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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唐宋)의 명작을 노래하다

‘꽃뱀’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고교 1학년 봄 국어교과서에서 읽은 미당의 ‘화사’(花蛇)는 충격이었다. “…크레오파트라의 피 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이다…슴여라! 배암.” 선연히 떠오르는 이미지에 소름이 돋았다.  
 
시와 친하지 않지만 미당 서정주의 시 세계는 동경했다. 군 복무 시절 관물대에 김화영의 『미당 서정주 시선집』이 꽂혀 있었고, 친구의 헌책방에 갔을 때는 낡은 책들 사이에서 민음사의 『미당 서정주시 전집』을 찾아냈다. 지리산 종주 산행을 하면서 일부러 질마재를 찾기도 했다. 『질마재신화』에 실린 ‘신부’(新婦)의 그 희극적 비극 이미지는 요즘도 불시에 떠오른다.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의 신부가 초록 재와 다홍 재로 폭삭 내려앉는 장면 말이다.  
 
등려군이 당송의 시를 노랫말로 부른 음반 ‘담담유정’

등려군이 당송의 시를 노랫말로 부른 음반 ‘담담유정’

미당의 시는 아름다운 노래가 되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으로 기억된다. TV방송사의 가사 경연 프로그램에서 ‘푸르른 날’이 대상을 받았다. 가수는 송창식이었다. 나의 우상 송창식은 흰 두루마기 차림으로 방송사 공개홀까지 나온 미당에게 넙죽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 송창식은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구절을 절규와도 같은 장탄식으로 불러 그리운 님이 없다면 푸르른 날도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노래했다. 노랫말에 대한 이해, 천부적 선율 감각이 명곡을 탄생시켰다.  
 
빼어난 문학작품이 명곡으로 새 생명을 얻는 것은 아무래도 중국이 앞선다. 최근 ‘담담유정’(淡淡幽情)이라는 음반을 알게 됐다. 대만 출신 여가수 등려군(鄧麗君·1953~95)이 노래를 불렀다. 등려군(덩리쥔)은 대만·홍콩·일본·중국 등 동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한국에는 상대적으로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나도 영화 ‘첨밀밀’의 주제가를 부른 가수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그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녀는 천안문사태 항의 집회에 참석하는 등 중국 민주화운동에도 참여해 노래들이 금지곡으로 묶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륙에서 그녀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90년대 중국은 “낮에는 등소평, 밤에는 등려군이 다스렸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담담유정’은 당송(唐宋)문학이 가사로 쓰였다. 1000년 전 대륙 문인들의 글이 중화권 대중가요의 가사로 활용된 음반을 보니 부럽다. 우리도 이렇게 할 수 있을 텐데. ‘공무도하가’ ‘가시리’ 등이 떠오르지만 산발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낯익은 이름 동파 소식(蘇軾)이 보인다. 11세기 송나라 관리지만 대표작 ‘적벽부’와 함께 21세기 한국인도 중학생만 되면 알아야 하는 인물이다. 음반에는 그의 사(詞) ‘단원인장구’(但願人長久)가 실려 있다. 어느 해 추석 술을 마시다가 크게 취하여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아우 철(轍)을 그리워하며 지었다고 한다.  
 
“밝은 달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 술잔 들고 푸른 하늘에 물어보네 /…/ 사노라면 기쁨과 슬픔이 있고 / 저 달도 차고 기울며 밝고 어두움이 있네 /…/ 다만 그대가 무사히 잘 지내어 / 천리를 떨어져 있어도 저 아름다운 달빛 함께 보길 바라네.”  
 
담담하지만 스케일 크고 인류 보편의 정서를 진솔하게 노래했다. 오랜 세월 칭송받는 이유다. 문학사의 걸작은 등려군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만나 절창을 이루었다. 진추하가 귀여운 여동생이라면 등려군은 기품있는 누이의 분위기를 띤다.  
 
소동파와 달리 미당은 식민지 시인이었다. 1915년 일제 천하에서 태어나 서른이 되어서야 해방을 맞았다. 최근 다른 일로 유명해진, En이라는 암호로 불리는 노시인은 미당의 친일을 비판했다. 헌데 그는 1958년 미당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왔다. 추천을 받을 당시에는 스승의 친일행적을 몰랐단 말인가. 그는 미당을 “세상에 대한 수치가 결여된 체질”이라고 논평한 바 있다. ●
 
글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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