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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안 돼요는 돼요? … 은장도 들 정도라야 피해자로 봐

여성 변호사회와 함께 진단한 포스트 미투 전략
이번 미투 운동에서 권력형 성폭력 혐의로 고발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안 전 지사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은 우리 사회의 권력형 성폭행에 대한 견제의 부실한 사례로 지적된다. [연합뉴스]

이번 미투 운동에서 권력형 성폭력 혐의로 고발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안 전 지사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은 우리 사회의 권력형 성폭행에 대한 견제의 부실한 사례로 지적된다. [연합뉴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걸 놓고 언론과 법조계 주변에선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대세다. 안 전 지사의 정무비서 성폭행 폭로는 두 달째 이어지는 우리 사회 ‘미투(#Me Too)운동’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다. 그럼에도 일부 여론의 갑론을박은 있지만 영장기각 자체가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분위기다. 그만큼 미투 운동이 겨냥한 ‘권력형 성폭력’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무감각하고 관대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미투운동은 ‘권력형 성폭력’과의 전쟁이다. 포스트 미투는 권력형 성폭력을 뿌리뽑고 여성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 그러나 안 전 지사의 사례에서 보듯이 그 싸움은 녹록치 않다. 이에 성폭력 사건 일선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여성변호사회 변호사들로부터 ‘포스트 미투’ 전략을 들어봤다. 여성변호사회는 ‘권력형 성폭력’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세미나(4월6일)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미투운동에서 불거진 사건들의 경우 성폭력과 관련된 현행법상으로도 대부분 다룰 수 있는 범주 안에 있는 것이었다. 법이 아니라 우리 사법기관들이 성폭력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과 편견때문에 지금의 미투 상황까지 오게 됐다”고 변호사들은 입을 모았다. 특히 우리 사법적 판단의 기준은 거절의사를 확실히 표시했느냐이다. 그런데 많은 여성들은 거절의 몸짓이나 행동으로 거절을 하지만, 여성의 거절은 의례적인 것이고 속마음은 ‘안 돼요 돼요’라고 해석하는 게 일상적이다. 여성의 거절은 거절(No means No)이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먹히지 않는다. 이처럼 거절의 진정성을 밝히는 건 힘이 든다는 것이다.
 
변호사들이 제안한 대안은 “우리 사법부도 이젠 판단의 기준을 ‘거절’이 아닌 ‘동의’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스라고 한 성관계가 아니면 성폭력으로 보는 ‘예스 민스 예스(Yes means Yes)’의 사회. 이는 유럽 국가 등에서 광범위하게 판결의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과거 ‘노 민스 노’에서 ‘예스 민스 예스’로 바꾸는 사회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더 나가 법률상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강조했다. 실제로 우리 사법기관들은 성폭력이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라는 사법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정조’의 틀 안에서 오락가락하는 왜곡된 관념이 우리 사법적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어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정형화된 성폭력 기준=한국 수사기관과 법원이 인정하는 ‘성폭력’은 정형화돼 있다. 강간은 폭행과 협박의 증거가 분명해야 하고, 준강간은 피해자가 항거불능의 상태였는지를 판단한다. 이때문에 여성은 폭행당한 상해의 흔적을 증명해야 한다. 또 수사기관이 항거불능을 판별하는 기준도 불투명하다. 주로 성폭행 장소 CC-TV를 통해 여성이 술에 취한 걸로 보이면 항거불능이 인정되고, 그다지 취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가해자가 무혐의 처리되는 게 일반적이다. 최근 미투운동의 중심이 되고 있는 ‘위력에 의한 간음’의 경우는 그동안 미성년자와 장애인의 경우 일부 인정됐을 뿐, 성인 여성들에겐 대단히 엄격하다. 상사로부터 한 차례 성폭행을 당한 뒤 즉시 신고한 경우에만 처벌되는 게 일반적이고, 시간이 경과했거나 여러 차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경우는 인정받지 못했다. 안 전 지사의 경우도 비서를 상대로 지속적으로 성적 괴롭힘을 자행했지만 피해자는 물리적으로 거부하지 못했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직장과 연계된 문제다. 여성은 생계와 폭력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는데 이러한 고민의 시간과 생계문제에 대한 사정 등은 고려되지 않았다.
 
#‘보호할만한 피해자’라는 고정관념=피해여성이 성폭행 이후 치킨과 족발을 먹는 사진을 SNS에 올렸다는 이유로 그를 ‘보호할만한 피해자’로 볼 수 없다는 판결까지 나오는 게 우리 실정이다. 성폭행 후 잠들어 자고 나왔다거나 다음날 아침 해장국을 함께 먹었다고 피해자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피해자를 대상으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가리는 ‘피해자 차별’은 다른 형사사건에선 볼 수 없는, 성폭력 사건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다. 우리 법원은 지고지순하고 선량한 여성, 성폭행을 당한 후 공황장애에 이를 정도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만 보호할 만한 피해자로 보는 ‘피해자상’을 가지고 있다. 피해자가 피해 이후에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거나 웃는 사진만 찍어도 의심을 받는다. 이때문에 가해자 측은 피해자의 평소 행실을 문제삼고, 신상털기를 하는 등 2차 가해로 발전하는 일이 빈번하다.
 
#완곡한 거절, 거절로 안 봐=성폭력 사건에선 여성의 ‘단호한 거절’이 핵심이다. 완곡한 거절은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공개된 장소에서 윗사람의 성희롱 발언에 대해 즉각 반응하지 못하고 웃음으로 넘기는 경우 이를 동의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신체를 만질 때 단호하게 뿌리치지 않고 참거나 완곡하게 거절해도 좋아했다고 가해자들은 주장한다. 한국 여성들은 단호한 거절 교육을 받지 못해 거절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 법원은 과거 은장도로 자기 목을 겨누는 정도의 항거를 해야 ‘진짜 거절’이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적극적 거절의사 표현의 한계=여성들에게 ‘적극적 거절의사를 표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다. 그러나 성 문제뿐 아니라 다른 일상사들도 인간관계가 얽힌 문제에는 순간적으로 분명하게 가부의 의사표시를 하기 어려운 게 인지상정이다. 성문제는 더욱 민감하고, 대부분 아는 사이에서 일어나고, 이후의 인간관계 등 고려해야 할 사안이 많다는 점에서 분명한 거절보다 완곡한 거절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 폭행이나 위협을 당할 때는 피해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오히려 다독이거나 자극하지 않으려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위기에서 벗어난 이후에야 피해감정이 형성된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도 증명돼 있다. 그럼에도 즉시 항거, 즉시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삼는 경우가 많다. 많은 성폭력 사건은 남녀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의 문제다. 권력관계에서 약한 사람이 불합리한 요구에 적극적 거절과 항거를 하는 것은 힘들다. 완곡한 거절의 의사표현도 용기가 필요할 때가 많다. 이런 점에서 성폭력 판별의 기준은 ‘거절’이 아니라 ‘동의’여부가 돼야 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하자”고 한 경우에만 성관계를 해야 한다는 기준을 사법부에서 먼저 마련해야 한다. 사회 인식이 바뀐 후 법이 따라가는 경우도 많지만, 법이 먼저 기준을 정해주면 사회의 판단기준이 세워지기도 한다. 사법기관들이 먼저 ‘예스 민스 예스’의 기준을 세우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양선희 선임기자 sunny@joongang.co.kr

◆도움말=한국여성변호사회 조현욱 회장, 이수연·김숙희·김영미·장경아·서혜진·김보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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