있는 ‘하우스 비전-베이징’의 경향은 어떤가.  
“베이징은 격변하고 있는, 첨단화된 도시다. 세계 도시 중에서도 기술 변화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도시다. 도시의 땅값이 엄청나게 올라 주거 문제가 심각해졌다. 젊은이들이 월급받아 베이징에서 집을 살 수 없는 환경이 됐고, 두 시간 걸려 출퇴근하는 직장인도 집값 내기가 힘들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처럼 집은 사회 문제의 바로미터다. 베이징의 화두 중 하나는 ‘얼마나 작은 집에서 인간이 살 수 있을까’다. 일본 건축가 하세가와 고가 맡고 있는 무인양품의 베이징 사택 프로젝트다. 버려진 창고를 사택으로 만드는데, 미래에 필요한 최소의 집을 실험할 예정이다. 또 에너지 절감 기술이 반영된 집에 대한 관심도 높다.”  
욕실업체 토토와 창호업체 YKK AP의 ‘인사이드 아웃, 퍼니쳐 룸’

욕실업체 토토와 창호업체 YKK AP의 ‘인사이드 아웃, 퍼니쳐 룸’

 
창문이 일하는 집…‘하우스 비전-서울’의 화두는
현재 ‘하우스 비전’은 일본을 넘어 중국(베이징), 홍콩(방콕), 인도네시아(자카르타) 등 아시아 6개국이 동참하고 있다. ‘하우스 비전-서울’의 경우 서울디자인재단이 지난해 2월 하우스 비전을 주최하는 니폰디자인센터(대표 하라 켄야)와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출발했다. 내년께 실물 사이즈 집 전시회를 연다는 목표로, 건축가ㆍ디자이너로 구성된 14개 팀이 한국에 필요한 미래의 집을 구상하고 있다. 각각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게 협업할 기업을 찾는 중이다. 건축가 최욱(건축사사무소 원오원 대표)은 신세계 인터내셔날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자주’와 함께 조선시대 주거의 기능과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현재에 적용할 수 있는 집 유형을 제시하겠다는 목표를 삼았다.  
 
미세먼지에 대응하기 위해, 필터 장착 창문을 설치한 ‘창문이 일하는 집(디자이너 김종범)’의 아이디어도 돋보인다. 창문을 통해 실내 환경을 쾌적하게 만들면서 식물 재배도, 빨래 건조도 가능하게 했다. 또 자녀 독립 후 집의 일부를 동네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활용하게 하는 ‘도시세대 중년부부의 홀가분 하우스(건축가 임태병)’, 도시 편의점에 농장 기능을 넣어 야쿠르트 배달망으로 신선한 채소를 지역에서 소비할 수 있게 하는 ‘편의전(라이프스타일 프로듀서 나훈영)’도 흥미롭다. 집을 고민하면 삶이 바뀌는 현장을 ‘하우스 비전 -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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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